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한 해 동안 수많은 기념일을 맞이하며 생활하고 있다. 삼일절, 광복절과 같은 국경일을 비롯하여 부처님 오신 날, 크리스마스와 같은 종교적인 기념일, 또 생일이나 결혼기념일 같은 개인적인 기념일부터 선조들의 제삿날 까지 다양한 형태의 기념일이 있고 그 기념일에 알맞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내가 너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너는 내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하는 김춘수 시인의 시처럼 우리는 평범한 일상에 하나의 이름을 붙임으로써 그날을 하나의 의미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바쁘게 생활하다 보면 그 기념일의 의미를 미처 깨우치지도 못하고 그대로 흘려보내는 일이 허다하다. 물론 모든 기념일이 누구에게나 다 소중하고 의미있는 기념일일 수는 없다. 어린이날이 어린이에게 소중하고 결혼기념일이 부부에게 소중하듯 그 기념일마다 개인에게 다가오는 의미는 다양할 것이다. 그렇다면 청소년들에겐 어떤 기념일이 소중하고 어떻게 그 의미를 되새겨야 할 것인가.
나는 졸업과 입학을 우선 꼽고 싶다. 미국에서는 졸업식을 'The Commencement'라고 한다. 곧 '시작' '개시'라는 뜻이다. 물론 하나의 끝과 또 하나의 시작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 인생도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 여행도 끝이 있고 시작이 있다. 한 해도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 이 알파와 오메가의 의미를 잘 되새겨 일상을 소중하게 가꾼다면 삶은 한결 윤택해질 것이다. 시간의 소중함도 다시 한번 깨닫게 될 것이다.
이제 곧 졸업식이 다가 온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은 커다란 희망을 안고 중학교에 진학할 것이고 중학교를 졸업하는 학생들은 청년다운 늠름한 포부를 안고 고등학교에 진학할 것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학생들은 대학과 사회라고 하는 더 큰 세계로 나아가 자신의 꿈을 펼칠 것이다. 이렇게 청소년들 모두가 졸업을 하고 새로운 무대로 나아가는 이 계절에 청소년들은 새로운 설계로 분주하다. 희망에 들뜨기도 하고 혹자는 패배감을 안고 상심에 젖어있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원하는 대학 원하는 학교에 진학하지 못 했다고 해서 상심에 젖어 있기엔 우리의 심장의 박동소리가 너무도 우렁차지 않은가. 사랑하는 애인을 잃은 것도 아니고 노벨상을 놓친 것도 아니고 소중한 나의 친구를 빼앗긴 것도 아니다. 꿈을 잃은 것도 아니고 미래를 빼앗긴 것도 아니다. 잃은 것이 있다면 이 사회의 편견에서 조금 비켜선 것에 불과하다.
우리 사회엔 편견이 만연해 있다. 일류대에 대한 편견, 특목고에 대한 편견, 실업고에 대한 편견이 산재해 있다. 편견은 그냥 편견일 뿐이다. 길은 얼마든지 열려 있다. 일류대에 특목고에 진학하는 학생도 어차피 편견에서 약간 비켜서야 하는 것이라면 상심에 젖어있는 학생과 다시 동등한 위치가 된다.
용기와 의지에 따라 성공의 길은 활짝 열려 있다. 일류대가 아니라도 특목고가 아니라도, 아니 굳이 대학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성공할 수 있는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편견에 굴하지 말고 허영에 들뜨지 말고 나의 소질 나의 적성에 따라 나의 길을 가자. 아름답고 즐거운 나의 길이 나를 환하게 맞이해 줄 것이다. 이제 졸업시즌이 다가 왔다. 움츠리지 말고 어깨를 활짝 펴고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가자. 내일을 향해 축포를 터트리자. 졸업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commencement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