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출근을 하여 3학년 1반의 담임선생님으로부터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되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대학을 포기했다며 아쉬운 소리를 했던 장애우 익진이가 갑자기 수능시험을 본다는 소식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녀석이 학과 담임인 나를 속인 것이었다. 대학 진학을 하라고 몇 번을 설득해 보았지만 현재 자신의 건강 상태로 대학에 진학한다는 것이 무리라고 생각한 탓인지 극구 반대를 하였다. 무엇보다 고등학교 3년 내내 등·하교를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왔기에 대학에 입학하여 등·하교를 혼자서 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나의 설득은 녀석에게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으레 녀석이 수능시험을 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 이후로 나는 익진이에게 수능시험과 대학 진학에 대해 일체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런 이야기로 녀석이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을까봐 걱정이 되기도 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수시 모집에 합격한 친구들을 보면서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수능원서를 접수하고 난 이후에도 가끔 복도에서 마주치는 익진이는 예전과 다름없이 나를 보며 웃기만 했을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내심 녀석에게 특별한 관심과 사랑을 주었기에 나에게만은 그 사실을 이야기해줄 줄만 알았다.
수업 시간이었다. 괘씸한 생각에 녀석에게 시선 한번 주지 않았다. 녀석은 내가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을 모르는 것 같았다. 예전처럼 고개를 쭉 내밀고 수업에만 열중하였다. 우연히 눈이 마주칠 때면 나는 애써 태연한 척하며 수업을 진행하였다.
수업이 끝나고 교실 문을 나가자 녀석이 다리를 절뚝거리며 나를 따라왔다. 수업 시간 평소와 다른 내 행동에 눈치를 챈 것 같았다. 그리고 수업시간 내내 그것에 신경이 쓰였던 모양이었다.
“선생님, 제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나요?”
녀석의 말에 나는 대꾸도 하지 않고 교무실 쪽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러자 익진이는 계속해서 따라오며 말을 건넸다.
“선생님, 이야기해 주세요.”
사소한 일에 녀석에게 짜증을 낸 것 같아 오히려 미안한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그리고 필시 무슨 사연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익진아, 왜 이야기하지 않았니?”
갑작스런 내 질문에 녀석은 의아해 하는 표정을 지었다.
“선생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어요.” “너 수능 시험 보기로 했다며”
그제야 익진이는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사실을 이야기하였다. 익진이는 수능원서 접수 하루를 앞두고 담임선생님과 상담을 하여 수능원서를 작성하였다고 하였다. 그 사실을 나에게 비밀로 해줄 것을 담임선생님께 부탁을 하였다고 하였다. 그리고 수험표를 받고 나서 나를 깜짝 놀라게 해주려고 하였다는 것이었다.
익진이의 이야기를 듣고 난 뒤 녀석에게 왠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익진이는 수능시험을 치르지 않고도 특별전형으로 대학에 갈 수도 있었다. 그런데 고등학교 학창 시절 마지막 시험인 대학수학능력을 한번 보고 싶다며 담임선생님께 부탁을 했다고 하였다. 그것도 시험특별관리대상자가 아니라 정상적인 아이들과 똑같이 말이다.
수시 모집에 합격한 아이들조차 수능 시험에 부담감을 느껴 시험을 안보겠다고 하는 반면 장애우 익진이가 보여 준 행동은 요즘 아이들에게 충분히 귀감이 되고도 남음이 있다고 본다. 익진이는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용기를 직접 실천으로 옮기려고 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