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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연수원의 추억 (15)

99년 당시 연수원의 숙소의 환경은 너무 열악했다. 내가 거한 숙소는 교실 반 만한 크기로 생각하면 된다. 천장은 교실과 같고 바닥은 나무가 아니고 시멘바닥이다. 침대는 쇠로 된 침대였고, 조그만 옷장 하나, 다용도로 사용되는 베니아판으로 된 긴 판이 전부였다. 침대를 놓고 나면 남은 공간을 1미터도 채 안 된다. 전화도 없고 TV없다. 감옥에 가보지 않았지만 아마 감옥과 흡사하리라 본다. 외부와는 차단되어 있고 밖에는 암흑천지다. 밤이 되면 찬바람이 창문틈으로 들어온다. 밖에서 들려오는 바람소리는 거칠다. 뒤에서 들려오는 파도소리는 노한 사람의 분노처럼 들려온다.

이런 곳에서 밤이 되면 무엇 하겠나? 책밖에 더 보겠나? 그래서 일생에 가장 많은 책을 보게 된 것이다. 하루는 장희빈에 관한 책을 읽었다. 장희빈의 죽음이 밤새도록 머릿속에 남아 있다. 잠을 잔 둥 만 둥 아침 일찍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전날 같으면 밖이 환할 텐데 그날은 어두컴컴하다. 비가 올 것처럼 구름이 잔뜩 끼여 있다. 새도 많이 울지 않는다. 마음도 썩 좋지 않다. 조금 전 장희빈의 죽음을 보았기 때문이다.

망설이다 오늘은 조금 늦게 연수원 정문을 나섰다. 울기공원 입구에 이르니 다람쥐 한 마리가 길 오른쪽 나뭇가지에서 왼쪽 나뭇가지로 살짝 넘는다. 다람쥐의 꼬리가 요사스럽다. 요사스럽고 요악한 장희빈을 보는 것 같아 씁쓸했다.

조금 더 지나가니 검은 강아지가 한 마리 지나간다. 누런 강아지와 함께. 그런데 누런 강아지는 눈에 들어오지 않고 조그만 검은 강아지만 눈에 들어온다. 귀엽게 보이지 않고 밉게 보인다. 왜 그럴까? 거짓 공손해 하는 장희빈을 보는 듯해서 일까?

얼마 안 가 비둘기 한 마리와 까마귀 한 마리가 길에 앉는다. 비둘기는 사람이 지나는 길에 어엿이 앉는다. 인현왕후의 사람을 아끼는 온화한 마음씨와 같았다. 그런데 까마귀는 길에 어엿이 앉는 것이 아니라 슬며시 길에 앉아 있는 모습이 마치 장희빈이 요악한 교태로 천심을 영합하며 왕자를 방패삼아 권세를 누리다가 왕비의 자리를 슬며시 차지하는 것 같았다.
오늘의 나무들은 신록으로 가득 찼다. 그런데 중간쯤 가면 아직도 벚꽃들이 지다말고 푸른 숲 속에 남아 있다. 훈훈한 바람 속에 휘날리는 벚꽃이 피어 있는 나무의 잎은 바람에 못 이겨 축 쳐져 있었다. 하지만 나머지 나뭇잎들은 싱싱했다.

지다만 벚꽃들이 꼭 장희빈의 깜빡 영화 같다. 떨어지는 모습이 흉하기는 그녀의 마지막 죽음과 흡사하다. “세자를 생각하여 형체 온전히 죽는 것이 네게는 영화다. 빨리 죽어라”고 하는 상감의 어명을 거역하면서 스스로 당당히 죽지 못하고 장교한 말로 눈물을 비같이 흘리면서 상감을 우러러 비는 모습을 보는 것과 같았다.

울기 등대 입구에 덩치가 큰 흰 개 한 마리와 검은 개 한 마리가 있었다. 흰 개는 효성이 지극하시고 덕으로 상감을 모셨던 인현왕후를 본 듯 했고, 검은 개 한 마리는 간사하고 약삭빨라 상감의 뜻을 맞추어 상감의 총애를 극진히 받는 장희빈을 본 듯했다.

오늘은 수련생이 호국영령이 서러있는 대왕암을 둘러보는 날이라 수련생 따라 대왕암에서 오른쪽 바닷가를 향해 연수원으로 돌아오면서 눈을 계속 바다와 하늘을 향하면서 장희빈의 죽음을 생각했다. 오늘따라 바다가 검은 먹물로 변하고 하늘구름이 먹장구름으로 변한 건 장희빈이 죽기를 거역하다 상감의 분노로 한 그릇의 약사발이 아닌 세 그릇을 함께 부어 검은 피 솟아나는 그 장면 보여주려고 그랬음이랴. ‘아!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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