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을 하다가 아이들이 장난을 하고 떠들면 나는 곧잘 " 야~ 저쪽 동네 지방방송 꺼라" 하고 수업을 이어가곤 했다. 아마 그때는 그만큼 라디오가 생활과 밀접하여 그 말이 상당한 효과를 발휘했는지 모른다. 그러면 아이들도 곧 알아듣고 자세를 바로 하여 수업에 임하곤 했다.
근래 접어들어선 수업 중에 아이들이 엉뚱한 발언을 하여 분위기를 깨트리거나 내 말을 멋대로 해석해서 또 엉뚱한 질문이라도 해오면 나는 "얘들아 ~ 악플 달지 말자” 하고 수업 분위기를 바로 잡는 것이다. 물론 아이들은 재미있어 죽겠다는 반응이다. 나이 지긋한 선생이 뜻밖에도 저희들 전용어일 것 같은 인터넷 은어 를 재미있게 구사하는 것에 대한 반가움의 표시일 수도 있고 의외성에 놀랐다는 반응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인터넷에 댓글을 다는 것이 그 수단과 방법이 다를 뿐이지 옛날에도 어떤 말이나 글에 반응을 하고 대꾸를 하는 것은 통상 있었지 않았나 싶다. 의사소통의 자연스러운 한 양식이었던 셈이다. 말이나 글 속엔 의미가 있고 감정이 내포되어 있어서 접하게 되면 그것이 우리의 마음을 자극하게 되고 곧 반응을 보이게 된다. 행복하게 느꼈다면 행복한 반응을, 분노를 느꼈다면 분노의 반응을 보일 것이다.
댓글 문화도 바로 그런 반응의 현대적 형태인 것이다. 그 반응에 따라 당사자는 또 희비애락의 감정을 맛보기도 할 것 아닌가. 나는 댓글 달기를 별로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어쩌다 인터넷 매체에서 우연히 다른 사람들의 댓글을 보게 되면 너무 원색적이고 즉흥적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얼마 전에 모 연예인이 자살을 한 후에 인터넷 댓글 문화가 논란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다. 꼭 악의적 댓글이 그의 죽음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확실하지는 않다 하더라도 논란의 여지는 충분히 있다.
언어는 살아 있는 유기체다. 말과 글 속엔 한 사람의 혼이 담겨 있다. 여러 가지 감정도 담겨 있다. 곧 그 사람 자신인 것이다. 무수한 사람들로부터 악의적 댓글 세례를 받는다면 그것은 무자비한 폭력이다. 동시에 수 십 수 백 명으로부터 몰매를 맞는 것과 같다. 그 충격이 얼마나 클 것인가.
더군다나 언어엔 주술성이 있다고 하지 않는가. 죽은 자와 산자를 연결하기 위해 저승의 혼령까지도 불러들이는 무당의 주술과도 같은 힘이 언어 속에 있다는 것 아닌가. 댓글에다 그런 악의적 주문을 무차별적으로 담아놓는다면 그 당사자는 자기를 해치려는 무서운 적에 둘러싸인 기분 아니겠는가.
아직 건전한 인터넷 문화가 정착이 안 된 초기 단계라 그럴지 모른다. 또 옛날 그리스나 로마 시대에도 악은 있었고 백 년 이백 년 후에도 악은 여전히 존재할 것이라며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겠지 하고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인간은 죄를 짓게 되어있는 존재고, 범죄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하는 것이다 하고 편리하게 생각해 넘길 수도 있다.
그러나 인류역사에도 부정부패가 더욱 만연되어 있던 때가 있었고 태평성대를 구가하던 때도 있었다는 것을 상기한다면 밝은 사회를 위해 올바른 댓글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도 전적으로 우리들의 몫이 아닐까. 상대방을 배려하는 따뜻한 사회가 이런 곳에서도 정착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