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명절을 앞두고 아내는 우리 가족이 입을 한복을 사 가지고 왔다. 사실 나는 결혼식 이래로 한복을 입어 본 적이 거의 없다. 매년 명절이나 집안 행사가 있는 날에 정장만 입다가 한복을 입으려고 하니 왠지 어색하기만 했다. 아내의 고집 때문에 입기로 하였으나 왠지 자신감이 없었다.
문제는 막내 녀석이었다. 첫 돌을 끝으로 녀석은 지금까지 한복을 입은 본 적이 없었다. 한복이 우리 고유의 의상인지 알면서도 막상 입으려고 하니 왠지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녀석은 한복을 입지 않겠다고 투정을 부리기까지 했다. 아내는 녀석에게 입지 않으려고 하는 이유를 물었다. 녀석의 첫 마디가 우리 부부를 놀라게 했다.
“안 입던 한복을 왜 갑자기 입으라고 해요?”
녀석의 말에 아내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순간 무슨 말을 해주어야 할텐데 생각이 나지 않았다. 사실 녀석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없었던 일을 갑자기 만들려고 하니 아이 또한 이상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때, 아내가 조금 실망한 듯 꺼내놓은 한복을 다시 정리하여 장롱에 넣으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녀석은 우리 부부에게 조금 미안했던지 갑자기 저자세를 취하며 말을 했다.
“그러면, 이번 추석에만 입을게요. 다음 번에는 안 입어도 되죠?”
그리고는 양팔을 벌려 옷을 입혀 달라는 시늉을 했다. 아내는 기다렸다는 듯 녀석에게 옷을 입혀주었다. 옷을 다 입은 막내의 모습은 생각보다 멋져 보였다. 녀석 또한 거울 앞에서 한껏 자신의 맵시를 뽐냈다. 한복을 입은 자신의 모습이 생각보다 괜찮아 보였는지 미소를 지어 보이기까지 했다. 이번 추석에는 녀석이 마지못해 한복을 입었지만 다음에 있을 명절에는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일이었다.
요즘 대부분의 아이들은 “왜?”라는 의구심을 많이 갖는다. 거기에 대한 어른의 궁색한 변명은 오히려 아이들에게 불신만 심어줄 수가 있다. 납득할 수 있는 충분한 내용으로 아이들을 설득시켜야 한다. 그러면 분명히 아이들은 어른이 한 말을 귀담아 듣고 행동으로 옮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