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여름밤
김홍표 지음
반딧불 하나 둘
별이 되려고 사락사락
살찌는 들녘에서 피어나면
철둑길 따라 흐르는 봇물에
개구리 한바탕 울어댔지
코끝에 실리는 오이꽃 향
머리 푼 연기만 너울너울
담 밑에 함박꽃 함박웃음
박꽃은 달빛에 수줍은데
덕석에 누운 누나의 꿈은
오붓한 가슴에 소록소록
무섭던 아버지도 정다웠지
엄마의 몸에선 흙냄새가
뒤뜰에 돋아나는 감꽃 향기
단 수수 잎사귀 사각사각
힘없이 부채마저 잠이 들면
시름시름 여위는 모깃불
어머니 무릎에 잠든 동생은
봇물에 첨벙첨벙 뛰어드나 봐
처녀들 노랫소리 잦아들면
달은 새벽으로 기울어
풀벌레 찌르르르 코 고는 소리
뱃속에선 쪼르르르 시냇물 소리
아버지 엄마는 단잠이나 드셨을까?
긴 긴 여름밤 쓰르르르
아득한 가슴에 사무쳐라
김홍표 님의 시집을 읽다가 마음에 와 닿은 이 시를 올립니다. `그 해 여름 밤` 을 음미하며
아침 독서 시간에 우리 반 아이들과 함께 독서를 하다가 베껴 본 시랍니다.
저는 오늘 아침 이 시집을 읽으며 40여 년 전으로 돌아가는 행복을 누렸답니다.
초등학교 시절 여름밤에 모기장 속에서 아버지가 사오신 수박 한 통, 참외 몇 개를
먹으며 행복했던 시간들을 반추해 냈습니다.
그리고 오늘 문예반 아이들과 함께 낭송하며 시 감상 수업까지 했지요.
풍성한 의태어와 의성어는 초등학교 학생들에게도 좋은 글감이니까요.
잔잔한 서정을 불러 일으키는 시들로 가득 찬 김홍표 님의 시집 <뒤란에 서다>(북랜드)
속에는 농촌의 아픔보다 그리움이 잔뜩 묻어나게 하는 예민한 감성의 노래들이
잊혀진 시간들을 불어내어 주었답니다.
사라져 가는 농촌의 문화와 언어를 기록하고 남기는 일이 작가들의 몫이라면
그 언어와 문화를 재발견하여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농촌의 아름다운 서정을
다시 찾게 하는 일은 우리 어른들과 선생님들의 몫이 아닐까요?
그리워 할 ' 그 무엇'을 어린 시절에 많이 쌓게 하는 일은 평생을 살아가는
힘과 사랑의 원천이 되리라 확신합니다. 할 수만 있다면 감성을 일깨우는
서정적인 시집도 늘 읽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
<뒤란에 서다>-북랜드, 김홍표 지음, 7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