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란 누구나 지난날을 그리워 할 때가 있다. 후회막급한 일도 있지만 대부분이 아름다운 추억으로 오랫동안 마음속에 간직하고픈 이야기들이 더 많은 듯하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조각들을 모아 하나의 이야기가 만들어 질 때 그 이야기를 누구에게 하고 싶어지는 경우를 누구나 경험했을 것이다.
우리 반 아이들과 1학기를 마무리할 즈음 자기가 어렸을 때 이야기를 친구들 앞에서 발표한 적이 있다. 나에게 특히 고마움을 주셨던 분들의 이야기나 헤어진 선생님과의 추억, 전학 간 친구들에 대한 추억, 힘들었던 일 즐거웠던 일 등 될 수 있으면 생각이 떠오르는 일 중의 아주 어릴 적 이야기를 생각해보라고 하였다. 아이들은 저마다 간직하고 있던 이야기들을 풀어놓았다.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에 아빠와 함께 눈사람을 만들었는데 사람처럼 만들어서 집 앞에 세워 놓았던 눈사람에 대한 기억이 아직 남아 있다고 하였고, 부모님과 함께 바다로 놀러가서 모래사장에서 뛰어다니고 오빠와 함께 물장구치면서 재미있게 놀았던 얘기, 또 교통사고가 나서 가족들이 오랫동안 입원하였던 이야기며, 친구가 이사 가서 슬펐던 일, 할머니께서 쓰러지셔서 119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실려 가셨던 일 등.
저마다의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던 오랜 이야기를 친구들과 선생님 앞에 발표하면서 때 묻지 않은 표정으로 정직하게 이야기를 하는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모습에서 부끄러운 모습을 숨기려고만 하는 때 묻은 나의 모습을 살피는 기회가 되었다. 발표를 안 한 두 명의 어린이를 제외한 14명 모두의 이야기를 듣고 한 가지 제안을 하였다. 아주 어릴 때 사진 중에서 재미있게 찍었거나 기억에 남는 사진, 또 친구들 앞에 자랑하고 싶은 예쁜 나의 모습 사진을 친구들 앞에 자랑해 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진의 설명을 친구들에게 해 주는 것.
다음 날 아이들은 사진을 가지고 왔고 삼삼오오 모여 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서로 나누었다. 그리고 아이들의 사진을 스캐너로 떠서 파일로 만들어 학급 홈페이지에 올리기로 하였다. 그런데 다음 날부터 학기말 정리가 바쁘게 진행되었고 곧 방학이 시작되는 바람에 계속 올리지 못하다가 그만 잊어버리고 말았다. 오늘 연수가 없는 토요일이어서 물건을 하나하나 정리하다보니 방학하면 곧장 학급 홈페이지에 띄우기로 하였던 아이들의 소중한 사진을 넣은 봉투를 발견하였다.
컴퓨터 책상을 바꾸면서 얽힌 선을 코드에서 빼고 한쪽에 밀어놓았던 복합기를 다시 설치하여 바로 스캐너를 떠서 학급 홈페이지에 올렸다. 늦게 올려 미안하다는 선생님의 사과의 말과 함께....선생님의 약속을 믿고 매일같이 학급 홈페이지에 들러 사진을 확인하였던 아이들은 얼마나 실망을 하였을까?
담임으로 아이들에게 신뢰감을 주지 못한 데 대해 자책이 밀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