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월 26일 수
일찍 일어나 자전거를 20루피에 빌리고 식당 사파리에 가서 30루피에 칼국수를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호텔로 왔는데 길에서 요란한 악대소리가 나더니 긴 퍼레이드 행렬이 이어졌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생까지 모두 제복을 차려입고 트랙터, 트럭을 꽃과 온갖 장식으로 꾸미고 여러가지 복장의 여왕 같은 차림의 여학생들을 태우고 화려하고 긴 행렬이 이어졌다.
오늘이 리퍼브릭 데이 (인도 공화국 창건일)란다. 300년간의 영국 지배로부터 독립하여 1950년 1월 26일 정식으로 공화국을 선포한 날을 기념하는 날 행사인 것인다. 전 시가지를 저렇게 행진한다고 한다. 퍼레이드를 한참 지켜보다가 퍼레이드가 저만치 사라질 즈음, 나는 남부사원중 하나를 더 보러 갔다가 폐허가 된 두개의 탬플을 보았다. 하나는 완전히 허물어져 아래 기단부분만 남아 있었는데 거기에도 미투나가 오랜 세월을 견디고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그리고 이 무너진 사원도 경비초소가 있고 경비병이 보초를 서고 있었다.
한 사원에서 나오다가 까마수투라를 50루피에 샀다. 카마수트라는 인도의 오래된성애서이다. 단지 성에 관한 책이 아니라 훌륭한 생활을 하는데 필수적이라는 설명이 있었다. 허물어진 사원을 보고 오다가 카주라호 공항 근처의 빈 들판에 앉아서 까마수투라를 펼쳐보고 있는데 한 젊은이가 가까이 온다. 인근에서 기름을 내는 작물 싸이송(유채꽃)과 짜파티(보리)를 경작하는 농부인데 오두막을 지어놓고 농사를 짓고 있었다. 삼촌과 삼촌댁, 조카라는 젊은이의 사진을 찍어줬더니 보내달라며 주소를 적어준다. 나는 주소를 챙겼다. 사진을 보내주기로 약속한 사람들에겐 꼭 사진을 보내주기로 다짐했다.
다시 오다가 카주라호 버스 정류장에 와서 잔시행 버스 시간표를 알아보니 예매를 안해도 탈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기차는 잔시에 가면 많이 있기 때문에 표를 에매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그런데 콜라 한병을 마시고 배터리를 물어보니 또 70루피란다. 정가를 물어보니까 그때서야 45루피란다. 또 세수비누를 달라고 하니 30루피라며 주기에 사가지고 와서 보니까 정가가 12루피 아닌가. 다시 가서 항의를 했더니 케이스 포함이라며 엉뚱한 소리를 한다. 거스름돈 18루피를 다시 받아가지고 왔다. 그야말로 너무 궁핍하다보니 품의를 지키며 살기엔 아직 시기상조인 것 일까?
자전거를 반납하고 장금이네 식당에 갔다. 35루피(800원)에 칼국수를 먹었다. 사파리에선 30루피였다. 엄마손 식당도 있고 전주식당도 있었다. 식사를 하는데 사장이라는 뚱뚱한 사람이 앉아서 또 이런저런 얘기를 붙인다. 버스정류소 근처에 자기 식당이 또 하나 있는데 20년이 되었단다. 큰아들이 그것을 맡아서 하고 이 식당은 2개월 전12월 5일 개업했단다. 아들 셋, 딸 하나가 있는데 둘째 아들은 얘고(옆에 젊은이를 가리키며) 셋째는 학생이라고 했다. 딸은 결혼 했단다. 큰아들도 결혼 했다고 안주인이 거든다.
조금 지나니 막내가 왔다. 내년에 대학에 가는데 다른 도시에 있는 대학에 갈거라고 한다. 대학에서는 수학과 엔지니어링을 공부하고 싶단다. 컴퓨터를 열심이 하라고 하니까 돈이 없다고 한다. 옆에 아버지에게 컴퓨터를 사주라고 권했다. 아버지는 돈이 없다며 난색이다. 아니다. 당신은 부자다. 나는 천막에서 사는 가난한 인도사람을 많이 봤다. 꼭 컴퓨터를 배워야 한다. 꼭 사주라고 부탁을 했다. 젊은이는 또 내게 한국말로 여러 가지 표현을 물어왔다. 나는 가르쳐주었다.
내가 가르쳐 주는 모습을 보더니 선생이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했더니 반가워하는 눈치다. 그런데 800여명의 학교에 컴퓨터는 단 한 대, 컴퓨터 교사도 단 한 명, 50명의 학생이 한대의 컴퓨터로 배운단다. 컴퓨터 강국이라는 인도에서 아직도 컴퓨터는 대학생들 사이에서, 부자들 사이에서만 통용되는 것인지 모른다. 나에게 또 몇가지를 힌두어를 가르쳐주기도 한다. 이번에는 막내 아들이 한국노래를 안다하기에 불러보라고 했더니 누가 가르쳐 줬는지 '곰 세 마리' 하고 '송아지'를 우리말로 곧잘 불렀다. 그래서 또 '고기를 잡으러 강으로 갈까'를 가르쳐 줬더니 금방 따라했다.
낮에는 어제 약혼식을 하던 학교 옆을 지나가는데 또 왁자지껄 하다. 공화국 창건일 기념행사가 거기에서 열리고 있었다.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촌극을 하며 화려한 축제를 버리는 모습이 아주 성대했다. 우리의 축제 문화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았다. 거기선 또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는 한국인 젊은이가 있었는데 초등학교 교사처럼 보였다.
한동안 공화국 창건일 기념식 행사를 보다가 학교를 나와 자전거를 타고 템플을 둘러본 후에 무작정 시골길을 내달렸다. 한국의 5월 날씨 같은 화창한 날씨, 고향 어느 들녘을 달리는 기분이 들었다.
2005년 1월 27일 목
오늘은 타즈마할을 보러 아그라로 출발하는 날이다. 8시 30분 일어나 떠날 채비를 했다. 체크아웃을 하고 식사를 하고 좀 기다렸다가 불어로 된 까마스투라를 영어로 된 것으로 바꾸고 버스 정류장까지 왔는데 10시 20분이다. 11시 15분 버스표를 끊고 의자에 앉아 버스 출발을 기다렸다. 광활한 인도 대륙을 버스로 다섯시간 달려 쟌시에 도착하니 오후 4시가 넘었다. 아그라로 가려면 잔시에서 기차를 타야 한다. 기차역으로 가려는데 릭샤꾼이 몰려와 지금 슬리퍼 클래스(3등열차)가 없단다.
그럼 큰일이지. 500루피씩 주고 고급열차를 탈수는 없지 않은가. 지금 가면 한 밤중에 도착할텐데 아그라에 밤에 도착하여 허둥되는 것보다 쟌시에서 하루 묵는 게 나을 거 같아서 오토릭샤꾼의 도움으로 120루피 짜리 게스트 하우스에 방을 정했다. 오토릭샤비로 5루피를 달라하기에 5루피를 주었는데 아마 여관측에서 손님을 데려온 수고비를 주지 않을까 짐작한다.
관광 도시가 아닌 쟌시엔 귀찮게 달라붙는 사람이 없다. 조용히 쟌시에서 보내고 내일 아침 일찍 역으로 가자. 그러면 낮에 아그라에 도착하여 여관을 정하고 관광도 할수 있을것이다. 밤에 밖으로 나와 거리 구경을 하는데 삼성, LG간판이 가장 화려하고 밝게 내걸려 있어서 반가웠다. 어다를 가든 삼성, LG, 현대 간판을 보니 세계 시장에서 활약하는 우리의 선진기업이 자랑스럽기도 했다. 오늘은 여기서 자고 내일 아침 기차를 타고 아그라로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