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서울에선 세계에 유래 없는 희한한 행사가 열리고 있다. 이른바 ‘기러기 가족 박람회’. 기러기 아빠들이 가족과 떨어져 사는 애환을 나누고 건강, 금융컨설팅 등 ‘나홀로 가장’으로 사는 데 필요한 각종 정보를 공유하는 자리다. 박람회에서는 병원, 금융사, 유학원, 여행사 등의 관련업체가 참여해 기러기 아빠들에게 각종 무료 상담을 실시하고 우울증 검사 등 건강검진 서비스도 제공하고 한다.
우리나라 학생의 해외 유학 주 대상지인 캐나다 밴쿠버 등 영어 생활권국의 도시에서는 기러기 가족의 수요에 따른 현지 임대수입을 겨냥한 사업이 때 아닌 특수를 맞고 있다. 공동주택 분양에 밤샘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을 정도란다.
현재 정부가 중학교 졸업생으로 조기유학 가이드라인을 낮춘 데다, 이러한 규제 완화를 틈타 부모가 동반한다는 전제로 미국은 초등학교 3년생부터, 캐나다는 초등학교 1년생부터 유학이 가능하게 되었다. 따라서 기러기 아빠로 상징되는 가족 해체, 과중한 경제적 부담, 무분별한 조기 유학 등 많은 사회적 문제에도 불구하고 너나 할 것 없이 자식들의 ‘핑크빛 미래’를 위한 新 ‘이산가족’은 줄어들 줄 모른다.
‘기러기 아빠’는 현재 대략 5만 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고, 교육수장 김진표 부총리의 딸도 미국 유학생이다. ‘기러기 가족 박람회’가 열리는 나라, 이러다가는 무분별한 해외 대탈출로 이른바 ‘엑서더스’ 세상이 올지도 모르겠다.
최근 ‘독수리 아빠’, ‘펭귄 아빠’라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기러기 아빠’가 해외로 떠난 가족들이 다시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며 춥고 외로운 생활을 참고 견디는 반면 ‘독수리 아빠’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 언제든 가족을 보러 갈 수 있는 이들이다. 이에 비해 해외로 나간 아내가 ‘본래의 목적’을 잊은 채 돌아오지 않고 가족들로부터 버림받아 당장 날아가고픈 마음은 있지만 능력이 없는 가장이 ‘펭귄 아빠’의 처지다.
문제가 이렇게 심각하다보니 정부에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묘안을 짜고 있지만 기대는 어둡기만 하다. 만약 공교육이 정상화 돼서 우리나라 학교교육이 세계 최고 수준이 된다면 이런 현상이 해소될까? 절대 아니다. 현 교육제도와 교육정책 하에서 우리의 학부모들은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학부모들은 자식들이 질 좋은 공교육을 받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자기 자식이 남들과의 경쟁에서 앞서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녀들이 해외로 나가 다양한 문화권의 학문과 외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것을 부정적으로만 보고 싶지는 않다. 더욱이 해외 유학을 통한 인재 육성이 자연스럽게 국제화로 이어져 결국 한국을 국제사회에 널리 알릴 수 있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일찍부터 외국에 나가 다양하게 교육받고 훗날 큰 보상을 받겠다는 ‘핑크빛 기대’에 반하여 감내할 노력과 고통의 대가가 너무 모호하고 막연하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자식의 성공을 위해 기꺼이 ‘나홀로’ 생활도 기꺼이 감수하며 외로움과 자괴감에 시달리고 있는 기러기 아빠, 독수리 아빠, 펭귄 아빠, 모두 일그러진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