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직원회의에서의 교장선생님 말씀이 모든 선생님들의 마음에 잔잔한 파문을 던졌다. 내용은 대략 이렇다.
가을소풍을 앞둔 얼마 전 여학생 몇 명이 교장실을 방문했다. 그 아이들은 자세한 앞뒤 정황 설명도 없이 교장선생님의 손에 곱게 접은 쪽지를 쥐어주고는 도망치듯 홀연히 사라졌다. 문제의 그 쪽지에는 “이번 소풍 때는 제발 사복을 입게 해 달라, 이때를 위하여 미리 새 옷까지 사 두었으니 교장선생님께서 저희들의 소원을 들어 달라”는 구구절절 애절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는 것이다.
사실 1년에 몇 번 안 되는 소풍이나 수학여행과 같은 행사 때 학교에서도 사복을 허용하는 등 어느 정도는 학생들의 편의를 봐주는 게 그동안의 통례였다. 그러나 학교운영위원회에서 교원위원들은 당초의 사복착용안을 찬성했지만 학부모들의 특별한 부탁으로 숙의 끝에 교복착용으로 방침이 변경되어 이미 소풍계획이 발표된 터여서 학생들은 이 문제가 힘없는 선생님들의 선을 이미 벗어난 줄 눈치챘나보다.
물론 학생들의 복장착용 문제는 운영위원회의 심의사항은 아니다. 그러나 수많은 학생들과 인파로 붐비는 국제행사 『청주공예비엔날레』 참관에 따른 생활지도 문제와 과소비 우려 등에 대한 학부모의 염려를 존중해준다는 의미에서 결정된 교복착용 방침은 결국 ‘교복벗기 학생사절대표단’의 애절한 소원이 담긴 친서를 결국 허공으로 날려버린 셈이 되었다.
그동안 우리 사회전반의 민주화과정을 거치면서 중고교 학교생활에도 많은 자율을 도입했다. 그러나 비록 80년대까지의 '하지마라'식 금지규정이 변했다고는 하지만 신분과 소속감 ·유대감을 불러일으키는 수단으로써 오랫동안 학생의 공식적인 정장의 역할을 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존재하는 교복은 두발규제와 함께 학생 자신들을 부자유하게 얽매고 마치 예비 범죄인이나 사리판단하지 못하는 미성숙한 존재로 취급함으로써 개성과 창의성을 저해하는 ‘타도대상 제1호’로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학교단속을 피하고 멋도 내기 위해 규정에 맞는 ‘교내용’과 변형된 ‘교외용’으로 준비해 따로 입는 학생들도 더러 있다. 그들은 교복과 두발 문제에서 자유롭게 벗어나는 것이 마치 구속의 틀 속에서 탈출하여 완전한 자유를 찾는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
오늘이 바로 문제의 가을소풍 날이다. 아침부터 교복 차림의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버스나 택시를 타고 소풍지로 향하는 모습을 보며 교장선생님은 장차 사복착용을 간청했던 그 여학생들의 참담함과 배신감에 대한 후한(?)을 어떻게 감당하실지 자못 궁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