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 김 기 택 환하고 넓은 길 뒷골목에 갈라지면서 점점 좁아지는 골목에 어둠과 틈과 엄폐물이 풍부한 곳에 고양이는 있다. 좁을수록 호기심이 일어나는 곳에 들어갈 수 없어서 더 들어가고 싶은 틈에 고양이는 있다. 막 액체가 되려는 탄력과 유연성이 있다. 웅크리면 바로 어둠이 되는 곳에 소리만 있고 몸은 없는 곳에 고양이는 있다. 단단한 바닥이 꿈틀거리는 곳에 종이박스와 비닐 봉투가 솟아오르는 곳에 고양이는 있다. 작고 빠른 다리가 막 달아나려는 순간에 눈이 달린 어둠은 있다. 다리와 날개를 덮치는 발톱은 있다. 찢어진 쓰레기봉투와 악취 사이에 꿈지럭거림과 부스럭거리는 소리 사이에 겁 많은 더러운 발톱은 있다. 바퀴와 도로 사이 보이지 않는 속도의 틈새를 빠져나가려다 터지고 납작해지는 곳에 고양이는 있다. 《문학과 사회》2016 여름호 김기택: 1957년 안양 출생. 1989년『한국일보』신춘문예로 등단. 시집『태아의 잠』『바늘구멍 속의 폭풍』『사무원』『소』『껌』『갈라진다 갈라진다』등이 있음. |감상 노트|추리소설의 행간으로 독자를 이끄는 언어의 힘 왜 시를 쓰느냐는 질문에 김기택 시인은 시 쓰는 일이 재미있어서 시를 쓴다고 했다. 시 쓰는 일이 재미가 없다면
아이를 키우며 렴형미 처녀시절 나 홀로 공상에 잠길 때며는 무지개 웃는 저 하늘가에서 날개 돋쳐 훨훨 나에게 날아오던 아이 그 애는 얼마나 곱고 튼튼한 사내였겠습니까 그러나 정작 나에게 생긴 아이는 눈이 크고 가냘픈 총각 애 총 센 머리칼 탓인 듯 머리는 무거워 보여도 물푸레아지 인 양 매출한 두 다리는 어방없이 날쌘 장난꾸러기입니다. 유치원에서 돌아오기 바쁘게 고삐 없는 새끼염소마냥 산으로 강으로 내닫는 그 애를 두고 시어머니도 남편도 나를 탓 합니다 다른 집 애들처럼 붙들어놓고 무슨 재간이든 배워줘야 하지 않는가고 그런 때면 나는 그저 못 들은 척 까맣게 탄 그 애 몸에 비누거품 일구어댑니다 뭐랍니까 그 애 하는 대로 내버려두는데 정다운 이 땅에 축구공마냥 그 애 맘껏 딩구는데 눈 올 때면 눈사람도 되어 보고 비 올 때면 꽃잎마냥 비도 흠뻑 맞거라 고추잠자리 메뚜기도 따라 잡고 따끔따끔 쏠쐐기에 질려도 보려무나 푸르른 이 땅 아름다운 모든 것을 백지같이 깨끗한 네 마음속에 또렷이 소중히 새겨 넣어라 이 엄마 너의 심장은 낳아 주었지만 그 속에서 한생 뜨거이 뛰어야 할 피는 다름 아닌 너 자신이 만들어야 한단다 네가 바라보는 하늘 네가 마음껏 딩구는 땅이
들꽃의 시인 나태주 시인이 시 선집을 냈다. 이번 선집은 특이한 면이 있다. 먼저 시인의 서문 일부분을 옮겨 본다. "이 책은 그리하여 시와 시인과 동시대 시인들에 대한 간절한 소감을 그때 그때 시의 형식을 빌려서 쓴 글들을 모은 것이다. 한 시대 한 시인이 그렇게 그렇게 이땅에 살았다 갔음을 기념하고 싶어서 내는 책이다." 시인의 말대로 이 선집은 1부 '시' 2부 '시인' 3부 '시인을 위하여'로 구성되어 있다. 거의 모든 시 말미엔 시를 쓴 연월일이 표시되어 있는데 1970년대 초반부터 2016년도 작품까지 망라되어 있다. 이 시는 시로 쓴 시인의 자서전이며 시로 쓴 시론이자 시인론이다. 시집의 표제작을 먼저 읽어본다. 시 ‧ 2 마당을 쓸었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깨끗해졌습니다 꽃 한 송이 피었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아름다워졌습니다 마음속에 시 하나 싹텄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밝아졌습니다 나는 그대를 사랑합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더욱 깨끗해지고 아름다워졌습니다 1989.10.22 이 시인에게 시 쓰는 일은 마당을 쓰는 일이며 꽃 한 송이 피우는 일이며 그리고 바로 그대를 사랑하는 일이 된다. 마당을 쓰는 일은 내가 사는 곳을 깨끗하게 하
어미 곰처럼 이어령 어미 곰은 어린 것이 두 살쯤 되면 새끼를 데리고 먼 숲으로 간다고 해요. 눈 여겨보아두었던 산딸기밭 어린 곰은 산딸기에 눈이 팔려서 어미 곰을 잊고 그 틈을 타서 어미 곰은 애지중지 침 발라 키우던 새끼를 버리고 매정스럽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버려요. 발톱이 자라고 이빨이 자라 이제 혼자서 살아갈 힘이 붙으면 혼자 살아가라고 버리고 와요. 새끼 곰을 껴안는 것이 어미 곰 사랑이듯이 새끼 곰 버리는 것도 어미 곰 사랑. 불같은 사랑과 얼음장 같은 사랑.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산딸기밭을 보아두세요. 아이들이 정신을 팔고 있는 동안 몰래 떠나는 헤어지는 연습도 해두세요. 눈물이 나도 뒤돌아보지 않는 그게 언제냐고요. 벌써 시작되었어요. 탯줄을 끊을 때부터 걸음마를 배울 때부터 손을 놓아주었던 그때부터 무릎을 깨뜨려도 잡은 손 놓아주었던 날을 기억하세요. 시작노트 이어령 박사는 한국을 대표하는 지성이다. 문학평론가이며 문화비평가이며 학자이며 언론인이다. 소설가이자 수필가이며 희곡작가다. 동화작가이기도 하다. 그의 이름 앞에 시인의 이름은 빠졌었다. 이제 그의 이름 앞에 시인의 이름이 붙게 되었다. 시집을 출간했기 때
5월 17일 오전 매스컴은 일제히 한국 소설가 한강이 세계 3대 문학상 중의 하나인 맨부커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문학계는 물론 전 국민은 환호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소설가 한강이 누구이며 맨부커상은 어떤 상이며 상금은 얼마나 되는지 궁금했을 것이다. 상금이야 8,600만 원 정도로 작가와 번역가가 나눌 경우 큰 상금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앞으로 이 문학상이 몰고 올 파장은 예측 불허이다. 작가의 세계적인 인지도로 얻게 되는 부수적인 효과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문학계는 물론 전 국민이 이런 축제 분위기에 들떠 있기 하루 전 페이스 북에는 쓸쓸한 글이 하나 올라왔다. 베스트셀러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최영미 시인이 마포세무서로부터 근로 장려금을 신청하라는 통보를 받았다는 내용을 SNS에 올린 것이다. 근로 장려금이란 연 소득이 1,300만원 미만이고 무주택자에게 주는 생활보조금인데 그것도 일 년에 한 번 최대 수혜자가 210만 원 정도인데 최영미 시인의 경우 59만 5,000원을 받게 된다는 내용이다. 시인은 왜 이런 사실을 SNS에 올렸을까. 며칠 지나 다시 같은 SNS에 “전 그저 지인들에게 제 사정을 알리려고 글을 올렸는데, 이렇
날개를 위하여 홍 윤 숙 한 생에 벌겋게 바가지로 쏟아 모은 진액의 땀방울들 그 아픈 궤적들을 나는 지금 폐수처럼 날마다 하수구로 흘려버리고 있다 이건 아니다 이래서는 안돼 조바심치는 내 안에서 또 하나의 내가 아니야 버려야 해 버리는 일이 네게 남은 유일한 숙제 얼마나 잘 버리느냐가 얼마나 잘 살았느냐의 답인 것을 버리지 못하여 노욕을 쌓고 버리지 못하여 노추를 부리는 미련은 싫다 버리고 버려서 깨끗이 비워 내야 비상의 날개를 달 수 있다 돌아가는 날 날개 없이 하늘을 날을 수는 없으니… 한 생애 지고 온 영욕의 땀 그 무거운 생의 항아리 이제 미련 없이 말끔히 비워내야 한다 비우는 일만이 네게 남은 일 천천히 소리 없이 흔적 없이… 시 감상 삶의 마무리 단계에서는 비워내야 하는 일이 절실한 과제가 되는가보다. 법정 스님의 버리고 떠나기란 책을 흥미 있게 읽은 적이 있다. 스님은 시종일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버리고 떠나기라고 말하고 있다. 욕심을 버릴 때 자기 내면의 목소리와 진실 되게 만날 수 있으며 지금보다 조금만 더 겸손하고 더 욕심을 버리면 삶은 한층 여유로워진다고 말하고 있다. 박경리 선생의 유고시집 버리고 갈 일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를
지하철역에서 십오 분 거리 신미나 마당이 있는 저 집에서 살면 참 좋겠다 언덕 위에는 여자대학교가 있고 배구공 튕기는 소리가 가끔 들리고 비빔국수 잘하는 냉면집도 있고 가을이면 키 큰 은행나무가 긍지처럼 타오르는 동네 문방구 평상에 한참을 앉아 있어도 핀잔주지 않는 할머니가 있고 옆에서 신문지 깔고 고구마순 껍질이나 같이 벗기고 싶고 해 지기 전에 수건을 걷어 오른팔에 얹고 옥상에서 내려갈 때 젖이 불은 개가 골목을 지나가는 것을 보기도 하는 집 보러 갔다가 그냥 간다 이가 썩어 구멍난 데를 혀로 쓸어 보면서 돌아보는 사직동 《 리토피아》2015 겨울호 * 신미나 1978년 청양 출신. 2007년 《경향신문》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싱고,라고 불렀다』. 시 감상 신미나 시인은 이제 30대 후반의 시인이다. 그런데 시 속에 보이는 정서는 여타의 젊은 시인들과는 다르다. 마음씨 너그러운 할머니가 있고 그 할머니가 고구마순 껍질을 벗기는 모습에서 시인의 소박한 시정신이 드러난다. 전셋집을 보러 다니는 화자는 가난한 시골 태생으로 도회지에 올라와 이제 막 신혼 생활을 시작하려는 새 신부가 아니었을까. '수건을 걷어 오른팔에 얹고 옥상에서 내려갈 때 젖이 불은 개가 골
집밥 한 끼 박라연* 아이 맡길 곳이 절박해지자 정으로 똘똘 뭉쳐 흐르는 강물을 보면서 물의 대화 사이로 입술을 쭈욱 내밀더군요 물결엔 반드시 모성이 있다고 믿게 되었던 거죠 주저함 없이 겨우 중학생이던 아들의 뼛가루를 뿌리더군요 뼛가루가 뿌리내린 듯싶은 거기를 해마다 찾아가네요 한 해에 한 끼라도 챙기고픈 엄마의 손을 알아본 물결은 목젖이 보이도록 크게 입을 벌려주네요 또 그 마음을 알아차린 엄마는 흰 국화 꽃잎을 정성껏 따서 한참을 던지더군요 《실천문학》2015 겨울호 *1951년 생. 1990년 『동아일보』등단. 시집『서울에 사는 평강공주』,『생밤 까주는 사람』,『너에게 세 들어 사는 동안』,『공중 속의 내 정원』,『빛의 사서함』등. 윤동주상 문학부문 대상, 대한민국문화예술상, 박두진문학상 등 수상. 시인의 감정이 배제된 곳에서 감동은 샘솟는다. 어느 경우에나 비극에 대해 시인이 먼저 울면 시의 묘미는 반감된다. 이 시도 전혀 시인의 감정이 개입되지 않고 객관적인 묘사에 그쳤기 때문에 독자의 감성을 자극하고 비로소 감동의 소용돌이가 일렁이게 된 경우다. 어린 자식의 뼛가루를 강물에 뿌리는 어미의 기막힌 사연을 다루면서도 시의 처음부터 끝까지 감정이 격
박하사탕 하나가 녹는 시간 조경숙 집에서 일터까지의 걸음은 김광석의 '서른 즈음'이 세 번 쯤 반복되는 시간 신호등을 지나고 우체국을 지나 신발주머니 흔드는 내 아홉 살 초등학교를 지나고, 중학교와 아파트 사잇길 갈래머리 멈칫멈칫 사춘기가 지나고 그 다음은 내가 이름 붙인 마이웨이, 4대악이 없는 육교 위 좌우를 한 번씩 내려다보는 건 나의 오랜 습관 양 방향을 향해 내달리는 자동차들 이곳까지 오면 얇게 입안에 남아있는 박하사탕에 혀가 베일 수 있는 시간 와지끈,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입안에 고인 달달한 환상 오늘의 단맛은 여기까지. - 2016 계간『학산문학』봄호에서 * 조경숙: 2013『시와 정신』으로 등단. 시집 『절벽의 귀』가 있음. 인천에서 활동. 화자는 지금 집에서 일터까지 걸어가고 있다. 일터는 어떤 곳인가. 내 경제생활의 기반이 되는 곳, 나의 발전이 가감 없이 도모되는 곳, 내가 이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 현장이 되는 곳이다. 그런 일터에서 내 행복의 일정한 부분이 보장되기도 할 것이다. 일터로 향하면서 화자는 박하사탕을 하나 입에 물고 출발한다. 입안에서 서서히 녹고 있는 박하사탕, 그 단맛은 바로 생활의 소소한 즐거움일 테고 생활 속
전에 읽었던 시집을 다시 읽곤 한다. 그러나 마음에 감동을 준 시집을 다시 읽는 것이지 아무런 감동은 없고 읽기에 피로하기만 했던 시집은 읽지 않는다. 수십 년 시를 읽고 써왔지만 아직도 시를 읽는데 서투르다. 현대의 그 복잡하고 난해한 시를 읽으면 즐거운 것이 아니라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안 읽으면 그만이지 뭣 하러 고통을 느끼면서까지 시를 읽느냐 할지 모르지만 시를 읽고 싶은 호기심, 현대시를 알고 싶은 욕구, 문학작품을 읽으며 공감하고 시대와 함께 호흡하고 있다는 동질감을 찾아 자꾸 시를 읽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지없이 나는 허탈한 마음을 안고 책장을 덮게 된다. 그러던 중에 내 마음에 그 울림이 그대로 전달되는 작품집을 만나면 여간 반가운 게 아니다. 그런 시집들은 대개 대가들의 작품집인 경우가 많은데 젊은 시인들 중에서도 더러 그런 시집을 발견하면 기쁨이 크다. 그런 경우 시인에 대한 인상이 강렬하게 남아 있어 그 시인은 잊지 않고 마음에 각인된다. 가끔은 나도 속게 된다고 할까, 뭐 그런 일도 있다. 단편적으로 인터넷 메일로 배달되어 오는 시 중에 아주 마음에 쏙 드는 작품이 있어 그 시인의 시집을 사서 보고는 실망하는 경우가 있다. 그 시
나와 세상을 향한 관조의 시선 - 류인채 시집 소리의 거처를 읽고 옛날에 다 읽었던 시집을 다시 읽었다. 인천의 시인들에 대해서 좀 더 관심을 갖고 살펴보아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인천의 문학도 많이 발전했다. 소설도 수필도 십여 년 전에 비하면 눈부시게 발전했다. 시도 그렇다. 상당히 비중 있는 시집들이 연이어 출간되고 있다. 류인채 시인도 그 중에 하나다. 인천문학의 희망이 걸린 기대주임에 틀림없다. 수록 작품 전부를 다루기엔 무리고 특별히 선별하지는 않고 아무렇게나 펼쳐 읽은 작품 중에 세 편에 대해서 소감을 적어 본다. 우선 거북을 읽어보자. 거북 전동차 문이 닫히는 순간 덜컹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목과 두 팔이 문틈에 끼었다 성급히 빠져나간 두 다리만 문밖에서 버둥거린다 그러나 폐지 자루를 움켜쥔 손은 완강하다 손등에 적힌 갑골문자가 그가 헤맨 도시의 길들을 보여주고 있다 움켜쥔 자루는 꿈쩍도 않고 門이 큰칼*이 되어 깡마른 노인의 목을 겨누고 있다 절룩이며 거둔 따끈한 뉴스들 아무렇게나 접힌 아침이 너무 육중하다 방금 전까지 선반을 더듬던 손은 나무토막처럼 뻣뻣하고 쫓기듯 두리번거리던 눈빛은 단도처럼 자루에 꽂혀 있다 안도 밖도 아닌 그 노인 눈만
시심은 동심과상통한다 -윤일주 시집 동화를 읽고- 윤동주의 아우 윤일주 많은 시 독자가 가장 좋아하는 시인을 꼽으라면 윤동주다. 그만큼 우리에게 친숙하고 국민의 사랑을 받는 시인이 윤동주다. 그런데 그의 친동생 윤일주가 시인이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윤동주 사후에 유고시집으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나온 것과 마찬가지로 윤일주도 사후에 시집 '동화'를 남겼다. 윤동주 시에 아우가 등장하는 시가 두 편 있는데, '아우의 인상화'와 '오줌싸개 지도'이다. 아우의 인상화 붉은 이마에 싸늘한 달이 서리여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 발걸음을 멈추어 살그머니 애된 손을 잡으며 너는 자라 무엇이 되려니 사람이 되지 아우의 설운 진정코 설운 대답이다 슬며시 잡았던 손을 놓고 아우의 얼굴을 다시 들여다본다 싸늘한 달이 붉은 이마에 젖어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 -윤동주, '아우의 인상화' 전문, 1938. 9. 15. 여기에 나온 동생이 바로 윤일주 초상이다. 윤일주는 1927년 요즘 '연변'이라는 지명으로 우리에게 친근한 만주 북간도 명동에서 태어났다. 윤동주는 해방 직전 일본 감옥에서 옥사했지만, 윤일주는 해방 직후 진학을 위해 서울에 왔다.
시 감상 하얀 봄 / 최일화 입춘도 엊그제 지나고 옷수선집 유리창엔 어린 봄의 웃음소리 완행버스를 타고 몇 조각 남아 있을 고향 햇살이나 쬐고 올까. 바다가 보이는 들판으로 가 옛날의 오솔길을 한동안 걷다 올까. 솔개 날개깃에 봄이 실려 왔는데 토끼풀 망태 속에 봄이 담겨 왔는데 봄은 이제 소래갯벌 갯고랑 오리 물질에 떠다니네. 폐선의 깃발에 하얀 봄이 나부끼네. 감상 내가 인천에 정착한지도 37년이 되었다. 인천은 내게 낯선 고장이었다. 33년 교직생활을 인천에서만 했고 인천에서 결혼하고 딸 세 자매를 낳아 출가시켰으니 명실상부하게 인천은 이제 나의 고향이 되었다. 고향엘 가면 고향이 낯설고 서울엘 가면 서울이 낯설다. 고향에 가면 내가 촌놈 같고 서울에 가면 또 촌놈 같다. 인천에 살았어도 내가 도회지 사람이란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나도 모르게 도회지의 생활 습성에 젖었겠지만 마음으로는 여전히 촌사람이라고 여기고 살아왔다. 나의 고향은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앞에는 너른 들판이 펼쳐져 있고 뒤로는 야산이 펼쳐지다가 점점 높은 산이 이어져 병풍처럼 둘러쳐진 고장이다. 멀리 차령산맥이 굽이굽이 흘러 소나기라도 한줄기 지나고 나면 먼 산봉우리가 신
할머니들/ 최일화 마을버스가 지나가는 정류장 의자에 전깃줄에 앉아 있는 참새들처럼 날개를 접고 앉아 있는 할머니들. 바람이 불 때마다 깃털을 날리며 한 곳을 바라보는 참새들처럼 버스가 섰다가 떠날 때마다 출입문 쪽을 일제히 바라보는 할머니들. 틀니를 빼놓고 나와 앉아 있는 합죽이 할머니도 있다. 날개를 다친 참새처럼 할머니 하나는 지팡이를 짚고 앉아 있다. 할아버지 하나가 조금 떨어진 곳에 강남에서 온 제비처럼 앉아 있다. 감상 나는 할아버지 할머니 사랑이 각별하다. 할아버지 할머니 슬하에서 대가족을 이루고 살았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 늘 가슴에서 떠나지 않는다. 초등학교 6년을 매일 같이 할아버지 할머니께 “할아버지 학교에 다녀오겠습니다. 할머니 학교에 다녀오겠습니다.” 인사를 하고 등교를 했고 학교에 다녀와서도 인사를 했다. 인사를 하지 않으면 무엇인가 빼먹은 것 같아서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인사를 드리곤 했다. 그런 할아버지가 6학년 2학기 때 추석을 일주일 앞두고 돌아가셨다. 나는 대청마루가 꺼질듯이 꽝꽝 발을 구르며 울부짖었다. 할머니는 내가 스물여덟 살 때 돌아가셨다. 내가 늦게 입대하여 제대를 하던 해였다. 그때는 할머니 친구 분들이 빈소를 찾았을
시단 육신 최일화 어머니의 육신은 이제 다 썩었을 거야. 내가 먹고 자란 어머니의 젖 그 젖무덤도 이제 다 썩어서 흙이 되었을 거야. 사시사철 밥상 차려주던 어머니의 손 그 따뜻하던 손도 이제 다 썩어서 아무런 흔적도 없을 거야. 어머니의 육신은 이제 다 썩어서 바람이 되고 물이 되었을 거야. 저 강산 저 들판햇살이 되었을 거야. 시작노트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도 벌써 20여년이 지났다. 어머니를 생각할 때 마다 나는 안타깝다. 그 시절 우리의 어머니들의 삶이 모두 다 곤궁하고 배운 것 없고 가부장제 하에서 많은 권리를 포기하고 살았다고는 하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더 회한은 깊어져 간다. 왜 용돈을 좀 더 드리지 못했는지 어머니 모시고 공원이나 바닷가 나들이 한 번 못했는지 아무리 핑계거리를 찾고 구실을 붙여도 소용이 없다. 무릎이 아파 그 고생을 하셨는데 왜 큰 병원엘 한번 모시고 가지 못했는지 좋은 음식점으로 모시고 가 왜 함께 식사를 하지 못했는지 후회스러운 마음뿐이다.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변함이 없다. 평생에 걸친 아버지의 이중생활로 어머니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마음고생을 하셨다. 양가 어른들께서 혼인을 시켰는데 아버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