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교실은 지역의 아이들 20여명 안팎이 참여하는 조그마한 행사지만 횟수를 더해 갈수록 조용한 알음알음을 통해 아이들은 늘 새로운 사람들과 마주하게 된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낯설음을 덜어주기 위해 공동체 놀이로 ‘인사’ 마당을 준비했다. 하지만 손을 잡기를 꺼려 하는 아이들의 주저함을 보면서 만남이 새로움과 더불어 가져다주는 어색한 시간을 어찌 없앨지에 대한 고민이 더해진다.
역시 아직은 깊고 따뜻한 마음을 품지 갖지 못하고 겉으로 반가움을 가장할 수밖에 없는 나의 미적지근한 마음탓인 듯하다.
아쉬운 마음을 거두고 솔안 공원에서 바위 선생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 후 해바라기는 애벌레의 눈이 되고 나는 사진작가가 되기로 했다. 가벼운 한 장의 손수건으로 어둠에 갇힌 어린 아이들은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깜깜함을 싫어하는 나도 어린 시절 불을 켜고 자다가 어른들께 혼난 적이 많은지라 아이의 마음이 어렴풋이 다가오면서도 웃음이 나와 버리니 역시나 나는 장난기가 많은가 보다.
꽉 묶인 손수건 위로 세상을 보며 웃음을 짓는 아이들과 섞여 한 마리의 긴 애벌레가 땅에서 나왔다. 긴 애벌레는 처음 땅을 만나 많은 다리들을 어쩌지 못하고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씩 지날수록 가닥을 잡고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오고가며 앞으로 나아갔다. 땅 위의 세상과 처음 마주한 애벌레가 서툴게 살아가는 이러한 모습들이 자연의 모습라고 생각한다. 이에 비해 요즘 우리네 현실은 부족함에서 오는 배우고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는 마음들을 기다려 주지 못하는 것 같다. 아이들은 빨리 무언가를 배워서 잘해 나가지만 그 완벽함으로 인해 배우려는 마음과 호기심들이 사려져 가고 있는 것 같아 아쉽다.
긴 길을 걷다보니 애벌레들은 어느새 뜨거운 여름날의 매미들이 되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소나무에 묻어 있는 송진이 손을 꺼멓게 뒤덮었지만 어린 아이들은 이런 것에 아랑곳없이 나무에 매달려 ‘맴맴맴’ 한다. 하지만 언니, 오빠들은 풀숲에 숨어사는 벌레들 때문에 ‘꺄약’ 거리며 나무에 궁둥이만 살짝 붙이고 섰다.
이제 매미들은 노래를 부르느라 빈 배를 채우기 위해 먹이를 찾아 풀숲으로 날아갔다. 20명의 아이들 모두 가지고 있기에 부족했던 준비물품 때문에 조를 짜서 붙여줬는데 처음이라 어색하고 우리마저 제대로 인솔하지 못해 몇몇 아이들의 마음이 조금씩 상해버렸다. 세상물자 모두 풍요롭지 않으니 서로 바꾸어 쓰고 나누어 쓰는 마음도 알았으면 해서였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어린 아이들의 마음을 잘 헤아리지 못하는 교사의 욕심이었던 것 같다. 그 와중에도 살뜰히 어린 동생들을 챙기는 몇몇 아이들의 행동 때문에 훈훈함이 감돌기도 했다.
솔안 공원은 도시의 공원이었고 잦은 방역으로 인해 곤충이 있을 수 있을까 싶었는데 의외로 많은 잠자리 떼와 메뚜기 등으로 도시의 아이들도 잠시나마 시골 뒷산에 오른 기분이 된 듯하여 다행이라 여겨졌다.
서로 잡아들인 곤충들을 나누어 본 후 곤충들은 아이들의 손에 의해 다시 자신들의 삶터로 던져졌다. 오늘 만난 어린 사람들의 거친 행동에 곤충들은 크게 놀랐는지 몸이 굳어 한동안 뛰지도 못하고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아이 매미들도 먹이를 잡기 위해 여기저기를 뛰어다닌 후라 식구들 모두 지쳐서 벤치에 몸을 기대고 한숨을 돌렸다. 앉아서 바위 선생님이 나누어준 곤충 경을 통해 몇 십 개의 눈으로 세상을 본 후, 아이들은 이제 다시 사람이 되어 사람이 만들어 낸 놀이 공간, 놀이터로 친구들 손을 잡고 뛰어갔다.
한편에서는 부족한 인원으로 행사를 진행하다보니 교사의 손이 닿지 못했던 공간에서 곤충 을 직접 잡아보지 못한 아이가 속상한지 울고 있었다. 해바라기의 달램에도 아이의 마음은 진정되지 않는지 무겁게, 발걸음을 집으로 돌렸다. 우리가 대안이라 외치는 교육 공간 안에서도 아이들이 항상 행복할 수만은 없다는 것이 속상하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의 이상이 아무리 높다해도 역시나 우리도 항상 부족한 사람인지라 조금 더 노력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모쪼록 오늘 온 아이들 모두가 이 짧은 시간, 곤충과의 만남을 통해서라도 자연을 생각하는 마음과 호기심을 잃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