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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6학년 1반의 작은 학급 발표회


느닷없이 학부모 공개수업 때 학급발표회를 한다고 공표하자 놀란 아이들이 술렁였다. 특히 남학생들의 입이 한 대빨은 앞으로 튀어나왔다.
“그딴 것을 왜 해요?”
“그냥 공부하는 것 보여주면 안돼요?”
공부시간에 집중 안하고 제일 많이 떠들어 분위기를 달뜨게 만드는 녀석이 더욱 더 볼멘소리를 해대었다.
“1학기에는 너희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니까 2학기에는 공부 이외에 너희들에게 숨겨진 잠재능력을 보여주려고 해. 이건 선생님이 늘 해왔던 방식이니 그냥 해라.”
“그런 게 어딨어요? 난 장기자랑할 게 없단 말예요.”
“분명히 있어. 너희들이 찾아내지 못해서 그렇지. 장기란 게 춤추고 노래 부르고 하는 게 다가 아냐? 찾아봐.”
그렇게 일방적으로 선포해놓고 모른 체 내버려두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던져만 놓으면 어쨌든 해냄을 알기에 ‘무엇을 할 것인가’ 가프로그램만 받아놓고 그냥 두고만 보고 있었다.

그렇게 사흘이란 시간이 흘러갔고 리허설 하는 날이 되었다.
가프로그램을 칠판에 크게 써놓고 순서대로 나와서 실전처럼 연습하게 했다. 솔로로 신청한 아이는 3분 정도, 그룹인 아이들은 5분 내외의 시간제한을 두어 40분 안에 23명의 우리반 아이들이 다 출연해야 한다는 원칙을 정해놓았기에 시간은 거의 맞아들어갔다.
아이들은 마당극할 때의 무대처럼 꾸민 발표장이 어설픈지 많이 쑥쓰러워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짜투리 시간을 이용해 틈틈이 연습한 여학생들이 실전처럼 잘해내자 금방 분위기가 훅 달아올랐다. 그러자 남학생들의 술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야, 우리 창피당할 것 같은데?”
역시나 자기네 팀들이 심혈(?)을 기울여 짠 연극의 반응이 신통치 않았고, 그 대본을 직접 짰던 호용이는 당장 바꾸겠다고 나섰다.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 팀원끼리 의견이 분분하더니 전래동화 ‘금도끼은도끼’를 토대로 한 ‘나무꾼의 전설’을 탄생시켰다. 그리고 운동하는 것을 좋아해 점심시간이면 늘 공과 함께 사느라 대본도 짜지 않은 건호팀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는지 내게 종이를 달라고 했다. 건호는 단숨에 전래동화 ‘토끼와 거북이’와 ‘별주부전’을 짬뽕시켜 만든 신판 ‘토끼와 거북이’ 대본을 써내려갔다. 즉석 창작품이었지만 코믹버젼이기에 무척 재미있었고, 건호팀의 연극도 가속도가 붙었다.

또 사흘이 지나고 드디어 학부모님들을 모시고 학급발표회를 하는 날이 되었다.
책상을 빙 둘러서 가운데에 무대를 만들어놓고 부모님들은 뒤에 서서 구경할 수 있도록 하였다. 종이 울리고 부모님들이 한분 한분 등장하자 아이들은 긴장하기 시작했다.

첫인사말을 맡은 재민이가 발표회의 시작을 당차게 알리자 학급발표회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바이올린 켜는 모습을 처음 보여준 공영이의 독주가 끝나자 효민이가 클래식기타를 가지고 나왔다. 내가 우스개 소리로 ‘효민이가 기타와 잘 어울리는 청바지를 입고 왔네요.’라고 띄워주자 효민이가 대뜸 ‘선생님이 입고 오라고 했잖아요.’ 라며 솔직히 말하는 통에 장내가 웃음바다가 되었다. 그래서 내가 ‘맞습니다. 청자켓도 입고 오라고 했는데 제 말을 안듣네요.’라고 해서 더욱 웃음바다가 되었다.
웃음이 터지고 방청객들의 반응이 좋자 아이들은 너도나도 열심이었다.

언제 들어도 신나는 플롯 삼총사 은성, 승현, 명주의 ‘젓가락행진곡’,
바이올린을 가야금처럼 뜯어 트로트가요 ‘어머나’를 연주해 많은 박수를 받은 지선과 선호 소라,
여학생을 괴롭히는데 쓰이던 물풍선이 토끼의 간이 되어 극적 웃음을 끄집어낸 건호, 헌영, 태훈의 코믹연극 토끼와 거북이,
지구대회를 통과하고 교육청 대회까지 나가서 상을 받은 지수의 통일토론발표,
미래의 소녀시대를 꿈꾸는 유진과 윤영의 노래,
세계의 희귀한 소식을 뉴스데스크로 알려준 수빈과 정현이,
옷걸이로 도끼로 만들고 그 도끼가 총이 되는 소품활용을 잘한 호용, 예빈, 현재, 민규, 성준이의 연극 나뭇꾼의 전설,

2학기 내내 춤연습을 해왔던 안무 5총사의 특별출연(한번 출연한다는 원칙을 내세웠지만 전교생을 대상으로 하는 스키교실에서 장기자랑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지 않기에 사장될 것이 아쉬워서 허락했음)
마지막으로 우리학교 테니스대표선수로 활약하고 있는 종민이의 야무진 끝인사로 학급발표회는 끝이 났다.
뒤에서 연실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며 박수를 쳐주기에 바빴던 학부모님들은 우리 아이들에게 저런 재능이 있는지 몰랐다며 너무 대견하다고 입을 모았다. 공개 수업할 때 자기 자녀가 발표도 안해서 맘상하고 돌아간 예전보다 훨씬 나았다면서 기분좋은 웃음을 얼굴 가득 머금고 돌아갔다.
뒤에 오신 부모님들의 열띤 반응에 아이들이 고무되었는지 한 참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이들의 흥분은 가실 줄을 몰랐다.

“선생님 우리 또 한 번 더 발표해요?”
“언제는 이딴 걸 왜 해야하는냐고 하더니?”
“한번만 발표하고 끝내기에는 아쉽잖아요.”
녀석들도 참.
안될 것 같은 일을 한번 해보고 난 뒤에 느끼는 성취감과 그 일을 하는 과정 속에서 이루어지는 끈끈한 유대감을 알기에 나는 이런 일을 기획하고 숱한 반대에 부딪치면서도 뚝심으로 감행하곤 한다.
얘들아,
나중에 어른이 되어 삶에 지칠 때 전혀 못할 것 같은 이런 일도 해낸 적이 있다는 것을 떠올려보렴. 분명히 위안이 되고 힘이 될 거야.
얘들아, 짧은 시간에 학급발표회 준비하느라 정말 수고 많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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