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첫날 아침입니다. 아침 7시인데도 밖은 어둑합니다. 조용합니다. 침묵이 흐릅니다. 날씨는 겨울을 선보이는 것 같습니다. 오늘 오후부터는 더 추워진다고 합니다. 어제 한 선생님께서는 ‘12월+추위=자연스러움’이라고 하시더군요. 12월에 추위가 이상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인데도 부자연스러운 것으로 생각하고 ‘12월+따뜻함=자연스러움’으로 바꾸고 싶은 심정입니다. 왜냐하면 그만큼 추위가 싫기 때문입니다.
어느 누구보다 추위를 많이 타고 추위를 겁내고 추위에 움츠리고 하는 저로서는 ‘12월+따뜻함=부자연스러움’이 아니라 ‘12월+따뜻함=자연스러움’입니다. 하지만 ‘12월+추위=자연스러움’의 등식을 생각하면서 추위에 주눅들지 않았으면 합니다. 추위를 잘 이겨내었으면 합니다. 저도 그러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오늘부터 5일까지 우리학교는 교육청 정기감사를 받게 됩니다. 안 그래도 추위로 인해 주눅이 들려고 하는데 감사까지 받게 되니 주눅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조금도 주눅들지 마시고 조금도 부담 가지시지 마시고 자기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어제 마지막 보충수업시간에 솔개가 장수하는 비결에 관한 글을 읽었습니다. 내용은 이러합니다. “솔개는 가장 장수하는 조류로 알려져 있다. 솔개는 최고 약 70세의 수명을 누릴 수 있는데 이렇게 장수하려면 약 40세가 되었을 때 매우 고통스럽고 중요한 결심을 해야만 한다. 솔개는 약 40세가 되면 발톱이 노화하여 사냥감을 그다지 효과적으로 잡아챌 수 없게 된다. 부리도 길게 자라고 구부러져 가슴에 닿을 정도가 되고, 깃털이 짙고 두껍게 자라 날개가 매우 무겁게 되어 하늘로 날아오르기가 나날이 힘들게 된다.
이즈음이 되면 솔개에게는 두 가지 선택이 있을 뿐이다. 그대로 죽을 날을 기다리든가 아니면 약 반년에 걸친 매우 고통스런 갱생 과정을 수행하는 것이다. 갱생의 길을 선택한 솔개는 먼저 산 정상부근으로 높이 날아올라 그곳에 둥지를 짓고 머물며 고통스런 수행을 시작한다. 먼저 부리로 바위를 쪼아 부리가 깨지고 빠지게 만든다. 그러면 서서히 새로운 부리가 돋아나는 것이다. 그런 후 새로 돋은 부리로 발톱을 하나하나 뽑아낸다. 그리고 새로 발톱이 돋아나면 이번에는 날개의 깃털을 하나하나 뽑아낸다. 이리하여 약 반년이 지나 새 깃털이 돋아난 솔개는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변하게 된다. 그리고 다시 힘차게 하늘로 날아올라 30년의 수명을 더 누리게 되는 것이다.”
저는 이 글을 읽고서 솔개에게서 배울 점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다름 아니라 자신의 무딘 생각, 자신의 무딘 습관, 자신의 무딘 행동을 과감하게 고치는 데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자신이 무딜 대로 무디고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고 자신을 포기할 것이 아니라 무딘 자신을 다시 갈고, 망가진 자신을 새롭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부리가 깨어지고, 발톱과 깃털이 뽑히는 아픔을 감수해야 해야 살아남을 수 있듯이 자신을 갈고 닦는 고통이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고집하는 잘못된 습관을 고쳐야 합니다. 지금까지 잘못된 행동을 고쳐야 합니다. 지금까지 잘못된 습관을 고쳐야 합니다. 그래야 솔개처럼 갱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직까지 자습시간에 귀에 이어폰을 꽂고 공부하는 학생이 있습니다. 처음부터 그렇게 하지는 않았을 것 아닙니까? 무딘 귀를 고쳐야 합니다. 무딘 습관을 고쳐야 합니다. 기말고사가 눈앞에 다가왔는데도 귀에 이어폰을 끼고 자습시간에 공부하는 학생들이 있으니 얼마나 한심합니까? 어디 그렇게 공부하면 집중이 됩니까? 어디 그렇게 공부하면 능률이 오릅니까? 공부 잘하는 친구가 귀에 이어폰 끼고 공부하는 것 보았습니까? 아마 한 명도 없을 것입니다.
아직도 입닦고 버린 휴지를 창틀에 꼭 끼어 버리는 못된 습관을 가진 학생들이 있습니다. 왜 창틀에 버립니까? 무딘 손을 고쳐야 합니다. 왜 먹고 난 캔을 창틀 위에 얹어놓습니까?무엇 때문에 귤껍질을 골마루에 마구 버립니까? 그건 무슨 심보입니까? 무딘 생각을 고쳐야 합니다. 처음부터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 아닙니까?
왜 아직도 지각을 합니까? 어머니가 집에서 밥을 늦게 해 줍니까? 늦게 일어납니까? 아니면 건강이 좋지 않습니까? 날씨가 추워서입니까? 그것도 취미입니까? 무딘 발을 고쳐야 합니다. 늦다 싶으면 발에 불이 나도록 뛰어야죠. 무딘 채로 그냥 두면 결국 어찌 됩니까? 처음에는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 아닙니까?
왜 벌써부터 공부를 포기합니까? 뛰어보지도 않고 날아보지도 않고 날개를 접습니까? 무딘 깃털 뽑아내야 합니다. 무딘 날개 갈아야 합니다. 그래야 비상할 것 아닙니까? 그래야 정상으로 날 것 아닙니까? 처음부터 포기하지는 않았을 것 아닙니까?
계속 그렇게 하면 결국 어찌 됩니까? 결국 무딘 생각, 무딘 습관, 무딘 행동을 그대로 안고 죽어 갈 것 아닙니까? 다시 살아날 수 있는데 왜 그냥 죽어가야 합니까? 새로 살아나야 할 것 아닙니까? 우리는 학생들에게 새롭게 살아나도록 깨우쳐야 할 것입니다.
솔개라고 다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고통을 참는 것이 힘들어서, 아픔을 견디기가 부담스러워서 포기하고 생을 마치는 솔개가 있다고 합니다. 그런 솔개가 되기보다 부리가 깨어지고, 발톱과 깃털이 뽑히는 아픔을 감수하고 고통을 감수해서라도 다시 살아나는 솔개처럼 되었으면 합니다. 이제 초심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옷깃을 여미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제 작은 것부터 무딘 생각, 무딘 습관, 무딘 행동을 하나하나 고쳐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변화가 있게 됩니다. 그래야 새롭게 됩니다. 그래야 새로운 삶이 전개됩니다. 그래야 새 힘을 얻게 됩니다. 그래야 새롭게 출발하게 됩니다. 그래야 다시 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