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새벽 경기도 가평군 현리 소재 육군 모 부대에서 이모(20) 이병이 동료 병사 2명(상병과 병장)에게 총기를 발사해 중상을 입힌 후 실탄과 K2 소총을 휴대하고 무장탈영했다는 뉴스를 듣고, 오늘의 군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일까? 아니면 귀엽게만 자란 아이들이 어려움을 모르고 일으킨 우발범으로 치부해 버려야 할까?
아니다. 학교에서도 엇비슷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중이다. 교사를 어려워할 줄 모르고 교사의 지시를 예사로 생각하는 학생들의 방만한 태도는 안하무인격으로밖에 더 보이지 않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오죽했으면 이제는 어느 하나를 시키려고 해도 “00아! 내 부탁 좀 들어 줄래”라고 요청해야 할 정도이니, 모 부대의 이병 총기 사건도 교육의 잘못으로 인해 빚어진 사건이 아닐까 되짚어 본다.
요청과 타협으로 가야 할 인성교육
요즘만큼 교사하기 힘든 때도 없었던 것 같다. 요즘만큼 말 안 듣는 아이 없다. 이런 등등의 유언비어 아닌 유행어가 교사들 사이에 나돌면서 나타나는 현상들. “학생들의 행동에 신경질적인 교사의 반응” “이에 맞서는 학생들의 말대꾸” “지시에 따르는 척 하면서 뒤꽁무니 빼는 학생들”. 참으로 학교에서 사제간에 흘러가는 파노라마 같은 풍속도는, 명령이 생명인 군대에서 계급이 제일 아래인 병사가 고참을 향해서 총을 난사했다는 것과 같이, 한 마디로 꼴불견이 아닐 수 없다.
“교실이 무너지고 있다” “학생들이 폭력집단을 형성한다” “학부모가 교사를 업신여긴다” “학생들이 교사의 지시를 거부한다” 등등이 현재 학교 상황이 아니라고 단정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어 고쳐야 한다고 되풀이해서 아우성이지만 수요자 중심의 교육이 진행되고 있는 7차 교육과정에서는 이런 사례들이 더욱 확산되어가고 있다는 것이 어느 한 학교에만 치우친 편견적인 논제일까?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일선 교사들의 공통된 견해는 아닐 지. 교육부는 교육청은 교사들이 학생들의 수요에 맞게 가르쳐야 한다고 지시하지만 과도기에 처한 지금 쉽게 바뀌어 지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수업 시간에 교사가 학생에게 질문을 하면 모르면 “모르겠습니다”라는 표현보다는 “몰라요” “그것을 어떻게 알아요” 등등으로 불만에 가득찬 표현으로 말하는 학생을 지시 일변도로 지도해야 할까? 교실에 오늘 당번이 없으면 다른 학생에게 청소를 시키면 “내가 할 일이 아닌 데요” “당번 없어요” 등등으로 회피해 버리는 그릇한 사고를 가진 학생들은 학교에, 교사에, 교육에, 사회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차 있는 것은 아닌 지 의심스러울 뿐이다. 이렇듯 이들을 지도하는 데 있어 기존의 충고와 지시일변도보다는 타협과 요청으로 지도하고 또 지도되어져야 이들의 EQ를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가정교육은 EQ를 높이는 밑거름되어야
교육은 학교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인성교육은 조화를 이루어 가도록 하는 데 있다. 많은 지식을 쌓아 이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의 바람직한 인격체를, 많은 교양을 쌓아 남을 배려하고 타인과의 조화를 이루어 정직한 삶을 살아가도록 하는 데 있다. 편리와 안락만이 자신을 위한 함수인 것처럼 생각하고, 자신을 중심으로 한 그래프만 그릴 줄 알았지 타인과 조화를 이루는 그래프는 그릴 줄 모르고 있는 아이를 위해 가정에서부터 남과 자신이 동시에 존재하기에 이 사회는 밝고 아름다운 소리로 가득차게 된다는 부모의 가정교육이 절실하게 요청되는 시대라 아니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