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태안 앞바다에서 발생한 기름유출 사고가 발생한 지 2개월째 접어들고 있으나 연일 각 방송국에서는 뉴스와 특별프로그램에서 사고 발생시점에서부터 자원봉사활동의 이모저모, 어민들의 애환, 보상금 지급, 책임소재 등을 이슈로 다루고 있다. 가족과 함께 봉사활동을 가기로 계획했지만 연말과 연초, 방학 중 연수로 이어지면서 시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이러다가 개학이 되면 또 미루어 질 것 같아서 오늘 예정에 없던 자원봉사활동을 위하여 남편과 함께 서해안으로 아침 일찍 출발하였다.
차를 타고 가면서 방송을 들으니 아침 기온이 영하 3도이나 강한바람이 불어 체감온도는 영하 10도에서 영하 5도 안팎이라고 하였다. ‘바람이 이렇게 부는데 과연 작업이 가능할까?’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오늘 마음먹은 일을 더 이상 미룰 수는 없었다.
지금부터 25년 전 태안초등학교에 근무한 적이 있어 이번에 사고가 난 지점은 익히 알고 있는 곳이다. 태안읍내(현재는 태안시)에서 20~30분 정도만 가면 아름다운 해안이 있고 경치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파도로 인해 갖가지 모양을 하고 있는 큰 바위 사이로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재미가 있어 당시 동료교사들과 토요일 오후면 시간을 내어 놀러가곤 하였다.
오늘 봉사활동 구역은 태안군 원북면 신두리 해변가 황촌방조제였는데 단체로 참여하지 않고 개인으로 참여하였기 때문에 상황실에 들어가서 오늘 작업에 대해서 담당자의 이야기를 들었다. 덧옷과 장화를 지급받아 상황실에서 작업장소까지 10분정도 걸어갔는데 그 오염의 심각성이 매우 큰 곳이었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오늘 봉사활동에 이미 9개의 단체와 우리를 포함한 개인자격으로 봉사활동을 온 대표 3인이 등록이 되어 있었다. ‘날씨가 이렇게 추운데 봉사활동 하는 사람들이 없으면 어떻게 하나?’란 생각은 기우였다. 현장에서 봉사활동에 임하는 사람들에게서 한 숨 섞인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흘러나왔다. 누가 시킬 것도 없이 펄썩 주저앉자 무조건 자갈을 닦기 시작하였다. 헝겊이 금방 기름때로 입혀졌다. 물이 고인 곳은 기름이 떠 있었고 자갈 밑을 파면 기름 묻은 자갈이 계속 나왔다. 군데군데 있는 바위는 기름이 닿은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의 명암이 뚜렷이 드러나 있었고 한창 굴 수확기로 인해 '굴 껍질안에 굴이 통통하게 들어 있어야 할텐데 어민들의 꿈과 희망을 송두리째 앗아간 빈 껍데기만 붙어 있었다.'
태안장로교회 여선교회 회원들은 아예 비닐하우스 안에 본부를 차려놓고 따끈한 차와 컵라면 등을 자원봉사자들에게 제공하고 있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태안장로교회는 25년 전 다녔던 교회였다. 조금 나이가 드신 권사님이라는 분께 당시 태안초등학교 교사였던 000라고 하니 알아보시는 것이 아닌가? 그 때 교회 청년회가 매우 활성화 되어 있었는데 겨울에 불우이웃돕기 합창발표회를 하기 위하여 두 달간 하루도 빠짐없이 늦은 시간까지 준비하며 당시 태안고등학교 음악교사가 지휘자로 또 명예기자가 반주자로 헨델의 ‘할렐루야’를 비롯한 대곡 다섯 곡을 20명의 청년들과 함께 연주했던 일은 일생을 두고 잊혀 지지 않는 일이 되고 있다. 잠간 동안 당시를 회상하며 기억이 나는 분들의 안부를 물었다. 많은 변화들이 있었고 모두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이야기를 들으니 보고 싶은 마음이 더하였다.
봉사를 하는 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오후 4시 30분이면 물이 들어온다는 것이다. 오늘 기름때를 제거하면서 여러 단체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울 한식조리사협회 10명의 회원들은 오늘 봉사활동을 그 무엇보다도 귀한 시간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최후까지 남아 마지막 정리를 했으며 다른 사람이 미처 정리하지 못하고 버리고 간 헝겊은 깨끗이 모아 포대에 담는 모습을 보고 직업의 특색이 나타나 보였다. 사진을 찍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얼굴에 밝은 웃음을 가득 안은 사진을 한 컷 찍어 주었다. 또 천안 중부도시가스 직원들은 최신 소형가스통을 들고 와서 작업 중 여러모로 요긴하게 사용하는 모습을 보았고 계명 문화대학 학생들은 매우 성실한 태도로 기름제거작업에 임하는 모습을 보고 감탄 하였다. 먼 곳에서 올라온 경남 김해 가야개발 회사 직원은 피곤한 기색도 없이 회사 일을 하는 것처럼 매우 열심히 작업하는 모습을 보았다. 모두 90명이 자원봉사에 참여한 부평경찰종합학교의 생도들은 많은 작업량을 해내었다. 작업을 끝내고 언덕을 올라오던 중 한 자원봉사자가 만든 작품을 보았다. 기름헝겊을 넣은 포대로 만든 사람모양을 한 작품이었다. 하루동안 내내 작업을 하고 피곤했던 심신을 이 작품을 만들면서 풀었으리라 생각하니 씁슬 한 웃음이 나도 모르게 흘러 나왔다.
아직도 많은 기름이 묻어 있는 자갈돌과 바위 등을 뒤로 하고 집으로 향하려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오늘 만났던 자원봉사자들 모두가 서해안 어민을 생각하는 마음은 한결 같았다. 이 추위에 어떻게 지내겠느냐는 것이다. 어제 일부 보상금이 지급되었다고는 하나 턱없이 부족할 것이라 생각된다. 하루아침에 막막한 어려움을 당한 서해안 어민들을 위하여 끊이지 않는 자원봉사활동으로 꿈과 희망을 다시 살려 온 국민과 함께 따뜻한 설날을 보내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