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대화를 유심히 들어 보면 유달리 “우리”라는 말을 많이 쓰는 경향이 있다. 특별히 “우리”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 없이 “우리”라는 말을 거침없이 쓰는 이면에는 “우리”라는 개념이 양면성을 띠고 있는 느낌이 든다. 자기의 아버지를 내 아버지로 부르기보다는 우리 아버지로 부르기도 하고, 우리라고 같은 동류의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철저히 개인주의적 사고를 지니고 있는 것. 그것이 바로 한국인이 아닌가도 싶다. 속담을 보아도 그렇다. “사촌이 논 사면 배 아프다” 또는 “잘 되면 내 탓 못되면 조상 탓”이라든지.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 우리 민족이 사용하고 있는 “우리”라는 용어에 생각의 여지가 있다.
“우리”라는 용어는 한국인의 이중적 사고의 그림자
고등학교 교과서 “국어생활(출판사 : 지학사, p.25)”에 나오는 “우리”라는 용어에 대한 조사표를 보면 “우리”라는 용어가 갖는 의미에는 “정, 친밀감, 마음이 편함, 상대가 나를 받아들임” 등등으로 언급되어 있으나, 일본인이 “우리”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경우는 “동질성, 유대감, 공통성, 협력, 소속감” 등등의 의미를 지닌다. 이처럼 두 나라에서 각각 사용하는 “우리”라는 용어의 의미는 천양지차의 모습이다.
도다 이쿠코 씨가 쓴 “일본여자가 쓴 한국여자비판”을 읽어 보면 한국 여성은 “친구”라는 단어를 너무 쉽게 사용한다고 한다. 한국 여성은 조금만 친해도 친구라고 하여 마치 진짜 친구로 대하는 한국 여성을 보면서 사람을 사귐에 있어 너무 쉽게 생각하는 한국인의 사고에 다소 비판적인 면을 비춰주고 있다. 한국어에는 말의 구조가 계층을 띠고 있기에 외국인이 한국어를 공부할 때 가장 어렵게 여기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라고 한다. 서양의 경우는 상대를 부를 때 “You”라고 하면 나이에 상관없이 통용된다. 그렇지만 한국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상대에 따라 존칭과 비칭이 달라야 하기에 말을 자칫 잘못하게 되면 큰 모욕감을 받게 되는 경우가 있다.
말의 이중성이 주는 의미는 그 민족의 의식 구조와도 밀접한 상관관계를 가진다. 끊고 맺는 것이 불분명한 한국말이기에 색감을 나타내는 데도 단어가 너무 많다. “노랗다”란 단어를 다르게 표현하면 “누렇다, 샛노랗다, 노르께하다, 노르무레하다, 노르스름하다, 노릇하다, 노릇노릇하다, 누르께하다……”등등 한 단어를 다르게 표현하는 데도 18가지 표현이 나온다. 언어가 너무 발달되어서 그런지 우리 국민의 감수성이 너무 창조적이고 감수성이 많아서인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영어로 표현하면 단 한 단어로 “Yellow”이다.
국제화 시대에 접어들고 있는 이 시점에 한국어의 이런 다양한 표현들이 한 단어의 영어로만 표현된다면 우리의 정서는 과연 어떻게 구체적으로 전달될 수 있을까? 이때까지 한국의 우수한 문학가들은 이런 감정을 어떻게 처리하여야 할지 정말로 많은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글로써 밥을 먹고 사는 사람은, 세계의 노벨 문학상을 꿈꾸는 작가라면 언어의 장벽을 어떻게 뛰어 넘어야 하나를 곰곰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말이 주는 영향은 행동에서도 이중성을 지닌다. 친구 간에 대화를 할 때도 “너 갈 거냐.” 고 물어 보면 그래 간다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드물다. “가는 데 무슨 일이 있어. 그래서 빨리 와야 해.”라고 대답하기도 하고, 또 “안 갈 거냐.”고 물어 보면 그래 안 간다라고 대답하는 경우는 드물다. “좀 있다가 간다.” “먼저 가라 뒤에 따라 간다.” 등등에서도 잘 나타난다. 긍정적인 “예스”와 부정적인 “노”의 구별이 한국인의 정서에는 애매모호하기에 서구의 과학적인 사고방식이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는지 모르겠다. 고쳐야 할 말이 많으면서도 그것을 쉽게 고치지 못하고 구렁이 담 넘어가듯 하는 한국인의 정서를 국제화, 서구화 되어 가는 이 시점에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일이 아닌가 싶다.
“우리”를 “나”로 바꾸는 언어 표현 캠페인 선행돼야
말은 끊임없이 생성되고, 발전되고, 소멸되는 과정을 거친다. 비록 조상대대로 내려온 언어를 기성세대들이 사용하면서 신세대들에게 물려주고는 있지만, 오늘의 시점에서 “우리”라는 어휘가 이중적 사고를 불러 일으켜 한국인의 정서를 외국인이 색안경으로 보게 되는 경우라면 과감하게 바꾸어 가는 작업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본다. 요즘 모 방송국에서는 국어의 의미를 정확히 사용하는 가를 테스트 하는 퀴즈 대회도 있고, 또 말의 표현을 올바르게 하기 위한 계도활동도 펼치고 있다. 한국인이 사용하고 있는 소중한 말은 한국인의 의식을 가장 잘 대변한다고 하지만, 그 대변이 다른 나라의 국민들의 비웃음꺼리가 된다면 아무리 우리말에서 우리의 의식이 담겨 있다고 하여도 바꾸어 조롱꺼리가 되는 일은 막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