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의 정부는 출범 이후 줄곧 '교육황폐화' '교실붕괴'의 악령에 시달리면서 '사교육 억제와 공교육 내실화'를 위한 각종 초중등 정책을 쏟아냈다. 한줄세우기식 교육에 소외돼 온 학생들이 교사, 학교에 반기를 들고 교육이민을 떠나면서 교실붕괴에 대한 위기의식이 '교육망국론'으로 증폭됐기 때문이다.
대대적인 사교육 경감대책, 2002 무시험 대입전형, 선택중심 7차 교육과정, 7·20교육여건 개선 등은 바로 '교육수요자'들의 이반된 민심을 달래려는 대표적인 초중등 교육정책들이었다.
"청소년들을 과외로부터 해방시키겠다"고 천명한 국민의정부는 1차적으로 입시제도 개선에 나섰다. '무시험전형'을 골자로 한 '2002 대학입학제도개선안'(1998년 10월 19일 발표)과 2005학년도부터 도입될 '대학수능시험체제개편안'(2001년 12월 28일 발표)이 그것.
그러나 입시제도 개선을 통한 사교육비 절감은 '희망사항'에 그쳤고 오히려 "한가지만 잘하면 대학 간다"는 오해를 일으켜 학력 저하와 학교교육 황폐화를 더욱 부추겼다.
더욱이 특기자에 대한 '무시험전형제'가 도입되면서 사교육시장에 신종 '예체능 맞춤형 과외'나 '논술과외' 각종 '경시대회'가 등장해 사교육 시장을 확장시키고 학생들의 학습부하를 가중시키고 말았다.
2005학년도 수능도 '선택형 수능'으로 시험 부담이 줄어들 것이란 교육부의 당초 설명과는 달리 전체 대학의 62%인 119곳이'3+1' 방식을 선택하고 주요대학 인문계열이 '3+2'를 채택해 수험생들의 부담이 줄지 않을 전망이다. 이와 관련 고교 진학담당 교사들은 "수능반영 영역이 줄어든 대신 선택과목의 난이도가 높아져 사교육 의존도가 더욱 커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실제로 교육부 보고서에 따르면 2000년 현재 초중등 학생 과외비 총액은 연간 약 7조 1276억원으로 1999년도 총과외비 6조 7720억원에 비해 5.2%가 상승하는 등 증가 추세에 있다.
또 지난해에는 사교육비가 26조원에 달한다는 통계까지 발표됐고 OECD의 2002년 교육보고서에는 GDP 대비 민간부문 교육비 지출 비율이 30개 회원국 대부분이 1% 미만인 반면 우리나라는 2.7%에 달해 1위의 불명예를 안았다.
초중고 유학생 수도 98학년도 1만 738명, 99학년도 1만 1237명으로 증가하고 2000학년도에는 3, 4월에만 2874명에 달할 만큼 급증하면서 '교육이민' '기러기아빠'가 유행어가 돼 버렸다.
입시제도 개선과 함께 국민의정부는 '초중고교 교육정상화 방안'(1998.10.21), '교육발전 5개년 계획'(1999.3.12), '교육여건개선 추진계획'(2001.7.20), '공교육 진단 및 내실화 대책'(2002.3.19)을 잇따라 발표했다. '수행평가' '자립형사립고' '학급당 35명 감축' 등의 초중등 교육정책이 여기서 탄생했고 2000년에는 초등 1, 2학년부터 제7차 교육과정이 도입돼 '획일화'에 찌든 공교육의 체질개선에 힘이 모아졌다.
그러나 이들 정책은 학교현장의 여건을 무시한 채 무리하게 추진돼 부작용을 낳고 변질됐다. 수준별 교육과 다양한 교과활동, 교과선택을 골자로 현재 초중고 전체 학교급에 도입된 7차 교육과정은 교사, 시설 부족으로 취지가 완전히 퇴색돼 교원단체의 폐지 압력까지 받았다.
올 9월 경기도교육청이 각 고교의 선택교육과정 편성안을 분석한 결과, 일반계 고교의 상당수가 종전의 문과-이과로 나누는 방식에 그쳤으며, 학생이 2, 3학년 동안 선택할 수 있는 총 수업 단위를 대부분이 하한선인 28단위 이하로 편성, 한 학기당 1과목 정도로 제한해 버렸다.
이런 가운데 학생들은 쉽고 입시에 유리한 과목에 대한 선택 편중현상을 보였다. 교육부가 올 10월 선택과목 교과서 주문을 마감한 결과, 국어·사회·제2외국어 등에서 편중현상이 두드러져 일부 과목은 교사수급이 불가능할 전망이다.
이와 관련 지난해 한국교총이 전국 1903개 중고교 교육과정 연구담당 교사를 설문조사한 결과, 88.3%가 '선택교육과정 적용이 불가능하다'고 답했고 고교 교원의 73.4%가 '시행시기를 늦춰야 한다'고 응답했다.
7차 교육과정에 대한 폐지·연기 여론이 일자 정부는 2001년 7월20일 최후의 카드로 '7·20 교육여건개선추진계획'을 내놨다. 2003년까지 9조 9200억원을 쏟아 부어 1208개 학교(3만 5000개 학급)를 신설하고 1만 4494학급을 증설해 초중고 학급당 학생수를 35명으로 끌어내린다는 획기적인 방안이었다.
그러나 '임기내 마무리' 원칙으로 시행시기를 2년이나 앞당기면서 날림 부실공사에 학기중 공사로 수업권이 침해되고 운동장, 특별실, 휴게실 등을 잠식하면서 "오히려 교육여건이 후퇴했다"는 불만이 터져나왔다.
올 3월 증축이 완료된 고교 교실은 당초 목표 6057개 교실 중 84%에 불과한 5000여개로 나머지 교실은 새학기에도 상당기간 공사가 진행돼 수업 방해와 소음 피해를 일으켰고 실습실 등이 교실로 활용돼야만 했다. 또 각 시·도교육청이 올 상반기 학교시설 공사와 관련, 전국 6464개 초중등학교에 대한 특별감사를 실시한 결과 36.4%인 2351개교가 부실 지적을 받았다.
한편 1998년 '초중고교교육정상화방안'의 하나로 도입돼 시행 4년째를 맞은 수행평가는 단순 지필평가를 지양하고 실험관찰보고서, 토의과정, 논술·서술 등 다양한 평가영역을 도입해 교실 수업에 큰 변화를 일으켰다.
하지만 과다한 학생수로 인해 교사들의 평가는 '형식적'이 됐고 학생들은 쏟아지는 과제물 때문에 '고행평가'라는 불만을 터뜨렸다. 또 높은 수행평가 성적을 받기 위해 '번개과외'(뜀틀과외, 피리과외, 데생과외)가 나타나게 됐다. 실제로 99년 수행평가가 실시된 직후부터 보습학원을 중심으로 과제물 대행을 위한 '수행평가반'이 운영돼 학부모와 학생들의 인기를 끌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