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학교에서 4년째 근무하는 동안 어떨 때가 가장 곤혹스러웠느냐 하면 학부모들의 민원전화가 오거나 학부모들의 선생님들에 대한 요구사항이 들어왔을 때입니다. 학부모의 요구사항 중 선생님의 수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더욱 황당해지고 기분이 언짢아집니다.
어떤 때는 ‘어느 선생님을 3학년 담임을 시켜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어떤 때는 ‘아무개 선생님을 담임시켜 주세요.’합니다. 또 어떤 때는 ‘아무개 선생님은 수업이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합니다. 또 어떤 때는 ‘아무개 선생님은 중학교에서 올라온 선생님인데, 실업계에서 근무한 선생님인데 경험이 없는 선생님을 그 중요한 자연과반 수업을 하도록 해서야 되겠습니까?’라고 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때는 아무개 선생님 우리애 좀 가르치게 해 주세요'합니다.
이럴 때면 나름대로 해명하느라고 진땀을 뺍니다. 학부모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됩니다. 자기애들 조금이라도 좋은 선생님 만나 잘 배워 좋은 사람 되고 좋은 대학 들어가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갖고 있지 않겠습니까? 이 분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우리 선생님들이 만약 이런 전화를 직접 받았다고 하면 어떤 생각이 들고 마음이 어떠하시겠습니까? 우리 모두 냉정하게 반성해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내가 왜 학부모나 학생들의 입에 오르내리야 하느냐?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현재 나 자신은 어떠하며,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어느 교수님이 쓴 '아빠, 공부 좀 하세요'란 글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아빠, 미국 교수들은 비참하게 공부하지 않으면 안 돼요. 우리(시카고) 대학 교수들이 불쌍해요. 한 권위 있는 교수가 최근 몇 년간 저서와 연구논문을 내지 못하자 학교에서는 몇 년을 기다리다 할 수 없이 3층 넓은 그 교수의 연구실을 1층 좁은 구석방으로 옮기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 교수는 눈물을 흘리면서 꼼짝 못하고 짐을 싸서 옮기더라는 것이다......"
옛날 저가 고등학교 다닐 때 화학 선생님께서 우리 교실에 들어와 수업을 하시다가 학생들의 집중적인 질문에 견디다 못해 그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애쓰시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 때 그 선생님은 '나도 전공에 대한 전문지식은 물론 화학지도에 대한 경험도 많고 바둑도 잘 둘 정도로 머리는 괜찮은 편이며 또 일어를 잘하니 일어판 전공서적을 좀 봐서 잘 가르치겠다'고 다짐을 하고 무사히 넘어간 적이 있었는데 그 때 그 모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저의 딸이 서울에서 대학 다닐 때 방학 중 집에 내려와 아는 사람의 부탁을 받고 처음으로 고1 학생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첫날 집에 와서 하는 말이 기억납니다. '수학을 가르치는데 갑자기 당황해져서 혼이 났어요. 수학, 영어 한 시간씩 가르치기 위해 오전 내내 공부를 하고 갔었는데도 말입니다..'
물론 경험부족 탓도 있겠지만 사전준비, 즉 공부를 많이 하지 않고 애들에게 나섰기 때문이니까 몇 번이고 풀어보고 반복해서 준비해야 된다고 일러준 적이 있습니다. 서울에서 이름 있는 대학에 다니고 고등학교 다닐 때 꽤나 공부를 잘했었는데도 이렇게 힘들어하는 것을 보고서는 준비 없이 학생들 앞에 섰다가는 큰 낭패를 당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일본의 전설적인 검객 미야모도 무사시는 "가장 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가장 약한 자"라고 하면서 "진정한 무사는 3살짜리 어린애와 마주설 때도 몸조심을 해야 한다"고 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가장 전공에 대해 자신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그 선생님이야말로 자기도 모르게 가장 수업에 대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히브리에서는 '가르친다'와 '배운다'를 다 하나의 동사인 '라마드'를 쓴다고 합니다. 영어에서도 '가르치는 것이 배우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가르치는 선생님은 계속 배워야 합니다. 배우는 자만이 가르칠 자격이 있습니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이 초등학생이든, 중학생이든, 고등학생이든 미야모도 무사시와 같은 자세가 필요합니다.
어느 대학 교수의 딸이 말한 것처럼 '아빠, 공부 좀 해요'라는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교실에서 학생들이 보는 가운데 학생으로부터 '선생님, 공부 좀 하세요'라는 소리를 들어 낭패를 당하기 전에 미리미리 공부하고 배워야 합니다. 겸손하게 열심히 배워야 합니다. 가르치는 날이 끝날 때까지 그러해야 합니다. 저의 26년 수업경험에서 얻은 결론은 '경력이 쌓일수록 가르치기 어렵다'.'초임 때 가장 가르치기 쉬웠고 갈수록 어려웠다'였습니다. 현재 선생님은 어떻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