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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리포트(미분류)

일기 쓰기가 가져다 준 행복

중학교 2학년이 되던 해부터 나는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직장관계로 객지에 계시던 아버지가 설을 쇠러 오셨을 때 주신 세뱃돈으로 일기장을 한 권 산 것이 계기가 되었다. 이후 8년간 연속해서 일기를 썼고 그 후에도 상당 기간 동안 부정기적으로 일기 쓰는 일을 계속했다.

어떤 의도를 가지고 시작한 일도 아니고 누가 권해서 시작한 것도 아니었다. 자발적으로 시작한 이 일기 쓰기는 사춘기 시절의 내게 큰 힘이 되어 주었다. 사춘기적의 분홍빛 사연이 고스란히 담겼고 청소년 시절 내 독서 편력이 일기 속에 다 드러나 있다. 갈등과 번뇌까지도 모두 담겨 있으니 그 시절 일기장은 나의 벗으로 나의 모든 사연을 다 들어주었다.

조금 성장한 후에는 좀 더 자유롭게 일기를 썼다. 하루일과가 끝나고 잠자리에 들기 전 하루를 반성하면서 일기를 쓰는 고전적 방식이 아니었다.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아침에도 쓰고 낮에도 쓰고 저녁에도 썼다. 잠자리에 들었다가도 떠오르는 생각이 있으면 다시 불을 켜고 일어나 일기를 썼다. 하루에 두 번도 쓰고 세 번도 쓰고 며칠씩 쓰지 않기도 했다.

분량의 제약도 받지 않았다. 어느 날은 서너 줄을 쓰고 어느 날은 일기장을 가득 채우기도 했다. 대학 노트를 이용한 후로는 한결 자유롭게 썼다. 한 줄도 쓰고 몇 줄도 쓰고 반 페이지도 쓰고 두세 장이 넘게 길게 쓰기도 했다. 내용에도 제한을 두지 않았다.

하루 동안의 체험을 쓰는 것에 머무르지 않았다. 물론 겪은 일도 기록했지만 생각하고 느낀 것에 더 많은 비중을 두었다. 일기를 쓰는 시간에도 떠오르는 생각이 있으면 그 생각을 계속 기록해 나갔다. 펜을 잡고 있으면 생각은 더욱더 꼬리를 물게 마련이다. 때로는 명상이나 사색을 통해 얻게 되는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도 일기에 담았다.

어느 때는 시를 적기도 하고 독후감을 적기도 하고 감명 깊었던 책의 구절을 옮겨 적기도 했다. 한 때는 여러 달 동안 영어로 써보기도 했는데 그것은 영어 공부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안네의 일기'를 흉내 내어 '키티'(Kitty)라는 친구에게 나의 모든 얘기를 털어놓는 대화의 형식으로 써보기도 했다.

이렇게 쓴 일기가 해가 갈수록 쌓여 군대를 갈 무렵엔 8권까지 되었다. 일기장들은 내 책장 한 쪽에 늘 자리하고 있었다. 가끔 꺼내 읽으며 나의 발자취를 돌아보곤 했다. 거기엔 사춘기적의 교우관계, 장래 희망에 대한 진지한 모색, 좋아하던 여학생에 대한 열렬한 사랑고백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성장 과정이 모두 기록되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결혼을 하기 전 방을 정리하면서 나는 어떤 의식을 치르듯 일기장을 한 권 한 권 꺼내 모두 찢어 쓰레기통에 넣었다. 결혼을 앞두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겠다는 나의 다짐의 일환이었다. 그 일기장이 귀중한 기록이거나 소중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개인사적으로 볼 때는 상당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지금 다시 읽는다면 아마 너무 유치하다고 느끼게 될 것이 분명하다. 당시에도 다시 읽을 때마다 나의 독서량이 많이 부족했다는 느낌을 받곤 했기 때문이다. 다듬어지지 않은 문장이며 풋내 나는 사춘기적 이야기 일색이어서 고소를 금치 못할 수도 있다. 인생에 대한 안목도 빈약했다.

그러나 나는 그 일기를 썼던 행위에 언제부턴가 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문학에 심취하고 교내 백일장에서 입선하고 학교 대표로 전국 규모 대학 백일장에 나가는 등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 바로 일기를 통해 문장 수련을 한 결과라고 결론을 내렸다.

문학은 문장력을 바탕으로 한다. 아무리 풍부한 상상력과 다양한 체험도 문장력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문학 작품으로 탄생될 수가 없다. 사춘기 시절 일기 쓰던 행위가 나의 문장 수업에 상당한 도움을 주었을 것이라는 걸 성인이 된 후에 깨닫게 되었다.

문장의 수련 뿐 만이 아니었다. 하루의 생활을 돌아보며 자신을 성찰하고 떠오르는 생각을 계속 기록하던 일이 곧 사고의 훈련 과정이었으며 논리적 사고의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성인이 되어서도 늘 마음 한 구석에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그 시절 일기를 썼던 습관에 기인한다고 나는 단언한다.

나는 일기를 쓰며 방황과 갈등을 다스리고 극복했다. 사랑에 대한 갈증을 해소 할 수도 있었다. 그것은 곧 문학 행위와도 같은 것이다. 일기를 쓰면서 나는 열심히 문학의 습작 활동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젊은 날의 방황은 참으로 길고 험난했다. 결혼을 하고 나는 비로소 안정을 찾았다. 이후 나의 생활에 조그만 변화가 생겼는데 바로 그 동안 잊고 있던 문학에 다시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떠오르는 생각을 일기장에 기록하는 일이나 습작노트에 떠오르는 생각을 기록하는 행위는 동일한 것이다. 문학이 조금 더 세련된 표현이나 짜임새 있는 구성은 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생각과 체험을 쓴다는 점에선 동일하다.

나는 열심히 썼다. 옛날에 일기를 쓰던 그 열정으로 시를 썼다. 생활의 애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일기장에 털어 놓듯 작품 속에 담아냈다. 상당 기간의 습작기를 거쳐 나는 시집을 내기로 하고 인천의 중진시인 랑승만 선생님의 발문을 받아 첫 시집을 발간했다.

요식행위에 불과한 것이긴 하지만 문단의 등단 절차를 밟고 싶었지만 쉽지가 않았다. 신춘문예도 응모해보고 문예지에도 몇 군데 작품을 보내봤지만 연락이 없었다. KBS의 한 프로그램에서 실시했던 백일장에 입선했을 뿐이고 여기저기 신문과 교양잡지의 독자란에 습작 몇 편이 실렸을 뿐이다.

그러나 나는 나의 작품에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추천을 받지 못했어도 나의 작품에 대한 발전 가능성을 스스로 믿고 작품집을 계획했다. 한국문단의 원로이신 서천 랑승만 선생님께서는 과찬의 발문으로 필자를 격려해 주셨다.

나는 학생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 일기를 쓰라는 것이다. 한 줄이라도 좋고 이삼 일 건너뛰어도 좋다. 그러면 여러분의 논리적 사고력은 한층 향상될 것이다. 작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영어로 일기 쓸 것도 권하고 싶다. 자신도 모르게 영어에 자신감이 붙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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