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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언·칼럼

영재 선발을 다시 생각한다

학생들을 지도하다 보면 창의성이 남달리 뛰어나거나 수학이나 과학, 예능에 두각을 나타내는 학생들을 간혹 볼 수 있다. 학생의 뛰어난 능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면서도 바쁜 업무와 타성에 젖은 일상에 학생 개개인으로 보면 너무나 중요하고 귀중한 순간순간을 그냥 지나칠 때가 없지 않다. 또 학생들을 일년 간 담임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가운데 영재성이 드러난 특정 학생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제도적인 뒷받침이 없는 가운데 새 학년으로 올려 보내는 일이 해마다 반복되고 있다.

오늘 우연히 PD수첩을 보게 되었는데, ‘대한민국 0.4%, 영재(英才)인가, 범재(凡才)인가?’ 라는 주제 하에 우리나라 영재교육실태를 자세히 보도하고 있었다. 보도 내용을 보면서 그동안 생각하고 있었던 부분에 대해서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아서 관심을 갖고 보게 되었다. 그러나 보면 볼수록 ‘아니. 이럴 수가...’라는 통탄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떻게 국가에서 법령까지 만들어 총괄하고 있는 영재교육이 여기까지 이르렀을까? 교사인 나 자신부터 영재교육진흥법에 대해 별 관심을 두지 않았던 사실을 반성하면서 방영 내내 영재교육이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보도내용을 보면서 2년 전 서울 모 과학 고등학교 영재 반 선발 시험에 아들(당시 중1)을 데리고 갔던 일을 떠 올렸다.

어느 날 아들이 학교에서 내어 주었다면서 서울 모 과학 고등학교 영재 반 선발시험 원서를 내놓았다. 순간 아들이 그동안 나름대로 과학에 남다른 흥미를 느끼면서 살아왔던 날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유치원 때 초에 불이 켜지는 것이 너무나 신기하여 선생님 몰래 수업 중 촛불을 들고 나와 집에 와서 식탁에 올려놓고 둘레를 책으로 둘러 싼 채 촛불이 꺼지지 않게 하여 뚫어지게 보고 있는 것을 할머니께서 이상한 인기척이 있어 나와 보시고는 놀라 가슴을 쓸어 내렸던 일, 병아리를 나오게 한다면서 계란을 이불 안에 넣고 잠들었다가 깨져 버린 일,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각종 과학행사(모형항공기대회, 라디오 조립대회, 과학상자조립대회, 물로켓 대회, 별자리 보기 등), 창의성 대회에 참여하거나 과학관을 견학가거나 사이언스 홀 가기를 즐겼고 또 일주일에 한번씩 일년간 과학에 대한 기초 원리를 가르쳐 주시기도 하고 간단한 실험을 지도하는 선생님의 방문을 받고 무척이나 흥미 있어 하며 일주일 내내 그 선생님과 만나는 시간을 기다리기도 하였다. 중학교에 가서는 중고품으로 사 준 천체망원경으로 때때로 별을 관찰하며 천문학에 깊은 관심을 갖고 과학지식 및 교육청에서 운영하는 발명 영재 반을 즐겨 참여하며 나름대로의 과학도의 꿈을 키워가던 일 등.

아직 영재 반 시험을 치르지도 않았는데 이런저런 생각이 들면서 마음 한 편으로는 이번 기회가 혹시 아들이 앞으로 더욱 발전할 수 있는 기회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선생님께서 어떻게 대비하라는 말씀이 없으셨냐고 했더니 “관심 있으면 시험을 한 번 보아라”는 말씀 외엔 그 어떤 말씀도 없으셨다고 하였다. 우리 가족엔 이렇게 큰 관심사이며 대단한 일을 학교에서는 너무나 단순하게 생각하는 데 대하여 내심 서운한 마음이 없지 않았다. 과학고 영재 반에 대하여 그 어떤 정보도 들어 본 적이 없던 터여서 3주 후 있을 시험을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 막막하여 찾아 간 곳은 학원이었다. 서울 강북의 어마어마한 아성을 이루고 있는 J동 학원가를 둘러보며 학원이 지향하는 바를 일목요연하게 갖가지 글씨체가 디자인 되어 있거나 도로 쪽 창문에 걸려있는 수많은 플래카드를 보고 학교와는 또 다른 세상을 보는 듯 하였다. 마침 눈에 들어오는 수학, 과학 전문학원이 있기에 들어갔으나 학원관계자는 선행학습이 없었다라는 말을 듣고는 아예 상담에 응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혹시 다른 정보는 없을까 몇 군데를 더 가보았으나 이 정도 학교의 영재 반에 선발되고자 하는 아이들은 이미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맞춤형 공부를 실시하고 있다라고 말하며 3주간 그 어떤 준비도 도움이 되지 않는 말만 들을 뿐이었다.

그 어떤 방향도 찾지 못한 채 낙담하며 집으로 돌아오면서 막막해 했던 기억이 PD수첩을 보는 내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당시 단 2개 반을 뽑는 영재 반 선발시험에 300명 이상이 몰렸고 그 곳에서 많은 학부모님들을 만나면서 그들이 과연 어떻게 준비해 왔는지 들었던 상황이 방영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많은 수의 학부모들은 공교육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 학교에서는 그 어떤 정보도 주지 못하며 똑같은 진도의 수업을 받아서는 자신의 자녀들이 남들보다 앞서지 못하기 때문에 많은 사교육비를 지출하고서라도 개인과외나 또 학원에 다녀서 선행학습을 받아야 하고 가계운영에 다소 난관이 있더라도 특정 지역에 이사를 가서 조금이라도 교육의 혜택을 얻으며 같은 사고를 하고 있는 사람들과 정보를 나눈다. 그리하여 영재교육원에 어떻게든 들어가서 특목고 갈 때 정원의 10%, 특별전형의 혜택을 받아 결국 소위 일류대의 목표를 이루고자 한다.

현행 영재교육진흥법은 교육부 장관이 영재교육진흥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영재교육에 관한 종합 계획을 세우도록 하고 있으며 진흥위는 교육부 차관이 위원장이며 교육부와 과학기술부 공무원, 대학교수, 영재교육 전문가, 학부모, 변호사 등 15명으로 이뤄져 있다고 한다. 대한민국에서 이 정도의 위치에 계신 분이라면 영재선발에 있어서 편리성에 의하여 무조건 제 나이에 맞지 않는 수준의 시험으로 순위를 매겨 선발할 것이 아니라 누구나 인정할 만한 다양한 선발의 관점을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심사숙고하여 출제에 최선을 다하겠지만 선발에 좀 더 많은 연구가 있어야 할 것이다. 학교에서 교육목표를 제시하며 교육과정 설명을 하는 자리에는 학부모 자리가 많이 비어있지만 일반학원에서 영재교육에 대한 설명회를 열고 구체적인 항목을 제시하며, “우리가 아니면 영재교육원 선발 시험을 준비할 수 없다”는 자신에 넘친 학원 관계자의 설명을 듣는 자리에는 300명 이상의 학부모들이 몰리는 것인 현실을 관련 당국은 알았으면 한다.

2005년 12월 7일에 개정된 영재교육진흥법 2조 1항, 영재의 정의에 의하면, “영재라 함은 재능이 뛰어난 사람으로서 타고난 잠재력을 계발하기 위하여 특별한 교육을 필요로 하는 자”를 말한다라고 되어 있듯이 준비된 맞춤형 학습의 선행학습 우선이 아닌 법령에 제시된 그대로 학생들의 재능과 잠재력이 우선되는 그런 영재선발이 되어야만 한다. 또 제5조 제1항에 보면 “영재교육기관의 장은 영재교육대상자를 선발함에 있어서 저소득층 자녀, 사회적 취약 지역 거주 등 사회·경제적 이유로 잠재력이 충분히 발현되지 못한 영재를 선발하기 위하여 별도의 선발절차를 마련하는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라고 되어 있으므로 투자만이 영재를 기르는 지름길로 생각하며 여건이 되지 않는 데도 특정 지역으로 이사를 가서 영재교육원에 들여보내기를 원하는 수많은 학부모들의 인식을 잠재울 수 있는 특단의 조치가 있어야 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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