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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연수원의 추억 (9)

울산교육연수원은 나하고 인연이 많은 곳이다. 77년에 교직에 발을 들어놓은 이후 연수를 처음 받은 곳이 울산교육연수원이었다. 그 때 당시 ‘새마을연수’를 이곳 연수원에서 2박 3일간 받은 적이 있었다. 도로 사정이 좋지 않은 때이다. 고속도로는 생기기 전이었고 국도도 비포장도로였다.

그 때 창녕군 계성면 계성중학교에서 근무를 했는데 창녕에서 울산까지 오는 길이 너무 멀고 험했다. 지금이야 고속도로로 오게 되면 빠르면 1시간 30분 내지 2시간이면 올 수 있다. 하지만 그 때는 창녕에서 비포장도로로 완행버스를 타고 영산까지 와서 거기에서 직행버스를 타고 비포장도로로 마산까지 와서 마산에서 울산으로 오는 버스를 탔는데 지금처럼 고속도로로 온 것 아니라 부산 동래를 거쳐 국도로 울산까지 왔다. 시간도 거의 하루를 소비해야 했다. 울산에 와서도 방어진이라는 곳에까지 가니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그 곳도 한창 개발 중이었고 길도 제대로 확장되어 있지도 않았다.

그 때 연수원에서 접한 거대하고 웅장한 바다는 나를 압도하기에 충분했고 그 때 처음으로 바다다운 바다를 구경할 수 있었다. 연수를 받았던 2층 강당이 지금도 그대로 있다. 음악교사가 아니면서도 평소에 닦은 실력으로 피아노 칠 분 나와서 반주하라는 연구사님의 말씀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그곳에서 교재에 나와 있는 새마을 관련 노래 피아노 반주를 해서 많은 선생님들로 박수를 받은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 뒤 20년이 거의 되었을 즈음에 의령종고에 근무할 때 울산교육연수원에 사물놀이 지도가 가능한 파견교사 지원에 관한 공문을 받고 지원하기를 원했으나 그 때 교장선생님께서는 ‘둘러가는 것이 질러가는 것이다’라는 유명한 말씀을 저에게 하시면서 가지 못하게 막아 그때는 원망스럽기도 했고 울산교육연수원 하면 그토록 가고 싶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가슴에 한이 맺히게 했던 곳이다. 경남시절 그 때 연수원에 파견을 나가야만 도서벽지에 갈 수 있는 조건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 다음해 울산에 있는 언양여상으로 오게 되었고 그 이후 전문직의 첫걸음을 걷게 한 곳이 바로 한이 서리게 했던 울산교육연수원이었다. 교사시절에는 오고 싶은 곳이었지만 전문직으로서는 오고 싶지 않은 울산에서의 오지라 할 수 있는 곳이다. 그렇지만 이곳에서 사물놀이지도도 하게 되었고 교사시절 이루지 못했던 꿈을 늦게나마 이루게 되었으며 특히 교장선생님 말씀처럼 ‘둘러가는 것이 질러가는 것이다’라는 말씀이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연수원의 앞뜰은 산자락이라 넓고 빈 공간이 많다. 이런 공간을 그대로 방치할 수 없어 텃밭을 일구기도 했고 닭집을 만들어 손수 닭도, 오리도, 토끼도 키우기도 하였다. 그 때 함께 근무를 하셨던 기사를 맡았던 박 주사님께서 3월 말에 언양에 나가 병아리를 사와서 키우려고 하셨다. 연세는 많으시지만 부지런하셨고 마음씨도 너무 착하고 좋았다. 지금은 퇴직을 해 개인택시 운전을 하고 계시는 분이시다.

박 주사님께서 하루는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연수원에 닭을 키우기 위해 언양 장터에 나가 병아리 10마리를 사게 되었는데 병아리를 파는 아줌마에게 방어진까지 가니 2상자에 넣어 달라고 부탁을 하니 그 아줌마는 화를 내면서 상자 하나만 하면 된다고 하기에 나이 많아 대꾸할 수도 없고 시키는 대로 싣고 왔는데 연수원에 와서 보니 일곱 마리는 죽고 세 마리만 살았더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날 밤 잠을 설쳤다는 것이다. ‘죽을 때 얼마나 발버둥 쳤을까’ 생각하니 잠이 오지 않았고 사람이 짐승만 못하다는 생각이 들어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고 하셨다.

그 이후 어느 신문에서 어떤 기사를 보았다. 박 주사님께서 들려준 이야기와 신문에서 읽을 기사를 보고서 너무 대조적이어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메모한 적이 있었다. 그 때 읽은 기사 내용은 대충 이러하다.

‘LA에서 애틀랜타로 가기 위해 공항 수속을 하던 중, 공항직원이 문제를 제기하는데 그 문제는 “자신이 보기에는 집이 작아 강아지가 불편해 할 것 같아 이 상태로는 강아지를 보내줄 수 없다”는 것. 그러고 나서 그 직원이 훨씬 큰 강아지 집을 갖고 와서 하시는 말씀. “자 이제야 강아지가 서 있건 누워 있건 불편하지 않을 것이다”고 하면서 마치 자기가 강아지 주인이라도 되는 듯 만족한 표정으로 수속을 끝내 주었다는 것이다.

언양 장날 시장에서 병아리를 판 병아리 장사와 LA공항 직원의 동물에 대한 관심과 인식은 너무 대조적이었다. 병아리를 넣는 상자가 크든 작든, 병아리가 죽든 말든, 그건 상관하지 않고 오직 병아리만 팔면 된다는 이기적인 한국인의 사고방식. 이 사고방식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 아닌가 싶어 안타깝기도 하였다. 병아리를 사는 직원의 요구대로 두 상자에 넣어주었다면 그렇게 많은 병아리가 죽었을까?

반면 LA공항 직원은 줄지어 20분 이상 차례를 기다리는 승객도 아랑곳하지 않고 강아지 집이 작아 강아지를 보낼 수 없다고 하면서 더 큰집을 구해주었다는 건 우리나라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가 없다. 그러기에 나에게 큰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고 우리도 미국인처럼 성숙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닮았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도 하였다.

개의 불편함이 곧 나의 불편함인 양 무관심하게 넘기지 않고 개집을 구해주는 친절함은 분명 길이 기억되어야 할 선행임에 틀림없다. 병아리의 발버둥 치며 질식사하는 모습을 조금이라도 머릿속에 그려보았더라면 그 같은 무례한 행동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병아리가 숨이 막혀 질식사 하는 거나 사람들이 숨이 막혀 질식사하는 것이 무엇이 다르며, 강아지 집이 작아 강아지가 불편해 하는 거나 사람들의 사는 집이 좁아 불편해 하는 거나 무엇이 다를까? 하찮은 동물이라도 인간의 도움으로 편하게 해 주고자 하는 마음, 이 작은 마음도 우리들이 본받아할 마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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