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아이들의 기말고사 기간이라 모처럼 일찍 귀가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목욕을 한 지도 오래다. 언제부턴가 목욕하는 일이 월례행사가 되어 버렸다. 시간이 나지 않는 이유도 있지만 귀찮아서 목욕탕에 가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 더 낫겠다. 이것이 늘 아내가 잔소리하는 원인이 되었다.
휴일만 되면 아침부터 아내는 막내 녀석을 데리고 목욕탕에 갔다 오라고 잠자는 나를 깨운다.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집을 나서기는 하나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사실 어떤 때는 목욕탕에 가지 않고 차에서 잠을 자고 집으로 들어가 화장실에서 간단히 샤워하고 난 뒤 마치 목욕을 다녀온 것처럼 해 아내를 속인 적도 있었다. 아내가 눈치를 채지 못해 다행이지만 만에 하나라도 아내가 이 사실을 알고 있다면 혀를 차고도 남을 것이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이유는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내 알몸을 보여주는 것이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때는 탕 내 모든 사람들이 내 몸만 쳐다보는 것이 같아 얼굴이 화끈 달아 오른 적도 있었다. 목욕탕 안에서 시선을 어디에다 둘지 몰라 목욕을 허겁지겁 하고 나온 적도 여러 번이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방법이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지 않는 시간대인 아침 일찍 아니면 오후 늦게 다녀오는 것이었다. 물론 더 좋은 방법은 평일을 이용하는 것인데 그건 사정이 여의치 않는 경우다.
그런데 오늘 수요일 평일 날. 목욕탕에 가기에 더 없이 좋은 기회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목욕탕에 다녀오겠다고 말을 하자 아내는 화들짝 놀라며 가방을 챙겨주는 것이었다. 목욕탕 문을 열자 신발장마다 많은 열쇠들이 꽂혀 있는 것으로 보아 이용객들이 별로 없는 것이 분명했다.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옷을 벗고 탕이 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불과 몇 명만 목욕 내지 사우나를 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나만의 시간을 즐기며 목욕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 기분도 잠시일 뿐, 입구 쪽에서 건장한 체격의 청년이 들어왔다.
탕 내에 서린 김 때문에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낯익어 보였다. 가까이 다가올수록 그 청년의 얼굴 윤곽이 드러났다. 우리 반 학생이었다. 그 순간 팽창해 있던 내 육신이 수축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잘 보이지 않는 칸막이 사이로 얼른 몸을 숨겼다.
분명 그 아이는 나를 못 본 듯 했다. 혹시라도 들키기라도 할까 봐 눈치를 보며 때를 밀었다. 그리고 기회를 봐서 몰래 빠져나갈 심상이었다. 시간이 지나도 기회가 생기지 않았다. 그 아이는 좀처럼 탕 안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모든 것을 체념하고 고개를 숙인 채 때만 열심히 밀었다. 잠시 뒤, 누군가의 체온이 등에 와 닿았다. 순간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제자였다.
"선생님, 아직 등 안 미셨죠? 제가 등 밀어 드릴게요." "그…그…래. 고맙구나."
나는 짧게 대답을 하고 난 뒤, 그 아이에게 등을 맡겼다. 그 잠깐 동안 고개를 푹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제자는 때를 다 민 듯 등에 물을 부어주며 말을 했다.
"선생님, 다 됐습니다." "고생했다. 너는?" "예, 저는 됐습니다."
등을 밀어주겠다는 내 제안에 제자는 정중히 거절하며 사우나 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나는 그 틈을 이용하여 대충 몸을 씻고 난 뒤 욕실에서 빠져 나왔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화가 나기보다는 왠지 모를 미소가 입가에 지어지는 것이 아닌가. 목욕을 하고 난 뒤,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상쾌함이 내 등줄기를 따라 흘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