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이맘 때쯤이면 각 학교마다 치르는 기말고사를 앞두고 초·중·고 학생들과 학부모 모두 시험 때문에 신경이 예민해진다. 요즘 아파트 집집마다 시험 준비를 하는 학생들로 자정이 넘은 시간에도 불 켜진 집들이 많다. 심지어 학원에 다니는 학생들은 새벽 2시가 넘어 귀가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를 지켜보는 부모의 마음은 애타기만 하다.
초등학교 5학년인 막내 녀석 또한 12월 중순 경에 있을 기말고사 준비로 요즘 곤혹을 치르고 있다. 놀기를 좋아하는 이 녀석이 매일 책상 앞에 앉아 공부를 하는 것 자체가 대견스럽기도 하지만 공부를 하는 시간보다 딴 짓을 하는 시간이 더 많다. 그리고 생색내기는 얼마나 하는지 눈 뜨고는 못 봐 줄 정도다.
어젯밤의 일이었다.
저녁을 먹고 난 뒤 막내 녀석은 공부를 한답시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잠시 뒤 거실로 나와 배가 고프다며 통닭을 시켜달라고 하였다. 아내는 못이기는 척 하면서 통닭을 주문하였고 막내 녀석은 통닭이 오자마자 게 눈 감추듯 먹어 치웠다. 그리고 다시 방으로 들어가 공부를 하는 것이었다. 녀석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우리 부부는 흐뭇하였다.
그리고 뉴스를 보기 위해 TV를 켰다. 바로 그때였다. 공부를 하고 있던 녀석이 갑자기 방에서 나오더니 버럭 화를 내며 말을 하는 것이었다.
"아빠, TV 소리 때문에 공부가 되지 않아요." "아, 그래 미안하구나."
옆에 있던 아내 또한 나에게 핀잔을 주는 것이었다. 정말이지 어처구니가 없었다. 한편 벌써부터 아이들 눈치를 보며 생활해야 한다는 사실에 서글퍼지기까지 했다. 잠시 동안 넋 나간 사람처럼 앉아 있는 나를 아내는 위로해 주었다.
"여보, 우리가 이해해요. 요즘 아이들 다 그런걸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너무 하다는 생각이 드오." "그래도 우리 애는 무엇을 사달라고 떼를 쓰지는 않잖아요?" "그게 무슨 말이오?" "옆집 애는 시험 잘 보는 조건으로 휴대폰을 사달라고 그러는가 봐요."
아내의 이야기를 듣고 난 뒤 기가차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도대체 누구를 위한 시험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이들의 시험결과에 따라 부모의 입지가 선다는 아내의 이야기를 듣고 문득 모(某) 회사 중견간부가 자식의 좋지 않은 성적이 자신의 입지에 누(累)가 된다는 이유로 자식을 해외 유학을 보냈다는 기사가 생각났다. 이 모든 것이 우리나라의 잘못된 입시제도와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는 학벌 중시가 불러 낸 결과가 아닌가 생각해 보았다.
갈수록 아이들의 성적을 올리기 위해 자식을 닦달하는 부모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우리 아이가 시험을 잘 보리라고는 기대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최고보다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부모들은 아이들의 시험 결과가 좋아 기분은 좋겠지만 우리 아이들이 중요한 것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