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안전하고 질 좋은 우리’ 또는 ‘국내산’ 농산물로 양질의 급식을 제공하자는 취지의 학교급식조례가 대법원에 의해서 GATT 협정의 ‘자국민대우원칙’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위헌 판결이 내려짐으로써 학부모와 교육단체들이 땀흘려온 풀뿌리 자치운동이 열매 맺기도 전에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했다.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안전성이 검증된 우수농산물을 사용하겠다.'는 목적이라고 할지라도 그 수단이 외국 농산물을 차별하지 못하도록 한 국제협정에는 위반된다는 판단이었지만 문제의 주민발의를 통한 학교급식조례는 아이들의 안전한 밥상뿐만 아니라 우리 농업을 살리기 위한 마지막 단초이기도 하여 그 충격이 더욱 크다.
그러나 정작 WTO 회원국 146개국 중 미국·일본·유럽연합 등 30여개 국가는 정부조달협정을 통해 예외규정을 두고 자국산 농산물 사용을 의무화한 학교급식제도를 운영하고 있어 이미 학교급식조례 시행을 방해해온 행자부와 외교통상부 등 정부 당국은 물론 이번의 위헌 판결을 내린 사법부의 경직된 법해석 또한 강대국과의 형평성 의혹과 함께 WTO 등 국제기구에 대해 통상마찰을 빙자한‘알아서 기는’新사대주의라는 비난을 면키 어렵게 됐다.
WTO 등에 어긋난다는 판결은 WTO의 분쟁해결기구가 할 일이지 정부나 대법원이 먼저 나서서 판정할 일이 아닌 것이다. 더욱이 우리농산물 사용에 대해 외국 정부가 문제 삼은 것도 아닌 상황에서 스스로 GATT 조항을 직접적인 판단 근거로 삼음으로써 대한민국 대법원이 국제협정을 근거로 국내법령을 무효화한 최초의 불명예스러운 사례로 남게 될 것이다.
결국 노무현 정부는 무상급식 확대와 친환경 우리농산물 사용 법제화를 공약사항으로 국민들과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실천하지 못할지언정 오히려 국민들이 어렵게 만든 지역의 급식조례를 묵살한 셈이 될 뿐만 아니라 이 판결로 인해 WTO 협정이나 GATT 협정을 국내 재판에 직접 적용하지 않고 있는 미국, 유럽연합, 일본 등 주요 WTO 회원국과는 달리 외국 기업들이 GATT나 WTO 협정 위반이라는 명목만으로도 한국정부의 행정처분에 대해 한국 법원에 직접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결과를 초래하게 됐다.
앞으로 정부가 조달하여 학교에 공급하는 물자는 물론 학교가 자체적으로 구매하는 물자까지 급식 재료를 자국산으로 사용하도록 학교급식법에 규정한 다른 선진국의 경우처럼 우리도 지자체의 예산을 학교급식에 지원하고 그 예산을 정부조달로 볼 경우 자국민대우원칙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있다. 또한 급식조례에 ‘우리’또는 ‘국내산’농산물이라는 표현 대신 ‘친환경’ 또는 ‘우수’농산물이라는 중립적인 표현을 쓰고 실제로는 우리 농산물을 사용하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 ‘우수농산물’이라는 표현만으로는 각 학교나 지자체는 급식의 비용에 따라 국산농산물 사용이 안 될 수도 있는 것이 문제가 될 수는 있다.
아무튼 앞으로 정부의 사대주의적 처사와 사법부의 경직된 판결에 굴하지 않고 범국민 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여 아이들의 건강권 보장과 농촌경제를 활성화시킬 뿐만 아니라 그동안 땀흘려온 풀뿌리 자치운동이 열매맺기 위해서라도 친환경 우리 농산물만 사용하는 학교급식 방안을 관철시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