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시간이 되어 예슬이가 학원에서 5시에 공부가 끝난다는 말을 듣고 학원으로 전화를 했더니 4시 반에 집에 갔다고 한다. 하는 수 없이 집으로 전화를 했다. 외할머니와 함께 산다고 들었는데 젊은 여자 목소리가 들려서 혹시 예슬이 어머니냐고 물으니 이모라고 한다. 예슬이 네 집을 방문하려고하니 길 안내를 부탁 하였더니 길이 좀 복잡하다고 하면서 친절히 일러주었다.
예슬이네 집은 제천에서 박달재 옛길을 따라가다가 왼편으로 들어가 놀이터를 지나 다리를 건넌 다음 마을 회관을 지나 한참을 올라가야 했다. 마을 회관까지는 갔는데 동네 길을 들어서니 길이 좁아 차를 돌릴 곳도 없어 길을 잘못 들었다는 것을 알았다. 한참을 가다보니까 다시 시내버스가 다니는 길을 만나 너무 반가웠다.
중학생이 걸어가고 있어 예슬이네 집을 아느냐고 물으니 한참 올라가서 산 밑에 있다고 한다. 혹시 차라도 만나면 어쩌나하는 생각을 하면서 좁은 마을 농로를 따라 올라가니 할머니 한분이 보여서 예슬이 네 집을 물으니 바로 위라고 가르쳐주어 집 뒤편에서 겨우 차를 돌려놓고 내리려니까 예슬이가 마중을 나와 반가워하였다. 학교에서 볼 때 보다 얼굴이 너무 밝아보였고 나를 보더니 좋아하였다.
시골집 마당에서 예슬이 외할머니와 인사를 나누고 가정이야기를 나누었다. 예슬이가 세살 때 어머니는 아빠와 이혼을 하고 외가에 맡겨놓고 성남에 있는 전자회사에 다니며 어렵게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엄마의 정을 모르고 외할머니께서 키운 아이였다. 외할머니도 무릎이 아파서 일을 잘 못하는데 올해로 91세가 되신 외증조모는 중풍으로 거동을 못하고 방에만 계시고 대소변을 받아내고 있는데 말씀은 해도 듣지는 못하는 분이다.
4학년인 예슬이는 어려서부터 할머니를 도와드리며 집안일을 거들기 시작하였는데 노 할머니께 진지를 드시도록 하고 빨래도하고 손발 씻겨드리기 농사철 농기구 나르기 집안청소 설거지 등을 하면서 효행을 실천하는 것이 주위에 알려져서 지난해 10월 “10살 소녀 예슬이 의 일기”라는 제목으로 TV프로에 소개 되었다고 한다.
2003년부터 매년 5월에 시상하는 충북효도대상이 올해로 5회를 맞이하는데 예슬이의 효행을 추천하여 제천교육청을 거쳐 도교육청에 접수하여 예심을 거쳐 본선 심사에 오른 9명을 놓고 현지 실사를 한 다음 5명의 심사위원이 엄격한 심사를 하여 초등부문 효도대상 섬김상으로 선정되어 지난 5월 31일 도교육청강당에서 교육감(이기용)상패와 장학금 50만원을 받은바 있다.
너무나 자랑스러운 어린이라서 우리학교 어린이들 앞에서 상패를 전달하면서 어린나이에 효를 실천하는 모범어린이로 조회시간을 통해 인성교육을 하여 많은 어린들에게 감화를 주었다. 직접 가정을 방문하여 살아가는 형편을 살펴보고 희망과 용기를 주어야 겠다는 생각으로 가정방문을 하였다. 할머니의 말씀 중에 초등학교까지는 집안에 도움을 주는 예슬이를 키우겠지만 중학생이 되면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을 하고 있어 한편으로 안타까웠다.
부모가 이혼을 하고 주로 외가에 맡겨진 아이들의 수가 점점 늘어 가는 것이 현실적인 문제이다. 우리학교도 250여명재적에 25명이 조손가정이니까 10%나 된다. 대부분 농촌에 사시는 노인들에게 맡겨져서 부모의 정을 받지 못하고 자라는 아이들이 많아 담임교사도 이런 아이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인성교육에 힘쓰고 있다.
아직은 어리기 때문에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들은 없으나 학교행사 때 부모와 함께하는 친구들을 얼마나 부러워할까? 부모의 사랑을 못 받고 자라는 어린이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을 예슬이네 집을 뒤로하고 돌아오는 길에 더욱 느꼈고 다시 한번 가정의 소중함을 절감하면서 예슬이의 효심이 오래도록 지속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고 결손가정이 없어야 청소년들이 올곧게 자랄 것이며 우리나라의 미래도 밝아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착잡한 마음으로 마을을 빠져나와 조금 늦게 퇴근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