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집에서 공부를 하고 있던 초등학교 5학년인 막내 녀석을 달래 집 근처의 시립도서관을 찾았다. 앞으로 있을 기말고사 탓일까? 휴일인데도 불구하고 많은 학생들이 나와 공부를 하고 있었다. 일반열람실은 취업 준비를 하는 사람들로 만원을 이루었다. 따라서 막내녀석과 내가 빈자리를 찾는데 한참이나 걸렸다. 간신히 자리를 잡은 곳이 남학생 열람실이었다.
그런데 분명 남학생 열람실인 줄 알고 들어간 열람실 안에는 많은 여학생들이 섞여 있었다. 혹시 잘못 들어 온 것이 아닌가 싶어 밖으로 나가 확인을 한 결과, 내가 실수한 것은 아니었다. 내심 도서관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아 도서관측에서 생각해낸 임시방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할 수 없이 남학생 열람실에서 책을 보기로 하고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잠시 뒤, 실내 정숙을 해야 할 열람실 안이 갑자기 시끄러워지기 시작하였다. 남학생과 여학생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휴대폰으로 게임과 문자메시지를 보내는데 정신이 없었다. 중요한 것은 그들 모두가 주위 사람들의 시선에 안중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분명히 열람실 벽에는 ‘실내정숙’이라는 글씨가 적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때였다. 옆에 앉아 책을 읽고 있던 막내 녀석이 짜증을 내며 집으로 가자고 재촉을 하는 것이었다. 도저히 참지 못해 열람실에서 나오자 복도 여기저기서 남녀 학생들이 모여 소란을 피우고 있었다. 그런데 그 아이들을 보면서 누구하나 간섭하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하물며 도서관 건물 뒤쪽에서는 몇 명의 고등학생들이 담배를 피우는가 하면 스킨십까지 하는 아이들도 눈에 띄었다. 이런 상황을 도서관측에서도 알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관리실을 찾았다.
관리실에서는 몇 명의 사람들만 근무를 하고 있었다. 도서관측의 말에 의하면 휴일이라 많은 사람들을 배치할 수가 없어 자원봉사활동을 나온 대학생들이 보조 업무를 도와준다고 하였다. 그리고 매 시간마다 열람실을 순찰을 하나 그때뿐이라고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문득 모 리서치에서 조사한 연구 결과가 생각이 났다. 우리나라에서 공중도덕을 제일 잘 지키는 학생이 초등학교 학생이고 상급생으로 올라갈수록 그것이 퇴색되어 간다고 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공공도서관이 청소년들의 데이트 장소로 변질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이제 연말연시가 가까워지면 대입과 고입을 마친 청소년들이 사회로 물밀 듯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아직까지 이들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실정이다. 그렇다고 이 아이들을 마냥 학교에 붙들어 둘 수만은 없는 일이다. 매년마다 거치는 과정이지만 이들을 위한 뚜렷한 제도적인 장치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씁쓸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