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쳐 놓았던 비닐 봉지가 눈에 뜁니다. 딱딱하게 식어 굳어 버린 붕어빵 뭉칩니다.
'버려야 하나? 먹어야 하나?'
망설여집니다. 온전히 모양이 그대로 유지된 것도 있고, 배가 터져 검붉은 앙꼬가 밖으로 새어 나온 붕어도 있고, 너무 구워져 시커먼 것도 있습니다. 뜨거울 때 먹어야 제맛이 나는 이 붕어빵을 어찌해야 하나요? 준 사람을 생각하면 버려선 안될것 같고, 다 식어 빠진 걸 먹자니 맘이 내키지 않습니다.
'도대체 몇 개야?'
풀어서 세어보니 열 개가 넘습니다.
우리 반 아이 기복이는 학교가 파해도 여엉 집에 갈 줄을 모릅니다. 토요일 오후 3시가 넘었는데도 운동장에서 맴돕니다. 그러다가 일이 있어 남아 있던 내 눈에 띄었던 거지요. 기복이를 교실로 불러 들여 글을 한 장 쓰게 하고 있는데, 기복이 엄마가 기복이를 찾아 교실로 들어 오셨습니다. 시내 장에 갔다가 혹시 기복이가 학교에 있나 해서 들어 온 것이랍니다. 그래도 방금 불러 들였으니 하던 일마저 끝내고 보내주려고 잠시 앉아 계시라고 했습니다.
기복이는 보고 쓰는 건 빨리 잘하나 자기가 읽고 쓰는 건 아직 못 깨우친 아이입니다. 그래서 받아쓰기 할 때도 아직도 보고 씁니다. 몇 줄 안되는 글을 쓰고 그림까지 후딱 잘 그렸습니다. 둘이 오손도손 공부하고 있는 걸 보고 기복이 엄마는 고마움의 표시로 부시럭부시럭거리더니 붕어빵 뭉치를 내놓았던 것입니다. 그것도 기복이 안보게 몰래 줍니다. 그래서 받은 것입니다. 얼른 풀어서 같이 먹으려 하니 "여기 또 있어요" 하며 기복이를 데리고 가고 말았습니다.
기복이는 외할머니와 엄마와 기복이 셋이서 삽니다. 엄마는 심신이 온전치 못합니다. 그러니까 외할머니가 딸과 외손자를 거두고 있는 셈이지요. 기복이네 동네는 네 가구가 있는데 초등학생이라곤 기복이 뿐입니다. 그래서 집을 나서면 갈 곳이 학교 밖에 없습니다. 꽤나 먼 거리를 산모퉁이를 돌아 놀러 나옵니다. 학교도 예전 같지 않습니다. 예전엔 운동장에 삼삼오오 떼를 지어 노는 아이들이 항상 있었으나 학생수가 두 자리수로 줄어든 2000년대의 농촌 학교는 동네 애들 서너 명이 전부입니다.
더운 여름이야 퇴근시간이 넘게까지 놀고 있어도 걱정이 되지 않았었지요. 허나 요즘엔 많이도 쌀쌀해진 날씨 땜에 집에 가길 권해도 소나무 뒤에 숨었다가 또 나타나서 놀곤 하는 기복이가 걱정이 됩니다. 학교 끝나면 학원차가 와서 데려가지만 통 갈 생각이 없는게 기복이 마음입니다. 학원이 끝나면 집에 까지 데려다 준다는데 그것도 빠지고 그냥 운동장에서 뛰어 노는게 제일 좋은 가 봐요. 맨발로 뛰어 다니기도 하고 놀이 기구를 몇 차례나 돌고 돌아서 노는 게 진력이 나련만 캄캄해 지도록 집에 갈 생각을 않습니다. 그러니 기복이 엄마는 기복이 찾으러 다니는게 일이지요. 자기 몸도 온전치 못한 기복이 엄마는 기복이 가방을 메고 그 위에 기복이까지 들쳐 업고 갑니다. 자식에 대한 애착이 그렇게도 강한건가요?
일요일날도 등교 시간에 맞춰 학교에 와서 놉니다. 밥은 언제 먹었는지도 모릅니다. 할머니는 일가시고 엄마는 침 맞으러 시내 나가시니 기복이 혼자서 집에 있는다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기복이 엄마는 직장에 다니듯이 침 맞으러 다니는 게 하루 일과랍니다.
이젠 기복이가 학원 빼먹고 운동장에서 배회하는 것이 보기 싫습니다. 아예 교실에 붙들어 앉혀 놓아야겠어요. 동화책도 읽고 물건 정리도 하고 그림도 그리게 해야겠어요. 그리고 이 붕어빵은 내일 전자 레인지에 데워서 우유 마시는 시간에 아이들과 같이 나눠 먹어야겠어요. 기복이가 한 턱 내는거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