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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강마을 편지> 가슴 속에 품은 꿈의 씨앗이 상처받지 않도록


제가 있는 시골중학교에는 아침이면 겨울안개로 무성합니다. 학교 옆을 휘돌아 흐르는 남강으로 희뿌연 안개가 흐르면 그 강가를 둘러싼 키 큰 은사시나무도 보이지 않습니다.

정문에서 도우미 교사가 되어 낙엽을 치우고 있으면, 아이들은 자전거를 타고 안개를 뚫고 등교하는 아이들의 앞머리가 젖어있습니다. 제법 머리가 긴 녀석도 보입니다. 우리 학교 학생들은 두발과 교복 차림이 꽤 단정한 편입니다. 도시의 학생들처럼 퍼머나 염색을 한 아이는 찾아보기 어렵고 교복을 이상하게 줄여 입는 아이도 드뭅니다. 전교생 58명의 시골중학교에서 누가 어느 집 아이인지 어느 골짜기에 사는지도 다 아는 선생님과 졸업을 하고 나서도 힘들 때면 밤늦게 전화를 해서 고민을 이야기하는 그런 제자가 모여 있는 것입니다.

처음 학생들의 인권 존중에 대한 글을 쓰려고 하니, 제가 교사이면서 이 문제를 깊이 있게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아가서 학생의 삶의 질에 대해 삶에 대해서도 고민하지 않고 있었다는 반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수업 시간에 들어가서 3학년 아이들에게 너희는 인권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을 해 보았습니다.

“샘예, 인권이 뭐라예?”
“인권이란, 인간의 생존에 있어서 불가결한 기본적인 권리이고, 가장 우선적으로 보장되는 권리아이가.”
“그라모, 우리의 기본적인 권리라고예?”
“너희가 가장 어른들로부터 받고 싶은 권리가 뭐꼬?”

그러다가, 두발자율화에 대한 이야기, 교복을 입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 자율학습 하기 싫다, 드디어 시험 안치고 살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설왕설래하였다. 평소 선생님께 하고 싶은 말들이 와르르 밀려왔다. 하여간 이 녀석들은 틈을 보여주면 안된다니까? 휴!

“너그가 학생 인권을 우째 생각하는지 글로 한번 써 볼래?”

이렇게 해서 학생들의 글을 한번 받아 보았다. 시골 중학생들 몇 명의 의견을 옮겨 보았습니다.

먼저, 학교에서는 우리에게 머리를 기르지 못하게 하나? 머리가 길면 공부를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모순이 있다. 통계상 남자보다 머리 긴 여자가 공부를 더 잘한다. 우리는 헌법 제10조에 의거하여 행복해야할 권리가 있다. 그리고 머리를 자르는 것은 옛날 일본이 남겨 놓은 더러운 잔유물의 하나인 단발령 때문이다. 21세기인 지금 그것을 지켜야 할까? 그리고 두발은 자신의 몸인데, 자신이 몸을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 중3 박**

학생에게 약간의 체벌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숙제를 안 해 오거나 수업시간에 떠들면 선생님의 가벼운 체벌은 정당하다. 과도한 체벌이 문제가 된다. 얼마 전 선생님의 과도한 체벌이 이슈가 되었는데 평소 무단결석, 숙제 미제출 등 학생의 태도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정에 휘말려 도가 지나친 선생님은 학생들의 관점에서 선생님께 이실직고 한다면 체벌이 약해 질 것이다..... 중3 나**

학생들의 의견은 교복이나 두발에 대한 자율화를 원하고 있었으며, 지나치게 학생답지 못한 염색이나 퍼머 등은 보기 싫다는 의견이 많았다. 또, 체벌에 대한 의견은 과도한 체벌의 경우나 감정적 체벌의 경우 선생님 스스로 한번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특히, 동영상 등에서 본 심한 체벌을 하는 선생님들에 대한 반감이 많았으며 한 아이는 어떤 경우에도 선생님이 넓은 마음으로 아이들을 보살펴주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자기편인 선생님을 원하는 아이들과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전정가위를 들고 이리저리 가지를 치고 모양을 잡는 선생님인 내 모습이 아프게 다가옵니다. 그리고 예전에 담임을 하였던 한 아이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 아이는 매일 아침 무스와 스프레이로 앞머리를 공들여 부풀려오느라 늘 지각을 하였습니다. 아침 조례에 늦어 복도에 벌을 선 녀석에게 나는 앞머리를 당기며 야단을 쳤습니다.

“니, 오늘도 이리 머리 세운다고 늦었재?”
“아닙니더, 늦잠자서 그렇습니더.”
“그라모, 니는 매일 늦잠을 자나? 그라고, 학교에서 무스하고 스프레이 뿌리지 말고, 앞머리 세우지 말라 안 커더나?”

이렇게 내내 나와 실랑이를 하던 그 녀석은 지금 멋진 미용사가 되어 있습니다. 부스스하던 저의 담임선생의 머리를 못마땅해 하면서 자기는 커면 선생님처럼 머리 안 해가지고 다닌다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지금 아이들은 이해를 못하겠지만, 그 때는 많이 엄격한 두발규칙을 적용하였습니다. 다양한 개성의 아이들은 예쁜 것을 좋아하고, 자기를 다르게 보여주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교사인 저는 우리들이 너무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모르고 있다는 생각을 아프게 합니다. 아니, 모른다고 눈을 막고 귀를 막고 그저 말을 잘 듣는 아이만을 원한 것이 아닐까요.

꽃처럼 피어나는 아이들을 보면서 우리 아이들의 삶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그 행복을 지키는 작은 등불이 교사가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가슴 속에 품은 꿈의 씨앗이 상처받지 않도록, 교사인 나만 행복한 것이 아니라, 학생이 행복한 세상을 위해 아이들이 가지고 싶은 것을 알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월간 학부모12월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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