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학을 한 지도 이틀이 지났다. 교실은 오랜만에 만난 아이들의 이야기로 웃음꽃이 피어났고, 교무실은 새 학년을 준비하는 선생님들의 움직임이 바쁘기만 하였다. 교정 울타리 여기저기 개나리 나무 위에는 봄기운에 물이 오른 듯 파란 잎이 돋아나고 있었다.
아침 조회시간. 신학기 때문일까? 아이들에게 전달사항과 주문사항이 많았다. 첫 단추를 잘 끼워야 된다는 생각으로 아이들이 지켜야 할 내용들을 일목요연(一目瞭然)하게 이야기 해주었다.
내 이야기를 경청하는 아이들의 표정이 여느 때와 달리 조금 경직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한 남학생이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러자 모든 아이들의 시선이 그 학생에게 집중되었다.
“선생님, 질문 있습니다.” “그래, 무슨 질문을?”
“저희 반은 실장을 뽑지 않습니까?” “실장을? 선출해야지. 언제쯤이 좋을까?”
“마지막 시간이 어떨까요?” “그래, 그럼 누가 실장이 되면 좋을지 한번 생각해 보렴.”
사실 새 학기가 접어들면 담임으로서 큰 고민거리들 중의 하나가 실장선출이다. 고등학교의 경우, 실장을 역임하면 대학입시에 유리한 조건이 주어진다는 이유로 어떤 아이들은 실장 선출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또한 일부 극성맞은 학부모들은 자신의 자녀를 실장으로 시키기 위해 혈안이 된다고 한다.
부모에 의해 선출된 실장이 과연 학급을 위해 희생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생긴다. 또한 급우들로부터 신임을 받을 수 있을 지도 궁금하다. 실장이라는 직책이 대학입시의 도구로 이용되어 진다는 사실에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모든 것이 현행 입시제도가 불러 낸 부작용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마지막 시간. 교실 문을 열자 청소를 끝낸 아이들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자리에 앉아 있었다. 실장을 선출한다는 이야기를 사전에 예고한 탓인지 교실 분위기는 자못 긴장감마저 감돌았다. 우선 아이들로부터 추천을 받았다. 3명의 아이들이 추천을 받아 후보자가 되었다.
3명의 아이들로부터 간단한 유세를 듣고 난 뒤, 투표가 이루어졌다. 가장 많은 표를 얻은 사람이 실장이 되고 그 다음 차점자가 부실장이 되는 것으로 하였다. 아이들로부터 투표용지를 모두 회수하고 난 뒤 개표를 하였다. 아이들은 자신이 투표한 후보자의 이름이 나올 때마다 환호를 하였다.
투표결과, 두 아이가 끝까지 경합을 벌이다가 간만의 차이로 여학생이 실장으로 선출되었다.
“실장 OOO, 부실장 OOO"
나의 발표가 떨어지자 아이들 모두는 박수 갈채를 보내주었다. 그리고 두 아이는 차례대로 당선 소감을 발표하였다. 비록 준비된 당선 소감은 아니었으나 아이들 얼굴에서 그 어떤 “의지”와 “다짐”을 읽을 수가 있었다.
이제 우리 학급은 먼 항해를 시작하기 위해 닻을 올린다.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는 우리들 앞에는 수많은 난관이 있으리라 본다. 항상 처음 시작할 때의 마음으로 아이들과 동고동락하며 생활해 갈 것을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