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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교사를 무릎 꿇게 하는 사회'에서 교육은 죽는다

세상에서 자기 자식처럼 귀한 것은 없다. 오죽하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다고 했을까. 자식들이 누구보다도 뛰어나게 잘 자라주기를 바라는 것은 이 세상 모든 부모의 공통된 마음일 것이다. 그래서 자식을 위하여 기꺼이 희생하며 ‘기러기가족’ 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나 요즘은 자식사랑이 그 도를 넘어 가정도 사회도 사랑의 채찍이 없어짐으로써 정신은 막대기처럼 야위고 몸뚱이는 비만인 ‘비정상아’로 자라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남을 짓밟거나 비정상적인 수단을 써서라도 최고가 되어야 하고, 내 아이가 남에게 기죽어 사는 것을 절대 못 보는 세상이 되었다.

하지만 자기자식 귀하면 남의 자식도 귀하다는 평범한 진리는 모르는 것 같다. 자기 자식으로 인하여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남의 자식들의 피해는 아랑곳 하지 않는다. 이렇게 가정교육의 부재 속에 어릴 때부터 나만 최고라는 생각으로 자란 아이들, 내 행동이 그릇되고 공동체 생활에 위배되어도 죄의식이 전혀 없는 무감각한 생활에 아이들은 점차 익숙해져 가고 있다.

‘자식사랑’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옛날에는 서당에 자식을 맡긴 부모가 싸리나무로 한 아름의 회초리를 만들어 서당의 스승에게 바쳤다고 한다. 자식의 종아리를 때려서라도 부디 제대로 된 ‘인간’을 만들어 달라는 의미였다. 그러나 요즘은 자기 자식에게만은 최소한의 ‘교육적 채찍’도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교육의 도시’에서 교직에 갓 발 디딘 젊은 여교사가 조카 같은 어린 초등학교 아이들의 잘못된 식습관을 고쳐주기 위해 남보다 적극적으로 지도한 것을 두고 항의하는 과정에서 학부모가 교사의 무릎을 꿇게 했다. 그것도 사전에 동반한 방송사 카메라 기자 앞에서다. 또한 사건 전날에도 담임교사의 집 현관 앞에서 무릎을 꿇거나 사표를 내도록 강요하는 고성을 지르는 등 정당한 절차와 방법을 무시했다.

무심코 전화번호 하나 알려줘도 사생활 침해, 엄연히 학생규정에 명시된 대로 두발지도를 해도 인권 침해라고 난리치는 세상이다. 그러면 학부모가 교사를 무릎 꿇게 한 모습을 전국으로 방송하게 한 사건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물론 교사의 지도가 아무리 교육을 위한 것일지라도 그 절차나 방법상으로 정도를 심각하게 벗어났다면 마땅히 그에 대한 책임은 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교사를 무릎 꿇게 하는 학부모’ 앞에서는 소신껏 아이들을 제대로 된 ‘인간’으로 가르칠 수 없다. 이런 사회에서는 결국 교육은 죽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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