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정부가 학교 시험문제는 물론 평가기준, 평가내용, 평가계획 등 평가관련 정보 일체를 인터넷에 공개하는 것을 엄격히 의무화했다. 인터넷 공개, 변별력 없는 수능시험과 2008년부터 도입되는 내신제도 개편으로 인한 공신력과 신뢰도를 높이겠다는 게 그 이유였다.
한술 더 떠 우리도(道) 충북에서는 이를 아예 중학교에까지 의무화한다는 공문을 일선학교에 보냈다. 그러나 일선 교사들의 거센 반발은 물론 본 리포터도 지방 신문에 ‘시험문제 공개의 허와 실’이라는 기고문을 통해 그 허구와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에 도교육청에서는 즉시 중학교의 시험문제 공개 의무화 방침을 철회하고 학교별로 공개를 자율화 하도록 했다. 이는 책임 있는 교육당국으로서 시의적절한 판단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최근 다시 언론에서는 고교 시험문제 공개를 두고 또다시 ‘학교때리기’에 나섰다. ‘여름방학 전까지’ 이라는 공개시한을 두고서다. 당초 ‘시험문제 공개 의무화’ 방침을 두고 교원단체들은 물론 대부분의 일선 교사들이 시험문제 공개에 정면으로 반대했다. 그러자 교육부는 한발 물러서 시험문제 공개 시한은 여름방학까지로 연장했다. 공개 수단도 홈페이지뿐 아니라 학교 게시판, 가정통신문, 학부모 총회, 유인물로 확대한다고 했다.
그러나 언론의 시각과 교육부의 이 같은 방침은 이미 설득력을 잃었다. 이미 각급 학교에서는 시험 종료 후 즉시 학생들에게 시험지를 공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일 즉시 정답을 공개하면 동료들과 또는 부모와 문제를 풀어보고, 이의 신청도 받아 가능한 객관적이고 타당한 평가를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인근 학원 등에서도 학생들을 통하여 문제지를 수집하여 참고하고 있다.
그뿐인가, 최근에는 교육관련 각종 인터넷 사이트에도 교사 개인의 의사와 학교 방침에 따라 기출문제를 많이 공개하고 있는 추세이다. 정리한다면, 정부의 의무화 방침이 아니더라도 시험문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학생, 학부모, 심지어는 학원의 강사들에게까지 이미 공개하고 있는 것이다.
현실이 이럼에도 불구하고 교육부가 굳이 인터넷 공개를 의무화하는 정책의 저의가 궁금하다. 현실을 모르는 언론과 일부 학부모가 주장한다고 해서 법원에서까지 학교의 시험문제를 저작권법의 보호 대상으로 인정한 마당에 굳이 교원의 평가권과 학교의 자율권 등 교단의 고유 권한을 훼손하려는 것은 비난 받아 마땅하다.
교원들이 ‘시험문제 공개의무화 반대’ 주장은 일부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교사가 자신이 없거나 집단 이기주의라고 보는 것은 적절치 않다. 학교 측이 학교별 실력 차가 드러나고 혹시라도 시험문제에서 오류가 드러날 것을 걱정해 공개를 꺼리기 때문도 아니다.
‘가르친 사람이 평가’하는 것은 평가의 기본원칙이며 학생을 ‘가르치는 일’은 교사의 마지막 남은 고유 권한이다. 평가 문항의 난이도는 학습자의 학습능력에 따라 달라지며 평가자의 관점에 따라 문항의 난이도는 달라진다. 평가는 학교에게 일임하고 그 결과를 활용하는 것은 대학과 교육부 간의 문제다.
새로 도입되는 내신제도 개편으로 인한 공신력과 신뢰도를 높이겠다는 이유로 학교 시험 문제지를 공개하라는 논리는 그동안 학교의 시험문제 때문에 내신 성적이 신뢰를 받지 못했다는 얘기로 이는 입시에서 내신 성적 반영 비율을 갑자기 50%로 높이면서 대두되는 문제의 책임을 학교와 교사들에게 전가하겠다는 의도 아닌가.
그런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입시 제도를 만들어 놓고 학교를 믿지 못하겠다면 그런 제도는 차라리 없애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