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가을의 문턱 입추에 이어 오늘은 삼복더위의 끝자락인 말복입니다. 오늘을 슬기롭게 잘 견뎌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업하실 때 짜증스러워도 잘 참으셔야 합니다. 애들도 짜증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 더위에 스트레스 푼다고 애들에게 스트레스 주지 마시고 상처를 주는 말은 삼가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더울수록 쓸데 없는 말은 아끼셔야죠.
어제에 이어 오늘도 매미는 한여름을 노래하고, 사랑을 노래하고, 가을을 알리고, 시원한 바람을 예고합니다. 그러기에 매미소리는 아름답고 우아하게 들립니다. 짜증스럽게 들리지 않습니다. 밉지 않습니다. 혹시 매미소리가 선생님들에게, 학생들에게 짜증스러운 소리로, 잠 오는 소리로 들리지 않았으면 하네요.
저는 어제에 이어 오늘도 지난 99년 3월부터 6개월간 울산교육수련원에서 근무했을 때를 떠올립니다. 특히 연수원 앞에 펼쳐 보이는 푸른 바다와 병풍처럼 둘러싼 푸른 산을 떠올립니다. 그 때도 좋았습니만 지금 세월이 지나고 보니 그 때가 가장 많은 추억을 선사했고, 교훈을 안겨주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푸른 바다와 푸른 산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들은 매우 큽니다. 마음이 넓습니다. 매우 깊습니다. 항상 푸름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말이 없습니다. 즉 언제나 침묵합니다.
바다의 침묵과 산의 침묵의 근원은 넓은 마음과 깊은 마음, 그리고 겸손한 마음입니다. 정말 넓은 바다, 정말 깊은 바다이기에 침묵합니다. 겸손하기에 침묵합니다. 아무리 짜증이 나더라도 침묵합니다. 온갖 더러운 오물과 더러운 쓰레기도 다 가슴에 안으면서 침묵합니다. 무슨 말을 할 법한데도 그러합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많이 있어도 침묵합니다.
나무도 그러합니다. 아무리 바람이 불어 나무를 흔들어 놓아도 바람 부는 대로 반응을 보이지만 말은 하지 않습니다. 바람이 제풀에 꺾여 잠잠해질 때까지 그러합니다. 어느 누구도 비교하지 않습니다. 경쟁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늘만 쳐다보고 곧게 자랄 뿐입니다.
‘친구는 침묵으로 말하고 미소로 답하는 법을 아는 멋진 놈이다.’라고 친구를 노래한 이의 글을 읽었습니다. 이 친구는 바다와 같이, 나무와 같이 마음이 넓고 마음이 깊기에 가능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 선생님들도, 학생들도 바다와 같고 산과 같았으면 합니다. 말을 아껴야 하겠습니다. 될 수 있으면 침묵해야 합니다. 말없이 수고하시는 선생님들을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분들이야말로 큰 사람입니다. 넓은 사람입니다. 반면에 조금만 자기에게 불이익이 온다고 생각하면 참지 못하고 침묵하지 못하고 반응하는 선생님도 계십니다. 이런 선생님들은 이번 여름방학 동안 바다를, 산을 떠올려 보면 어떨까요?
아무리 자기에게 상처를 주고 불이익을 주고 해롭게 한다고 여길지라도 과민 반응을 나타내면 안 됩니다. 유연하고 여유있는 반응을 보여야 합니다. 이러기 위해서는 바다를 보고 산을 바라보면서 바다와 같이, 나무와 같이 정말 넓고 깊은 마음, 겸손한 마음을 지니도록 애를 써야 할 것입니다.
교육은 침묵입니다. 말은 아껴야 합니다. 특히 남에게 상처 주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남과 비교해서 주는 마음의 회초리도 삼가야 합니다. 선생님들의 동조를 구하는 것도 안 됩니다. 선생님들을 흔들어 놓아서도 안 됩니다. 건강한 공동체는 무엇보다 편안하고 안정된 곳이어야 합니다.
학생들에게도 누구는 1등하고, 누구는 2등하고, 누구는 어떻고, 누구는 어떤데 너도 좀 본받아라...식으로 마음의 회초리를 들어서는 안 됩니다. 집에서도 비교를 통해 많은 상처를 안고 있는 학생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거기에다 학교에서도 그렇게 하면 학생들은 설 곳이 없어집니다. 피타고라스는 ‘침묵하라, 그렇지 않으면 침묵보다 나은 말을 하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침묵보다 못한 말을 할 바에는 차라리 침묵하는 게 낫습니다. 꼭 말을 하려면 침묵보다 나은 말을 해야죠. 품이 넓은 사람은 침묵합니다. 생각이 깊은 사람은 말이 없습니다. 말이 적습니다. 정말 깊이 있는 말은 침묵 중에 나옵니다.
우리 모두는 건강한 공동체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바다를 생각해야죠. 나무를 생각해야죠. 말을 아껴야죠. 말이 적어야죠. 침묵해야죠. 그렇게 하므로 교육다운 교육을 이루어가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