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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교과서에 대한 요즘 학생들의 생각 유감(遺憾)


우리 학교 이야기다. 실외화를 신고 실내를 출입하는 학생이 하도 많아 ‘실내화를 자랑스럽게 들고 다니는 학생이 되자’를 강조하였다. 교감이 직접 방송으로 몇 차례 교육을 하고 담임도 조종례 시간에 반복하여 교육하였다. 모든 교직원이 힘을 합쳐 실내화 없이 등교하는 학생은 실외화를 압수하기도 하였다.

그 지도 효과가 있었을까? 잔소리 덕분인지 99%가 실내화를 착용하고 있다. 1학년은 실내화를 자랑스럽게 들고 다닌다. 그러나 3학년은 그게 아니다. 교문에서 하교 지도를 하다보니 슬리퍼 차림으로 귀가하는 학생들이 눈에 띈다. 실내화 지적을 하니 메고 있는 가방에서 실외화를 꺼낸다. 그런데 “헉, 이럴 수가?” 학생들 가방 속에 있는 내용물을 보니 기가 찬다. 신발주머니와 신발이 전부다. 그렇다면 학생의 정신적인 지주가 되고 동반자가 되는 교과서는 어디 있을까?

그들의 교과서는 책상 서랍 또는 사물함에 고이 모셔져 있다. 아니 내팽개쳐져 있다. 학생들은 교과서가 무거워 그냥 학교에 두고 다니는 것이다. 교과서가 늘 가까이 하는 친구로서, 지식의 보고가 아니라 ‘공부는 하기 싫은 것’이며 ‘교과서는 무거운 물건’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문득 학창시절이 떠오른다. 학교에서 새교과서 나누어주는 날은 귀가를 서두른다. 왜? 빨리 집에 가서 누나나 동생보다 달력을 먼저 차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헌 달력으로, 그것도 두꺼운 달력종이로 교과서를 예쁘게 포장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였다. 아니다. 부모님으로부터 그렇게 교육을 받았다. 교과서는 소중한 것이라고. 교과서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이라는 무언의 암시를 받았다.

새교과서 겉장을 싸 책꽂이 쭉 꽂아 놓고 보는 그 흐뭇함. “그래, 1년간 저 책들이 나를 더욱 성장시켜 주겠지. 그리고 저것은 삶의 자양분이 되겠지.”하면서 좋아하는 교과목은 어떤 내용이 담겨 있나 배울 것을 미리 훑어보기도 하였다. 배움의 희망에 부풀어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교과서가 아무리 무거워도 교실에 놓고 와서는 아니 된다고 배웠다. 내 교과서가 컴컴한 밤 교실에 홀로 남아 있게 하는 것은 학생의 도리가 아니며 교과서를 함부로 다루는 학생은 배움을 포기한 학생, 인생을 포기한, 불행한 삶을 자초하는 불쌍한 학생이라는 인식이 내재되어 있었던 것이다.

책가방이 아무리 무거워도 그것을 즐거운 마음으로 들고 다녀야 하며 한 쪽 어깨가 축 쳐지는 것을 막기 위해 양손에 바꾸어가며 힘들게 들고 다니면서도 이것을 이겨내야 하는 체력과 정신력이 있어야 사회생활에서의 역경을 헤쳐 나갈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그 교과서를 갖고 다녀야 또 교과서와 나의 접촉 시간이 길면 길수록 교과서 내용이 비로소 내 것이 된다는 신념이 있었던 것이다.

중고교 시절 비오는 날, 하교길 풍경 하나. 우산이 미처 준비되지 않은 친구들은 집에 가는 것이 큰 걱정거리다. 비 맞아 온 몸이 젖는 것이 걱정이 아니라 책가방을 어떻게 비 맞지 않게 할까를 궁리한다. 가방을 가슴에 껴안고 사람, 심지어 교복으로 덮고 가는 사람, 용케 비닐을 구해 가방을 덧씌워 가는 사람 등. 친구들은 가방을 보호한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있는 교과서를 애지중지 여긴 것이다.

왜? 물기에 젖은 부풀어 오른 흉한 모습의 교과서를 한 번 쯤 경험해 보았기 때문이다. 도시락 반찬 국물이 새어 교과서 한쪽 구석을 물들게 한 창피한 추억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 당시 우리들은 교과서를 함부로 다루는 학생은 ‘공부 못하는 학생’ 내지는 ‘진학을 포기한 학생’ 또는 ‘불량 학생’으로 보았다. 또 그런 생각이 일반적으로 통용되었다.

그런 내가 국어 교사가 되었다. 학생들이 교과서를 대하는 모습을 보니 ‘이건 아니다’ 싶은 것이다. 교과서를 잃어버려도 찾는 학생이 없고 매 시간마다 교과서 빌리려 다니는 학생들이 눈에 많이 띈다. 교과서를 함부로 다루어도 누가 뭐라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학기 시작 맨 첫시간에 하는 일은 교과서 뒤 겉장 지정된 곳에 학번과 이름쓰기 지도다. 국어책에 반 표시도 통일하여 교사가 학생들 책을 보았을 때 다른 반에서 빌려 온 것을 금방 알아볼 수 있게 하였다. 그리고 “교과서는 빌려주지도 말고 빌려받지도 말자”고 강조하였다. 학창시절 이야기를 들려주며 교과서를 소중히 다루도록 하였다.

교과서를 빌려온 학생, 교과서 없는 학생, 교과서를 함부로 다루는 학생들은 교무수첩에 표시하여 태도 점수에 반영하기도 하였다. 학생들 입장에서 보면 구닥다리 선생님인지도 모르겠다. “교과서가 무어 그리 대단하다고 신주단지처럼 모셔야 한단 말인가“하는 불평불만이 나올 만도 하다.

몇 년 전부터인가 학생들 사이에 교과서 이름 바꾸기가 유행이다. 교과서에 있는 과목 이름을 지우거나 고쳐서 엉뚱한 이름을 만드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있어 ‘국어’는 궁예, 북어, 광어, 굴비, 씨불알, 붐업, 굶어, 복어, 떡국 먹어라 등으로 바꾸고 있는 실상이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누가 더 자극적으로 만드는가에 따라 인기가 좌우가 된다고 한다. 교과서 이름을 갖고 장난을 노는 것이다. 형편없는 이름일수록 주목의 대상이 되니 기발한 생각도 좋지만 교과서를 희화화하는 것은 인성에도 좋지 않은 것이다.

요즘 아이들은 학교를 ‘졸업장을 따기 위한 수단’으로, 책가방은 ‘학생임을 증명하는 모양새’로 메고 다니고 교과서는 '재미는 없지만 시험을 위해 억지로 봐야 하는 책' 정도로 여기고 있지나 않은지 모르겠다.

그러나 교과서는 신성한 것이다. 제대로만 공부한다면 삶의 지혜를 주고 인생을 풍요롭게 살 수 있도록 하는 지침서인 것이다. 교내 신발장에, 폐휴지 창고에 함부로 버려져 있는 주인 잃은 교과서와 학생들의 교과서 없는 텅 빈 가방을 보며 만감이 교차한다. 새교과서 겉장을 달력으로 싸면서 가졌던 배움에 대한 설레임과 기대, 책꽂이의 교과서를 보며 ‘미래의 성숙한 자화상’을 그려 보는 소중한 경험을 요즘 아이들에게 줄 수는 없단 말인가?

‘교과서(공부)를 중히 여기는 민족이 흥하는 것’, 만고불변의 진리일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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