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실을 세 번이나 왔다갔다 했던 대서(大暑)날 아침 10시, 매월 넷째 주 토요일에 한 번씩 열리는 생태 교실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좁은 30평 학교 건물이 송내동 아이들 열세 명에 의해 점령당했다. 다섯 명의 아이들과 늘 생활하다 보니 아이들 머리가 열만 넘어도 웃고 떠드는 소리에 정신이 없다.
학교 앞, 우리의 운동장이라 할 수 있는 송내 어린이 공원에서 생태학습을 이끌어주실 바위 선생님과 아이들이 정중히 인사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처음 만난 기념으로 사진 한 컷을 찍고 느릿느릿 성주산으로 향했다.
성주산에서 우리를 가장 먼저 반긴 것은 아이들 예닐곱은 들어갈 만한 넓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나무였다. 바위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아이들은 스스로 그 나무에 자신들의 이름을 붙여 볼 기회를 얻었다. 엘리베이터 나무, 다층 나무 등 창의적이고 다양한 이름이 나왔다. 하지만 바위 선생님이 ‘층층나무’라는 정식 명칭을 알려주자 아이들은 자신들이 붙였던 개성 있는 이름을 서슴없이 기억 저편으로 던져버리며 층층나무를 머리에 기억하는 것 같았다.
산에서 만나면 인사를 나눠야 한다는 산 예절을 알려줬지만, 아이들은 쑥스러운지 산을 오가는 주민을 마주치면 비켜서기만을 반복했다. 그렇지 않아도 좁은 길인데 조그마한 발들이 길을 막아서니 지나가는 분들이 여간 불편해 하는 것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의 불편함에 아랑곳없이 아이들은 애벌레가 되어 바위 선생님이 뜯어준 며느리 배꼽을 입에 댄다. 하지만 쓴맛에 놀라 새콤한 뒷맛을 보기도 전에 퉤퉤거리며 인상을 찌푸린다. 그리고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우리들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본다. 그러나 바위 선생님이 애벌레들에게는 가장 맛있는 맛이라고 하자 아이들을 다시 잘 먹는 애벌레가 되어 보려고 웅성거렸다. 웅성거림 사이로 바위 선생님은 잎자루에 달린 가시들이 애벌레들의 공격을 막기 위한 수단이라며 자연에서 살아남기 위한 며느리 배꼽의 생명력에 대해 설명을 이어나갔다.
조금 걸어가다 아이들의 손에 아직 익지 않은 연두빛 작은 열매 한 개가 쥐어졌다. 깨물어보라고 하자 ‘똑’ 소리를 내며 깨진다. 도깨비 이야기에 나오는 열매라고 힌트를 주자 아이들 사이에서 바로 “개암” 이라는 소리가 나왔다. 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열매의 형태를 기억하며 다시 한 번 씹어보기도 한다. 열매가 아직 익지 않아 떨떠름한 맛을 내는 것도 며느리 배꼽과 마찬가지로 자연에서 살아남기 위한 수단이라고 덧붙였다.
좀 더 깊은 숲속으로 들어가 우리는 입을 다물고 눈을 감았다. 우리들의 소리에 놀라 도망갔던 새와 벌레들이 다시 찾아와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곳에서 우리들은 모두 새가 되어 새로운 보금자리를 틀기 위해 한 손의 엄지와 검지만을 부지런히 놀리며 둥지를 만들어나갔다. 가장 튼튼하고 포근해 보이는 둥지에 다섯 개의 알이 놓였다. 사실 하얀 조약돌에 불과했지만 그 순간 아이들은 그것이 진짜 새알이나 된 것처럼 즐거워한다.
내려오는 길에 비교적 땅이 고른 지역에서 아이들과 맨발로 흙을 밟았다. 저학년들은 아무런 거부감 없이 신발과 양발을 벗는 반면 고학년들은 양발만은 절대 벗지 않겠다고 강하게 버티었다. 우리는 양발을 벗은 아이들에게만 길을 내주며 모두의 신발을 벗기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신발을 벗지 않으려고 버티었던 고학년 아이들은 흙길의 끝에 나타난 작은 개울을 발견하고는 말릴 사이도 없이 신발이 아니라 옷 전체를 물로 적셨다. 역시 아이들은 물과 친한 것 같다.
산을 거의 내려왔을 무렵, 사람들이 밭을 넓히기 위해 나무껍질을 다 벗겨 나무를 살해하는 현장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우리의 발아래 있는 흙부터 시작하여 산의 모든 것을 살아있다는 생태계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고 일정을 마무리지었다.
2시간의 짧은 시간 동안 더운 여름에 지치고 땀범벅이 되었지만 힘든 얼굴 속에서도 자연 속에서 자연스런 웃음을 찾은 아이들에게 아쉬운 헤어짐의 인사를 건넸다. 아마도 이런 웃음을 찾아가는 재미 때문에 우리가 살아가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