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예비소집일(11월 22일). 무엇보다 올해에는 수능 한파가 없을 것이라는 일기예보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부터 학교는 전교생 모두가 조금 들떠있는 분위기였다. 후배들은 양손에 찹쌀떡과 엿을 들고 평소 알고 지내는 선배들을 챙기기에 분주했다. 교무실에서는 총학생회 임원들이 내일 아침 수능 고사장에서 펼칠 응원전을 준비하기 위해 회의를 하고 있었다.
4교시. 교육청에서 수령해 온 수험표와 수험생 유의사항 유인물을 들고 교실로 올라갔다. 교실 문을 열자 내일 시험을 치러야 할 아이들은 전쟁을 하루 앞둔 병사처럼 긴장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수시로 대학에 미리 합격한 아이들 또한 수능을 보는 친구들을 위해 애써 태연한 척하며 앉아 있었다. 아이들의 얼굴을 보는 순간 무슨 말을 어떻게 해주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아이들의 책상 위에는 누군가로부터 받은 수능 합격 엿과 찹쌀떡이 수북히 쌓여 있었다. 어떤 아이는 긴장을 풀려는 듯 찹쌀떡을 연신 입안에 넣고 오물거렸다. 또 어떤 아이는 긴장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는 듯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 그리고 한 여학생은 문제지를 풀며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먼저 아이들에게 수험생 유의사항이 적힌 유인물을 한 부씩 나누어주었다. 그리고 예년에 비해 달라진 내용을 중점으로 페이지를 넘기며 아이들이 실수하기 쉬운 부분들을 강조하며 차근하게 읽어주었다. 그런데 수능부정행위에 해당하는 사항을 읽어 줄 때 몇 명의 아이들이 인상을 쓰기도 하였다. 아마도 그건 자신들을 믿지 못하는 현 사회에 대한 불만으로 받아들여졌다.
수험생 유의사항을 전달하고 난 뒤, 아이들에게 간단한 질문을 받았다. 그리고 시험을 잘 보라는 말과 함께 수험표를 나누어주었다. 아이들은 수험표를 받아들고 수험번호와 고사장을 확인하면서 시험을 보게된다는 것을 실감하는 눈치였다. 잠시 뒤, 교실 중간쯤에서 누군가가 손을 번쩍 들었다. 우리 반 부실장이었다.
“선생님, 부탁이 있습니다.” “그래, 무슨 부탁이니?” “저희들이 선생님의 노래를 들으면 시험을 잘 볼 것 같습니다.” “......”
그러자 모든 아이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박수를 치기 시작하였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이 아이들 앞에서 노래 한 곡 불렀던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어쩌면 아이들은 시험을 치러야 할 자신들보다 더 긴장하고 있을 선생님의 마음을 읽고 있었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아이들을 위해서 내가 못할 것이 무엇이 있으랴’하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용기를 내어 노래를 부르자 긴장감이 감돌았던 교실 분위기가 갑자기 화기애애(和氣靄靄)해졌다. 나 또한 조금씩 긴장이 풀리는 듯 하였다. 선생님의 노래에 아이들이 이렇게까지 좋아할 줄은 예전에는 미처 몰랐다. 그리고 아이들의 박수에 힘입어 큰 소리로 외쳤다.
“O반, 파이팅.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자. 알았지?” “네, 선생님. 시험 잘 보겠습니다.”
그리고 대답을 하고 난 뒤, 아이들은 나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광고 송을 개사하여 합창을 하였다.
"선생님,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선생님, 힘내세요."
위로와 격려를 받아야 할 아이들이 오히려 나를 위로해 준 오늘. 그동안 고생한 보람이 있다는 것을 순간적으로 느껴진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