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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인도여행16-바라나시에서의 마지막 날


1.22 토 맑음

인도는 더운 지방이라 다양하게 꽃들이 어울어져 있을 줄 알았는데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보는대로 꽃을 사진에 담으려고 했으나 별로 많지가 않다. 사르나트 구경을 마치고 다시 버스를 타고 바라나시로 돌아오니 오후 5시가 넘었다. 오다가 인도 전통음악 카세트 두개를 더 샀다. 두개에 75루피였다. 어제 샀던 카세트 테이프를 다시 꺼내 자세히 보니 가격표가 지워져 있지 않은가. 어제 나는 그 테이프 한 개를 65루피에 샀었다. 거의 두배를 준 셈이다. 오늘 산 것과 어제 산 것은 같은 회사 제품이다. 물건은 정가를 확인하고 사야 할 것 같다.

여관으로 돌아오다가 우연히 길을 잘못 들어 간 곳이 갠지스강가 다샤스와메드가트였다. 그곳에선 뿌자가 한창 진행중이었다. 뿌자란 힌두교 의식을 일컫는 말로 가트(강변에 계단을 만들어 놓은 곳)에서 많은 깃발을 세워놓고 노래를 부르며 불춤을 추는 독특한 힌두교 의식이다. 매일 6시에 거행된다는 이 뿌자엔 많은 인도인과 관광객이 나와 구경을 한다. 이 의식에 무슨 뜻이 있는냐고 하니까 옆에 있던 인도인이 시민들의 안녕과 행복을 축원하는 종교의식이라고 설명해준다.

한참 힌두교 의식 뿌자를 구경하고 있는데 한 젊은이가 오더니 자꾸 쌀자루같은 것 을 펼쳐놓고 그 위로 앉으란다. 앞을 보니 한 인도인이 누군가를 앉혀놓고 팔 머리를 마사지 하고 있었다. 나는 인도 관광 안내책자에도 마사지에 대한 소개가 있는 터라 마사지를 받아보기로 했다. 나이가 지긋한 노인이 나를 눞게도 하고 엎드리게도 하면서 전신 마사지를 아주 시원하게 해주는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가격이다. 10루피처럼 애기하더니 끝나고 100루피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100루피면 2,600원정도인데 인도에서는 큰돈처럼 생각되었다. 나는 한동안 실갱이를 하다가 50루피를 주었다.

외국인을 상대할 때는 그들도 값을 얼른 정하지 못하는 것 같다. 정해져 있는 가격이 아니라 부르는 것도 지불하는 것도 들쭉날쭉이다. 당신 나라에서는 얼마 하느냐, 알아서 달라 하는 눈치다. 정가 개념이 없는 것 같다. 한국에서 그런 마사지를 받아본 적은 없지만 만약에 한국에서라면 30,000원은 줘야 했을 것이다. 정말 진지하게 온 몸이 노골노골하게 피로가 확 풀리게 마사지를 해주는 것이다.

배도 그렇고 릭샤도 그렇고 마사지도 그렇고 적당히 흥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20루피, 520원에 사이클 릭샤를 타지만 한국에서라면 그 거리를 자전거로 태워다 준다면 10,000원 이상은 받지 않을까. 물가가 다르고 생활수준이 다르니까 서로 혼란을 겪는 것 같다. 그들이 값을 더 부른다고 탓할 수도 없다. 한국과 비교하면 너무 싼 가격이니까.

싸르나트에서 한 릭샤꾼은 한국은 부자 나라가 아니라며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유독 한국 관광객이 릭샤 값을 많이 깎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국 사람들이 하도 짜게 구니까 나에게 한국이 부자가 아니라며 노골적인 불만을 토로했던 것이다. 대부분 대학생들이라 돈이 없으니 절약할 수 밖에 없겠지만 인도사람들이 한국사람들을 비열한 사람들로, 가난한 나라, 혹은 짠돌이로 인식하는 것 같아 마음이 조금 불편하기는 했다. 그렇다고 바가지를 쓸 수는 없지 않은가. 바가지를 써봤자 1,000원 안팎이지만 말이다.

어떤 릭샤꾼은 아얘 인디언 프라이스(Indian Price 인도 가격) 20루피에 타라고 잘라 말히며 흥정을 하기도 한다. 그들도 인도 물가가 싸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외국인에겐 더 받아야 하는 데 인도 가격으로 하겠다는 뜻이다. 모든 박물관의 입장료도 내국인은 10루피 외국인은 150루피다. 우리는 가난하니까 10루피, 너희는 우리보다 나으니까 150푸피 를 받아야 하지 않느냐는 무언의 항변이 그 가겪엔 섞여있는 것이다.

2005. 1.23 일 맑음

다른 삭람들의 배낭은 산더미 같이 크고 높은데 내 가방은 소풍가방 같이 가볍고 납작하니 내가 준비에 소홀한 측면도 있다. 여행 안내 책자의 안내를 무시했으니까. 기차를 타고 밤에 이동할 때 추워서 잠을 못 자며 내가 지나치게 가벼운 배낭만을 고집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없었다.

오늘은 사트나를 거쳐 카주라호로 가는 날이다. 아침 8시 30분 늦으막이 일어나 여관 옥상 식당에서 egg toast(계란 토스토)와 egg soup(계란국)로 간단히 식사를 하고 강가로 나갔다. 아이들 넷이 탄 보트가 내게 다가온다. 10루피에 강을 건너가 10분정도 놀다가 다시 데려다 주겠단다. 그래서 아이들 넷과 함께 강을 건너 광활한 모래 벌판을 가로 질러 멀리 강둑까지 갔다가 돌아왔다.

그 아이들 중엔 이슬람 복장을 한 아이도 있었는데 그들이 힌두교와 이스람간의 대립을 알 까닭이 없다. 티없이 맑은 똑같은 동심일 뿐이다. '끝없는 세계의 바닷가에 아이들이 놀고 있습니다' 하는 타고르의 시의 주인공들이 바로 이 아이들이 아닐까. 이슬람 아이와 힌두교 아이들이 어울려 다니며 시시덕거리고 장난치고 하는 모습에서 천진난만한 동심을 보았지만 언제 또 저 아이들도 자기들의 종교를 고집하며 대립각을 세울 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이 아이들과 여러 장의 사진을 찍었다.

다시 강을 건너와 강둑을 따라 한 참을 내려 갔더니 한 미술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바라나시의 명문 베루나스 힌두 대학교 학생들이 조각 작품과 그림을 전시하고 있었다. 강뚝을 따라 강을 배경으로 한 야외 전시회였다. 남인도에서 해일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돕기 위한 것이라는 안내도 나붙었다. 한 쪽에서는 도서 전시회가 열리고 한쪽에서는 무대를 꾸며놓고 전통 노래공연이 열리기도 했다. 나는 여러 개의 미술작품을 카메라에 담고 노래공연을 한 동안 지켜보다가 책 전시장으로 갔다.

영어로 된 재미있는 동화책, 바라나시를 소개한 책, 성에 관한 책, 요가에 관한 책 등 흥미를 끄는 책이 많이 있었다. 티베트의 folk tale(민속이야기), Far east asia(극동아시아)의 folk tale(민속이야기), 인도의 folk tale(민속이야기) 또 카주라호 사원의 에로조각상을 해설해 놓은 책도 있었는 데 가격이 290루피나 되어서 못샀다.

여성, 남성,우정, 사랑등에 관한 어록을 모아 놓은 책, 또 달라이 라마를 비롯해 여러 명상가들의 mediation(명상) 관련 서적도 많았다. 또 Sweden 여성의 스스로 치유하는 능력에 관한 책도 호기심이 갔는데 못샀다. 티베트, 인도의 동화책 내용을 보니 우리나라 전래동화와 너무 흡사해 놀랐다. 나는 많이 사고 싶었지만 경비를 아끼느라 Diana L. Eck의 'BANARAS, city of light'라는 책을 한 권 샀다. 300루피였다. 이 책은 바라나시의 역사, 종교, 풍습, 갠지스강에 대한 설명 등 인도에서 가장 인도적인 도시라는 바라나시의 모든 것이 수록되어 있는 책이다. 나는 시체를 화장하는 의식에 대해서 그리고 갠지스 강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었던 것이다.

구경을 마치고 갠지스강둑을 따라 여관으로 오는데 강에 한 물체가 떠다니고 있었다. 알록달록 비단천 같은 것으로 싸인채로 떠다니는 것은 아무래도 화장터에서 보았던 시체 같았다. 나는 호기심을 가지고 열심히 처다보는 데 사람들은 누구하나 유심히 보는 사람이 없었다. 시체가 떠 있는 바로 옆에서 사람들은 여전히 목욕을 하고 빨래하는 사람들은 빨래감을 머리 위로 높이 올렸다가 돌에 힘 껏 내려치며 빨래를 하고 있을 뿐이다.

보트도 시체는 아랑곳하지 않고 곁을 지나간다. 조금 더 올라오니 또 화장터가 있다. 니까르니까 가트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이곳에서도 계속 시체가 화장되고 있었다. 나는 또 오랫동아 지켜보았다. 시체는 여러 곳에서 불에 타고 있었다. 다 타고 마지막 남은 살덩어리를 강물속에 휙 던져버려도 본체만체 옆에서는 세탁회사의 인부들이 열심히 빨래를 해 너느라고 여념이 없다.

다시 숙소 쪽을 항하여 강둑을 따라 오다가 마니까르니까 가트에서 또 화장 장면을 지켜보며 유가족과 몇 마디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유가족들은 50km 떨어진 도시에서 택시를 타고 왔다고 했다. 아마 죽은 사람도 같이 타고 왔을 것이다. 가족이 사망하면 두세 시간 내에 장레를 치룬단다. 아마 더운 나라이기 때문에 부패를 막으려고 그런 풍습이 생겼지 않았을까.

카주라호를 가기 위해서 기차표를 예매했다. 카주라호까지는 기차가 가지 않아 사트나까지 가서 다시 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 밤 11시 30분 기차표를를 예매했다. 8시 30분 쯤 여관 manager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나와서 인도의 보통음식인 딸리를 한 그릇 먹고 20루피에 릭샤를 타고 바라나시 역에 도착하니 겨우 밤 9시다. 이곳저곳 역 구내와 역 밖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11시 30분 기차를 타려는데 한 시간 연착되어 12시 30분에 출발한단다. 인도 기차 연착에 대한 정보는 이미 들은 바라 그러려니 하고 또 한 시간을 기다렸다가 12시 30분에 기차를 탔다.

8시간 정도는 가야 하는데 걱정이 앞섰다. 담요를 준비하지 않아 추워서 어떻게 잠을 자야 할지 몰랐다. 침랑을 준비해야 하는 데 못했기 때문이다. 잠이 올 리가 없다. 새벽 3시 30분 일어나 앉아 3층 침대칸 희미한 전등불 아래서 일기를 쓰고 있다. 잠 한 숨 못자고 기차는 아침 8시 경에 사트나 역에 도착했다. 이제 사트나에서 버스를 타고 카주라호로 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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