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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시 감상> 하얀 봄

<시 감상>


하얀 봄 / 최일화



입춘도 엊그제 지나고
옷수선집 유리창엔 어린 봄의 웃음소리

완행버스를 타고 몇 조각
남아 있을 고향 햇살이나 쬐고 올까.

바다가 보이는 들판으로 가
옛날의 오솔길을 한동안 걷다 올까.

솔개 날개깃에 봄이 실려 왔는데
토끼풀 망태 속에 봄이 담겨 왔는데

봄은 이제 소래갯벌 갯고랑
오리 물질에 떠다니네.
폐선의 깃발에 하얀 봄이 나부끼네.


<감상>

내가 인천에 정착한지도 37년이 되었다. 인천은 내게 낯선 고장이었다. 33년 교직생활을 인천에서만 했고 인천에서 결혼하고 딸 세 자매를 낳아 출가시켰으니 명실상부하게 인천은 이제 나의 고향이 되었다. 고향엘 가면 고향이 낯설고 서울엘 가면 서울이 낯설다. 고향에 가면 내가 촌놈 같고 서울에 가면 또 촌놈 같다. 인천에 살았어도 내가 도회지 사람이란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나도 모르게 도회지의 생활 습성에 젖었겠지만 마음으로는 여전히 촌사람이라고 여기고 살아왔다.

나의 고향은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앞에는 너른 들판이 펼쳐져 있고 뒤로는 야산이 펼쳐지다가 점점 높은 산이 이어져 병풍처럼 둘러쳐진 고장이다. 멀리 차령산맥이 굽이굽이 흘러 소나기라도 한줄기 지나고 나면 먼 산봉우리가 신비로운 미지의 세계 성곽처럼 보이곤 했다. 나는 저 산꼭대기 그 봉우리 너머엔 무엇이 있을까 궁금해 했다. 긴 산맥은 늘 미지의 세계를 펼쳐놓곤 했다.

나의 집은 큰집 옆에 지어진 작은 집이었다. 담장도 없는 흙벽돌로 지은 초라한 집이었다. 대궐 같은 큰집에서 열다섯 살 까지 살다가 처음으로 가져본 나의 오두막집이었다. 이 집에서 나는 토끼를 기르고 돼지를 기르고 친구에게 비둘기 한 쌍을 얻어다가 길렀다. 토끼에게 먹이를 주는 것은 전적으로 나의 몫이었다. 비가 올 때를 대비하서 미리 먹이를 준비해 놓아야 했고 겨울 양식을 위해서 콩잎, 아카시아 잎, 무 잎사귀를 미리 말려 저장해 두어야 했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입춘이 지나면서 날은 점점 따뜻해지고 2월 중순이 되면 나는 벌써 토끼 망태를 둘러메고 들녘으로 나갔다. 들녘 양지쪽엔 벌써 파란 풀이 솟아나 있었다. 어느 곳엔 새파랗게 올라온 곳도 있다. 나는 이른 봄의 싱싱한 풀을 뜯어 망태에 담아 돌아오곤 했다. 토끼장 문을 열고 한 움큼 넣어주면 토끼는 진수성찬을 맞은 듯 맛있게 먹곤 했다. 벌써 까마득한 옛날 일이다.

요새 내가 제일 자주 나가는 곳은 소래습지생태공원이다. 여기 저기 염전과 소금창고가 아직 남아 있을 때, 염부들이 구슬땀을 흘리며 소금을 만들 때부터 나는 소래갯벌을 찾곤 했다. 염전을 지나 갯고랑을 따라 소래포구까지 가곤 했는데 갯고랑엔 늘 오리들이 있었다. 추운 겨울을 보내고 새봄을 맞이하여 힘차게 자맥질하는 오리들을 보면 완연한 봄기운이 느껴지곤 했다. 갯고랑에 정박한 고깃배엔 빨강, 노랑, 파랑, 흰빛의 깃발이 갯바람에 나부꼈다. 오늘이 입춘, 햇빛은 맑고 바람은 한결 부드럽다. 머지않아 봄은 만물에 생기를 불어넣으며 남풍에 화신을 싣고 우리 곁으로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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