지난 달 학교 학생회 대의원회의에서 채택된 안건 중에 ‘화장실에 에어컨을 설치해 달라’는 내용이 있어 한동안 선생님들과 학부모 간에 화제가 되었다.
옛날 기록에 의하면 궁궐 안에 있는 임금의 화장실은 겨울에는 화로가, 여름에는 볼 일 보는 ‘귀하신 몸’ 곁에서 시녀들이 부쳐 주는 부채로 해서 냉난방을 했던 역사도 있었던 것 같다. 하기야 볼 일 후 뒤처리까지 시녀들이 감당했으니 냉난방은 말할 것도 없었으리라.
편하고 안락해지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다. 화장실, 그것은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발달 과정 이야기거리가 깊고 풍부하다. 요즘 가정은 난방이 되는 화장실 변기에 앉아 볼일을 본 후 앉아 있으면 따듯한 물이 나와 뒤를 씻어 주고, 따뜻한 바람이 나와 말려 주기까지 하는 시설이 많이 갖춰져 있다.
옛날 궁궐에서 임금의 근심을 해결하는 일을 도왔던 시녀들의 일련의 작업 과정을 기계가 대신하고 있는 셈이니 화장실 문화에 관한 한 그야말로 임금이 부럽지 않은 세상이 된 것이다.
옛날에는 “사돈집과 변소는 멀리 있을수록 좋다.”라는 말로 화장실은 일상생활과 멀리 격리되어 있어야 할 곳으로 취급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침․저녁으로 씻어야 되는 목욕 시설을 화장실에 겸하고 있고, 위생적인 생활이 보편화되어 있어 생활터전의 가장 중요한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가정 환경의 획기적인 격상에 따라 ‘귀하신 몸’이 된 학생들이 학교 환경 변화를 요구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제 화장실 문화 형성도 학교 교육의 중요한 일부가 되었고 시대의 흐름 따라 학교에서도 화장실 문화가 획기적으로 개선되어 가는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우리 학교에서는 이미 ‘화장실의 Well-Being화’를 선언하고 화장실 내에 학생들의 미술 작품을 전시함으로써 화장실을 작은 갤러리로 꾸미는 등 화장실을 장단기 계획으로 쾌적하고 안락한 공간으로 만드는 노력을 하고 있다.
지난번 충북교육감의 지방 학교 방문 시 화장실에 수건을 걸어두지 않은 것이 발단이 되어 과잉접대 논란과 함께 급기야는 교감이 자살하고, 때맞춰 고인이 되신 교육감께도 큰 누가 되었던 가슴 아픈 사건도 결국은 학교의 화장실 문화가 변해 가는 과정에서 일어난 해프닝(?)이라고 볼 수 있다.
이제 화장실은 단순히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인 배설을 해결함으로써 근심을 풀어 버리는 '해우소(解憂所)', 즉 장소의 개념이 아닌 삶의 질이 높아진 생활 속의 열린 쉼터로 인식되어 가고 있다. 많은 인원이 함께 쓰는 기관 특히 교육을 하는 곳에서는 모든 것이 정상이요, 모범적이어야 한다. 따라서 건전한 화장실 문화 형성 교육 또한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것이다.
심야 전기나 심지어 흔해 빠진 가로등 요금보다도 턱없이 비싼 학교의 교육용 전기요금 때문에 공부하는 교실 냉방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 형편에 화장실에 에어컨 설치를 당당히 요구하는 요즘 학생들을 보노라니 새삼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