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계속되는 수시 모집 인터넷 원서접수로 인해 육체적, 정신적으로 지쳐 가고 있었다. 수업이 많은 날은 두 가지 일을 병행해야 하기 때문에 그 피곤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무엇보다 아이들을 위해 담임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에 내색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어떤 날은 하루가 짧게 느껴진 적도 있었다.
대부분 수도권에 있는 대학들의 원서 접수 마감일이 오늘(9월 15일)이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눈치 작전을 벌이며 기다려왔던 아이들의 원서를 한꺼번에 작성해야만 했다. 그래서일까? 아침부터 교무실 앞에는 우리 반 아이들로 장사진을 이루었다.
사전에 여러 번 상담을 했지만 치솟는 경쟁률을 보면서 아이들은 자신감을 잃어 가는 듯했다. 몇 명의 아이들은 상담을 했을 때 가고자 했던 대학과 학과를 경쟁률 때문에 바꾸기도 하였다. 경쟁률에 너무 지나치게 신경을 쓰지 말고 소신껏 지원해 보라고 타이르기도 했으나 막무가내였다.
이렇듯 아이들과 의견 충돌로 언쟁을 벌이다 보면 한 시간에 고작 쓰는 원서가 3개 내지 4개의 대학뿐이다. 어떤 아이는 자신의 점수보다 상향 지원을 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화가 난 적도 있었다. 그리고 원서를 작성하고 난 뒤, 말 없이 교무실 문을 빠져나가는 아이들이 야속하기까지 했다. 내심 아이들로부터 감사하다는 말 한 마디를 듣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오후 5시. 아이들의 원서 접수가 끝났다. 긴장이 풀린 탓인지 졸음이 쏟아졌다. 할 수 없이 잠깐의 휴지(休止)를 위해 책상에 엎드려 잠을 청했다. 얼마나 잤을까? 누군가의 손길이 와 닿았다. 눈을 뜨니 한 남학생이 내 어깨를 주무르고 있었다. 그런데 나를 더욱 놀라게 한 것은 오늘 수시 원서를 쓴 아이들 모두가 내 책상 주위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 나를 보자 아이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넓죽 절을 하며 말을 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힘내세요.”
갑자기 벌어진 일이라 마치 꿈을 꾸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아이들의 그 말 한 마디는 다른 어떤 피로회복제보다 효과가 있는 듯 했다. 그 순간 아이들을 원망했던 자신이 민망하기까지 했다. 이런 발상이 누구로부터 나온 것인지는 중요하지가 않았다. 오늘만은 아이들의 마음을 순수하게 받아들이고 싶었다.
아이들은 자신들을 위해 담임선생님이 고생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정말이지 아이들의 마음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이 아이들이 있기에 난 웃을 수밖에 없다. 지금도 그리고 오늘도, 내일도 아니 영원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