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1.24.월
사트나역에 도착하여 사이클 릭샤로 10여분 만에 버스정류소에 도착했다. 카주라호 행 버스는 9시 15분 출발이다. 8시 30분에 표를 예매했다. 63루피. 이윽고 버스9시 15분 버스가 출발했다. 중간 소도시에 잠깐 정차할 동안 11루피에 과자 4개를 아침식사로 먹었다. 카주라호 버스정류장에 도착하니 1시가 넘었다. 릭샤, 오토릭샤가 손님을 잡기 위해 또 법석을 떤다. 릭샤를 타고 호텔까지 와서 100루피에 방을 구했다. 가우타마 호텔(Gautama Hotel)이다.
짐을 풀어놓고 나와서 거리를 걷는다. 한국 식당 간판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전라도 밥집이란 간판이 있는 집으로 들어갔더니 한국음식 일색이다. 50루피에 육개장을 시켰더니 육개장 냄새가 조금 나긴 했지만 흉내만 낸 것에 불과했다. 생수(미네랄 워터)를 10루피에 사서 마셨다. 이곳에는 총각식당, 고향식당, 장금이네 수랏집, 전주식당 등 한국 간판들이 많았다. 맛이 조금씩 다를텐데 어느 집이 맛있는지 알 수가 없다. 전라도 밥집에서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길 옆에 자전거 대여점이 있다. 자전거를 빌려 타고 도심 밖으로 나가려는데 오토바이를 탄 젊은이가 계속 말을 걸어온다. 한국말을 섞어가며 한국사람이 세운 학교가 있다고 한다. 같이 가보자며 매달린다. 궁금해서 가보니 한국 대학생 몇 명이 있고 아이들이 여러 명 있었다. 교사라는 사람, 교장이라는 사람이 인사를 했다. 2층으로 데리고 가더니 아이들의 무용실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나중에는 방명록에 방문소감을 써달라고 한다. 방명록엔 많은 한국사람들이 눈물이 날 만큼 감동적인 글을 남겼다.
나는 영어로 소감을 쓰고 인도가 부유하고 행복한 나라가 되길 기원한다고 했다. 또 이 아이들이 인도의 희망이 되기를 바란다고 썼다. 그리고 영어로 서명을 했다. 그런데 그때 기부금 내역이 적힌 수첩을 가지고 와 보여주는 것이다. 200루피. 500루피, 2,000루피, 3,000루피 등 기부한 액수가 적혀 있었다. 도대체 이것은 또 무엇인가. 나는 난처했다. 앗차, 실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100루피를 건네고 나왔다. 교장도 안내한 젊은이도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
나와서 자전거를 타고 한 사원으로 갔는데 거기에도 미투나가 있었다. 에로 조각상을 미투나라고 한다. 그런데 그곳 관리인이 오토바이를 타고 말을 걸던 젊은이을 가리키며 cheating boy(사기 치는 놈)라며 나쁘게 얘기 하지 않는가. 커미션(commission) 을 받아먹고 기부금을 알선하는 아이들이란다. 깔리사원에서 나를 안내해주고 기부금을 낼 것을 종용하던 젊은이가 생각났다. 이제 오토바이를 타고 접근하는 젊은이에겐 냉정해지기로 했다.
그 아이들을 보내고 나는 자전거 드라이브를 했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데 제비가 있지 않은가. 나는 제비만 보면 반갑다. 여관 앞 호수에도 여러 마리의 제비가 날고 있었다. 인도에서 여러 마리의 제비를 목격한 일은 이번 여행의 수확중의 하나다. 이곳 카주라호는 사원 미투나(에로 조각상)로 세게적 관광명소가 되었다. 기념품 가게마다 여러 가지 조각상들이 즐비한데 미투나상도 많이 있었다. 미투나상을 설명한 작은 책자들도 있다.
2005.1.25. 화
오늘은 입장권을 사고 들어가 서부사원을 둘러보았다. 많은 사원의 외부와 내벽이 수많은 조각상들로 이루어졌는데 여기저기에 미투나가 보였다. 성스러워야 할 종교 사원에 왜 저렇게 적나라한 에로조각들을 새겨놓핬을까. 자못 궁금증을 가지고 사원을 둘러보았다. 사원의 기단에서부터 높고 낮은 곳 할것 없이 많은 곳에 미투나가 감추어져 있었다. 카메라에 담으려는데 배터리 충전기를 안가지고 와 일일이 배터리를 사서 쓰느라 애를 먹었다. 사진 몇 장만 찍으면 금방 배터리가 소모되어 다시 사는 일이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다.
이 미투나(mithuna)라고 하는 남녀 성행위조각상은 기묘한 형상들이 많다. 성적 결합 과정에서 남자가 물구나무를 서는가 하면 여자는 다른 여자의 부축을 받기도 한다. 또 말과 성행위를 하는 남자의 조각상이 있기도 하다. 이 사원들은 10~11세기찬들라(Chandella)왕조때 만들어졌다고 한다. 원래는 85개였는데 이슬람 정권에 의해서 대부분 파괴되고 지금은 22개가 남아 있다고 한다. 동부사원군엔 파괴된 사원이 여기저기 있었는되 그 잔해 기단에도 많은 미투나상이 발견되었다.
그럼 왜 신성한 사원에 이런 음란스러워 보이는 미투나상을 만들었을까. 그것은 여러가지 설이 있으나 찬들러 왕조때 성행했던 탄트리즘(tantrism>의 영향이라는 것이 가장 유력하다. 탄트리즘의 4가지 수행법중에 하나가 바로 성행위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성적인 에너지를 이용하여 남녀가 결합하고 시간과 공간이 사라진 그 절정의 상태에서 자아의식과 우주의식이 하나 되고, 절대와 상대가 하나 되는 해탈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수행 방법의 하나를 조각으로 표했다는 것이다. 이 카주라호의 사원들은 유네스코에 세게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고 한다.
동부사원은 자인교 사원이라는 데 신상만 자인교의 신상이고 겉의 모든 조각은 힌두 사원과 같았다. 미투나도 마찬가지였다. 안내인 말이 매우 가까운 종교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한다. 자인교의 수도자들은 모두 나체로 수도를 하고 생활할 때도 나체로 한다고 했다. 사원의 신상도 나체, 수도승의 사진도 페니스를 축 늘어뜨린 나체였다.
아침에는 육개장, 점심에는 칼국수, 저녁에는 김치볶음밥 세 끼를 챙겨먹기는 처음이다. 카주라호엔 한국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이들과 젊은층이 특히 그렇다. 한국사람들을 상대로 장사를 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바라나시의 아이들이 영어를 잘하는 것처럼 이곳 아이들은 몇 마디 한국말은 다 아는 것 같았다.
호텔이 어디에요?
어디로 가세요?
이름이 뭐에요?
인도 좋아요?
그런데 사원 입구에서 만난 한 젊은이가 자꾸 안 좋은 가게로 가자고 한다. 안 좋은 가게? 자전거 빌려주는 곳의 벽에 안전한 곳이라는 문귀가 있어 안전한 가게를 뜻하는 것인가 생각해봤는데 아니다. 분명히 안 좋은 가게라고 하는 것이다. 그 가게로 가서 필름을 사려는데 45루피인 것을 분명히 아는데 100루피를 달라지 않는가. 나는 그냥 나왔다. 어떤 한국 관광객이 바가지를 씌우는 가게를 골탕 먹이려고 안내하는 아이에게 안좋은 가게라고 가르쳐주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또 한 젊은이가 따라 붙는다.
Where are you going? (어디 가세요?)
Do you like India? (인도 좋아요?)
How are you? (안녕하세요?)
What is your name? (이름이 뭐에요?)
Which hotel do you stay in? (어느 호텔에 있어요?
등을 우리말로 알려 달라고 한다.
알려줬더니 열심히 적는다. 또 물어보려고 하는데 바빠서 뿌리치고 왔다. 한 젊은이는 목포에서 온 편지 한 통을 보여주며 자기 친구라고 자랑한다. ‘은성’이라고 하는 사람이 반듯반듯한 글씨로 인도 친구에게 따뜻한 마음을 표현하고 있었다. 그 인도 젊은이는 한국친구에게서 온 이 편지를 귀한 보물이라도 되는 양 간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많은 젊은이들이 나를 한국학교로 데리고 가려고 애썼다. 가면 기부금을 안내고는 못배기니까 조심해야 한다.
자전거를 반납하고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한국음식을 한다는 사파리(Safari)라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인도 남자와 결혼한 한국 여성이 하는 식당이라고 한다. 주인은 자녀교육 때문에 한국에 있고 두 종업원이 식당을 운영한다고 했다. 두 젊은이 모두 아버지가 없다고 했다. A는 여동생 셋 B는 누나 하나와 여동생 둘이 있다고 했다. A는 18살인데 엄마가 사립학교 수학교사인데 월급이 600루피 뿐이 안 되어서 자기도 벌어야 한다고 했다.
B는 19살인데 열심히 돈을 모아 결혼을 해야 한다고 했다. 인도에서 결혼하려면 one 젠이 필요하다고 한다. 젠이 무슨 뜻이냐고 하니까 one hundred thousand(10만)이라고 한다. 십만 루피라는 것 같다. 260만원 정도 되는 돈인 것 같다. 월급이 얼마냐고 하니까 one hundred(100루피)란다. 거듭 물어봐도 100루피라고 한다. 나에게 동정심을 유발하려고 하는 소리인지,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2,600원씩 월급받아 언제 260만원을 만드나. 냉장고,세탁기, 텔레비전 모두 남자가 준비해야 한다며 하소연이다.
인도의 결혼식이 화려하게 행해진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보지는 못했다. 그런데 한 초등학교 건물을 지나려는데 운동장이 시끌벅적해서 들어가 보니 꽃이 그려진 긴 천으로 학교 운동장을 빙 둘러치고 잔치집 분위기였다.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하니까 마리 마리라고 한다. marry(결혼)를 얘기하는 것이었다. 학생들은 모두 어디 갔느냐고 하니까 내일이 공화국창건일이라 학교에 나오지 않았단다.
나중에 알았는데 결혼식이 아니라 약혼식 피로연이었는데 하객이 오육백 명은 될 것 같다. 자전거, 오토바이, 자동차를 타고 몰려와 식사를 하고 있었다. 깨끗하게 차려입은 신부의 삼촌이란 분이 나보고도 자꾸 가서 식사를 하라는 걸 사양했다. 피로연이 끝나면 신부네 집으로 가서 약혼을 할 거란다. 수많은 사람을 대접하려니 운동장을 빌려 사용하는 가보다. 인도의 결혼식이 성대하다는 걸 실감했다. 인도에서도 역시 결혼은 인간지대사인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