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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연수원의 추억 (13)

울산이 광역시 승격으로 경남으로부터 분리되는 해인 1997년 3월에 울산 언양여상에 발령을 받고 울산을 오게 되었다. 그 때 딸이 중3이었기 때문에 이사를 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환경의 변화로 인해 공부에 지장이 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기에 거기에서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혼자서 객지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4년을 혼자서 자취생활을 하였다.

처음에는 차를 가지고 다녔으나 운전도 서툴고 힘이 들어 대중버스를 이용했다. 새벽에 일찍 나와 시외주차장까지 시내버스를 탄다. 어떤 때는 출근시간이라 좌석버스인데도 자리가 없다. 가방 들고 서서 버스를 탄다. 보통 때는 시내버스를 잘 타지 않고 택시를 탄다. 그런데 그날따라 버스를 타서 고생을 하게 되었으니 오래 기억에 남지 않을 수 없다.

시외주차장에 내려 마산에서 울산으로 오는 시외버스에 몸을 옮긴 채 창문을 내다보며 생각에 잠긴다. 어떤 때는 조그만 못 위에 세 마리의 하얀 물새가 날고 있었으나, 제격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에 평화롭게 느껴지지 않기도 한다.
또 조그만 못에 있는 한 마리의 두루미가 고개를 쭉 내민 채 물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고서는 친구를 잃어서 그렇나, 먹이가 없어 그렇나? 왜 외롭고 애처롭게 보이나? 기가 죽어 있나? 혹시 두루미의 모습이 내 모습이 아닌가 하고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또 연못에서 한 사람이 아침부터 한가로이 낚시를 즐기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저렇게 여유 있고 조용한 시간을 가질 수 있을까 하고 생각도 하게 된다.

산과 들에는 화사하게 피었던 벚꽃이랑 목련꽃 등은 다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고 배꽃이 곳곳에 하얗게 피어있을 때면 벚꽃만큼 화사하지 못해도, 목련만큼 뛰어나지 않아도 은근하면서 소박하게 피어있는 배꽃은 내 마음을 사로잡기도 한다.

스쳐지나가는 여러 모습들을 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면 1시간 40분 정도의 시간이 흘러 어느덧 울산시내에 도착하게 된다. 그러면 다시 울산시내버스를 한 시간 가량 방어진 울기공원 입구까지 가게 되면 다시 울기공원 입구에서 20분 정도 걸어서 연수원을 향하는데 아지랑이를 만나게 된다. 피어오르는 아지랑이를 보면서 옛날 어릴 적 철로변에서 아른거리는 아지랑이를 보는 듯해 더욱 친근감을 더해 주며,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다바람은 다정하게 다가온다.

바다를 보면 다시 기분이 좋아진다. 마음이 넓어진다. 특히 바다가 더더욱 좋아 보일 때가 있다. 바다가 엄마손으로 보이기도 하고, 빨래손으로 보이기도 한다. 손짓하며 다가오는 바다를 향해 달리기도 하고 날기도 한다. 그러면 자동적으로 노래가 나온다.

“바다는 엄마손. 내 깊이 잠들 때 잠자지 않고 빨래한다.// 속옷, 겉옷, 찌든 옷. 온갖 더러운, 때 묻은,// 야심(夜深)에 들려오는 그 파도소리는 엄마의 빨래하는 소리이러라.//바다는 빨래손. 내 눈 뜰 때 하이타이 섞어가며 빨래한다.// 더러운 옷 돌고 돌아 헹구다보니 남색 고운 물결 검게 물들고.// 부딪친 자국마다 검은 상처라. 하얀 손 내밀며 어루만지지 그 손결 희기가 더욱 진하여라.//그대는 아침 햇살을 안고 바다를 달린다.// 그대는 신선한 공기를 안고 바다를 뛴다. 파도는 그대와 달린다. 흰 땀 흘리며,// 새는 그대와 난다, 보조 맞추며. 나도 바다를 달린다, 반짝이는 紅波 속으로,// 나도 바다를 뛴다, 출렁이는 白波 속으로. 새도 그대도 나도 보조 맞추며 난다. 에머랄드 창공(蒼空) 속으로.// 그대가 나를 끄는 건 맑디맑은 푸르름.”

그 때는 그 날과 같은 바다가 나의 마음이 되었으면 하고 바란다. 구름 한 점 없는 덕택에 바다의 물결은 강물처럼 잔잔하고, 바다의 빛깔이 세 가지의 빛깔을 낼 때면 더욱 아름답게 느껴진다. 수평선 확연하게 그은 자리에는 짙은 남색이 줄을 짓고, 가운데는 짙은 남색과 옅은 남색이 섞이고, 가까이는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냇물처럼 맑고 연한 빛을 나타낼 때는 화가가 되어 한 폭의 그림에 담았으면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평소 나의 마음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욕하고 헐뜯는 검디검은 마음이 아닌가? 때론 엉큼한 생각을 품어 남을 해롭게 하는가 하면, 때론 탐욕으로 망신창이가 된 나의 마음이기에 오늘과 같은 푸르고 푸른 바다와 같은 마음으로 변하고 싶기도 한다.

하늘도 바다에 동화되어 연푸른 빛을 자아내고, 물새들이 날아와 날개를 치며 다정스럽게 놀고, 아무 걱정 없이 나룻배에 몸을 맡긴 채 양식하며, 해녀들이 자기 몸을 던지면서 바다 밑을 헤엄치며, 강태공들이 시간 가늘 줄 모른 채 바위 위에 서서 낚시를 즐기며, 많은 배들이 부담 없이 바다 위에 던져 놓고 시간을 보내는 것을 보게 되면 바다의 잔잔함과 풍부함 그리고 깨끗함과 넓은 마음이 생각하게 된다.

이제 하루 속히 나로 인해 주위 사람들이 검게 되는 그런 마음에서 벗어나서 남들로 하여금 푸르고 푸른 마음으로 동화될 수 있도록 영향력을 끼치는 그런 깨끗한 마음 갖고 싶어진다. 마음에 들면 날아오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날아가 버리는 물새에까지도 수용하는 바다를 볼 때면 나도 바다처럼 이기적이고 이해타산적인 사람들까지도 수용하는 포용력 있는 그런 마음을 갖고 싶어 하는 욕망이 생긴다.

자기의 유익을 위해 바다를 이용하는 사람들까지도 미워하지 않고 안아주는 바다의 성인군자와 같은 마음 닮고 싶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버리는 괘씸하기 짝이 없는 사람들까지도 안아주는 너그러운 마음 가져 보려고 다짐을 한다. 파도가 없이 잔잔하면 고마움도 잊은 채 마음껏 볼일 다보고 가지마는 폭풍이 불거나 큰 파도가 밀어닥치면 그냥 욕을 해대며 뒤돌아보지도 않고 가 버리는 크고 작은 배들까지도 다 용서하는 바다의 마음이 내 마음이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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