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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이영도 평전 '내가 아는 이영도 그 달빛같은'을 읽고

내가 청마와 정운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기는 오래 전 부터다. 1967년 청마가 갑자기 교통사고로 타계하고 1968년 무렵 청마의 연서집 <사랑했으므로 행복하였네라>가 출판되어 그 책을 구해 읽을 무렵부터니까 거의 40년 가까이 된 셈이다. 



그 동안 청마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고 계속 시집도 읽고 수상록도 읽었지만 정운에 대해서는 우연히 접하게 되는 작품을 더러 읽어보는 정도에 불과 했다. 그런데 근래 그분들의 사랑의 관계가 궁금해져서 다시 관심을 갖게 되었다.

우선 청마의 시집과 산문집을 도서관에서 빌려와 읽기도 하고 옛날에 읽었던 연서집을 구입해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읽어보기도 했다. 그리고 허만하 시인이 쓴 청마 연구서 <청마풍경>도 꼼꼼히 읽어보았다.

그리고 급기야는 문덕수교수의 두툼한 청마 연구서 <청마평전>을 사서 읽는가 하면 이영도 여사의 수필집 <애정은 기도처럼>도 읽고 요새는 박옥금 시조시인이 쓴 이영도 평전 <내가 아는 이영도 그 달빛같은>을 아주 재미있게 읽고 있다.

그 책을 삼분지 일 정도 읽었을 무렵 나는 나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고 말았다. " 아! 이영도 어머니 같 은"이었다. 저절로 터져나온 탄성같은 것이었다. 이런 것이 바로 낭만주의 시인 워즈워드(William Wordswoth)가 말하는 '감정의 자발적 유로'(spontaneous overflow of emotion)바로 그것이지 모른다. 그러면서 무엇인가 아늑한 기운이 나를 감싸는 게 아닌가. 비로소 이영도라는 시인이 내 마음에 새롭게 자리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이영도를 잘 몰랐다. 우리 시조계에 정운 이영도가 차지하는 위상을 알지 못 했다. 비로소 그 분의 시조, 그 분의 수필이 감동으로 내게 다가왔던 것이다. 박옥금 시인이 전하는 이영도여사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미모와 재주와 인품을 갖춘 분이었다. 그러면서 좀 더 관심을 갖고 두 분의 작품을 읽어보면 이 두 분의 놀라운 사랑의 비밀조차도 감지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 평전을 통하여 비교적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 그 분의 가족사라든지 청마와의 만남, 그리고 청마에 대한 정운의 사랑이 어떠했던지도 짐작할 수 있었다. 청마의 연서집 <사랑했으므로 행복하였네라>엔 청마의 편지만 수록되고 정운의 편지는 하나도 없기 때문에 정운의 청마에 대한 태도는 어떠했을까 여간 궁금했던 게 아니다.

그러나 이영도의 편지가 공개되지 않는 한 이영도의 청마에 대한 사랑의 전모를 알기는 불가능해보인다. 그리고 평전을 쓴 박시인에 따르면 많은 수필집 어디에도 청마와의 애정에 대한 내용은 없다는 것이다. 단 한 군데에서 완곡하게 표현된 한 귀절이 있을 뿐이란다. 그리고 시조 몇 수에 우회적으로 사랑을 표현한 게 고작이라니 , 그렇다면 20년 동안 5,000통의 편지를 쓴 청마의 사랑은 일방적이었단 말인가.

그럴 리는 없을 것이다. 일방적인 사랑이 그렇게 오랜 세월 지속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두 분이 타계한 지 오래 된 지금 왜 정운의 편지는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가. 궁금하고 안타까울 뿐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세상에 밝혀 세속의 잣대로 입에 오르내리기 보다는 영원히 비밀에 묻혀 있어야 그 사랑이 비로소 완성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청마의 편지 속에서 간접적으로 정운이 청마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헤아려볼 수 있는 표현이 여러 군데서 발견되고 있지 않은가. 어쩌면 그것으로 족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운도 청마에게 많은 편지를 보냈다면 그들의 세계적 사랑의 전모를 공개해 역사에 남겨도 좋을 것이란 아쉬움을 떨쳐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그들이 문인으로서 훌륭한 작품을 남겼고, 아름다운 사랑으로 많은 독자들을 감동시킨 장본인들이니 그 정신세계는 연구되어야 할 귀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평전을 읽으며 정운이 61세가 되던 해 봄 외출에서 돌아와 갑자기 뇌일혈로 쓰러져 돌연사 했다는 내용은 얼마나 안타까운가. 그 후 외손자 하나가 어려서 또 세상을 뜨고 유일한 혈육인 딸 박진아마져 무슨 병인지 조차 알지 못한 채 일찍 세상을 떴다니 인간의 운명 앞에 그저 숙연해질 뿐이다. 저자 박시인이 정운의 산소를 찾았을 때 벌초도 되어 있지 않은 채 황량하게 방치되어 있었다는 얘기 또한 충격으로 다가 왔던 것이 다.

그토록 아름다운 시조를 쓰고 수필을 쓰며 아름다운 사랑을 한 분의 뒷얘기가 너무 쓸쓸하여 말문이 막혔다. 정운 시조문학상도 기금부족으로 명맥을 유지하기 어렵게 되었다니 인생만 무상한 게 아니라 사후에 한 위대한 인물이 어떻게 훼손되고 폄하되는지 실례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픈 것이다.

청마가 죽고 데굴데굴 구르며 같이 묻히겠다는 여인, 머리를 깎고 절로 들어간 여인, 청마의 편지를 공개하고 나서는 여인이 나타났다고 하는 대목에선 차라리 나까지도 배신감을 느꼈던 것이다. 정운에 대한 얼마나 큰 모독이며 그분들의 숭고한 사랑에 대한 불신으로 작용하지 않겠는가.

영웅호걸도 다 세상을 떠나고 세기적인 사랑을 한 분들도 다 세상을 떠나는 것이겠지만 사후에 이런저런 의혹이 제기되어 고인의 명예가 실추되는 것은 안타까 운 일이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청마와 정운의 작품을 가지고 또 그 분들이 남겨놓은 편지로 그 분들을 연구하고 판단해야지, 근거 없는 주장이나 불확실한 추측으로 평가해서는 안된다.

정운의 시조와 수필에 나타난 그 정결한 고전적 아름다움은 길이 우리의 귀한 문학유산으로 소중히 여겨야 하고 또 청마의 문학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청마가 정운에게 보낸 그 편지를 바탕으로 그 분들의 사랑을 평가해야지 근거없는 낭설일 수도 있는 사례를 들어 독자들을 혼란케하고 그분들의 명예를 실추시켜서는 안될 것이다.

이렇게도 사랑할 수 있다는 고귀한 예를 그 분들은 우리에게 본보기로 보여준 것이 아닌가. 사랑이 세속적으로 흘러 가끔 악취가 나는 경우를 우리는 본다. 그러나 이 지극히 아름다운 정신적 사랑 앞에 우리는 마음이 숙연해져 오는 것이다. 혹자는 의혹을 제기할 것이다. 그들이 정신적인 사랑만 했다는 것은 거짓이다 하고 말이다.

그러나 이 영도의 평전을 읽고 그 분의 시와 수필을 읽으면 그것이 사실일 것이라는 확신이 들게 된다. 그 분의 글 어디에도 세속의 티가 섞여 있는 곳은 한 구석도 없다. 그만큼 그 인품이 고매하기에 청마로부터 그런 사랑을 이끌어 내고 자신도 청마의 사랑을 고결하게 가꾸어 지녔을 것이다.

정운 생존 당시 많은 젊은 시조시인들이 정운을 "엄마"라고 불렀다 하니 미루어 그 인품을 짐작케 하는 것이다. 사랑! 그 영원한 과제에 또 하나의 질문과 해답을 제시하고 청마와 정운은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그 해답이 또 하나의 의혹을 증폭시켜서는 안 될 것이다. 그 해답이 명쾌한 해답이되어 <사랑했으므로 진정 행복하였네라>가 진정한 사랑의 메시지가 되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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