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 내가 사업가라면 어떤 사업을 할 수 있을까?" "요즘은 휴대폰을 거의 다 갖고 있으니까 휴대폰 리모델링 사업도 좋지 않을까요"
" 기술적으로 어떻게 가능한지 설명해보렴."
지난해 처음 실업고에 도입된 '비즈쿨(BizCool)' 수업의 한 장면. 단순 자격증이나 기능 취득 교육으로 식상해진 교실이 '비즈니스'를 배우며 창업을 꿈꾸는 학생들로 생기가 넘친다.
'비즈니스'와 '스쿨'의 합성어인 비즈쿨은 학교 교실에서 체계적인 경제·비즈니스 교육을 실시해 학생들이 창업과 취업에 새로운 비전을 갖도록 돕는 프로그램. 지난해 중소기업특별위원회와 중소기업청이 경기상고, 일산정보산업고, 선화여상 등 16개 고교를 비즈쿨 시범학교로 선정해 첫발을 내디뎠다.
비즈쿨은 △초급과정 △글로벌 리더십 △마케팅 △재무관리 △창업실무 교과로 체계화돼 있다. 첫해에는 중기특위가 보급한 초급과정에 따라 학생들의 '창업 마인드 조성'에 초점이 맞춰졌다. '기업가란 누구인가' '내 마음의 창업지도' '손익분기점을 잡아라' '마케팅' '사업계획서 만들기' 등 17개 챕터로 구성된 교재와 비디오자료를 활용해 비즈니스 기초개념과 창업과 경영에 대한 마인드를 게임과 활동중심으로 익히게 돼 있다.
손선미 중기특위 비즈쿨 담당 사무관은 "비즈쿨 2년 차인 올해는 리더십, 마케팅, 분야별 창업실무, 재무관리 등 중급과정 프로그램과 영상부교재가 지원돼 창업에 이르는 전 과정을 교육하게 된다"고 말했다. 비즈쿨에 대한 호응도가 높아지면서 올해는 시범학교가 16개교에서 50곳으로 확대되고 학교당 1000만원의 운영비가 지원되는 등 정부지원금이 10억원으로 늘어났다.
비즈쿨 수업은 중기특위의 연수과정을 마친 400여명의 지도교사가 맡고 있다. 이들 교사가 '한국비즈쿨교사협의회'를 만들어 정보공유와 자율연수도 계획하고 있다. 하지만 비즈쿨의 특색은 지역 기업인, 컨설턴트, 회계사, 교수 등 전문가들이 초빙강사로 참여해 전문적인 식견과 비즈니스 노하우를 전수한다는 것이다. 이런 인력풀을 갖추기 위해 중기특위는 현재 기업인, 변호사, 등 각 분야 전문가 110여명으로 구성된 비즈쿨 자원봉사단을 구축한 상태다.
정규수업 외에도 비즈쿨은 창업아이디어 공모, 창업동아리 작품전시회, 아르바이트 체험학습 등 다양한 활동을 진행한다. 꿈이 현실감각을 얻도록 하는 이 같은 프로그램이 비즈쿨 교육의 핵심이자 학생들의 관심을 붙잡는 비결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7월 시범학교 대상으로 열린 비즈쿨 창업캠프에서는 사업계획서 발표대회에 학생들의 아이디어가 쏟아지기도 했다.
대전공고 이병욱 교사는 "처음에는 배울 과목 하나 더 늘었다고 불평하던 학생들이 이제는 방과후에 자발적으로 남아 사업계획서를 다듬고 시장조사까지 벌일 만큼 진지하다"며 "취업과 진학 외에 창업이라는 개념과 목표의식을 심어준 것이 가장 큰 성과"라고 말했다.
인천 선화여상 조은지(1학년) 양은 "비즈쿨은 내 재능과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알려주었던 과목"이라고 평가했다. 또 일산정보산업고 김혜민(1학년) 양도 "공휴일날 호수공원에서 장사를 해봤는데 정말 어렵다는 걸 깨달았다"며 "아이디어보다는 끈기와 열정이 창업의 성패를 가름한다는 소중한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중기특위는 올 여름 전국 규모의 '창업 아이템 경진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그리고 성공가능성이 있는 아이템은 중소기업청의 창업보육센터와 연계해 실제 창업으로 이어지도록 할 계획이다. 중소기업청도 고교생의 대한민국창업대전 참가를 허용하고 수상자에 대한 창업 지원과 진학(대입특례)을 도와 비즈쿨 활성화에 가속도를 붙인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걸림돌도 많다. 우선 산학협동체제가 미흡하다. 중기특위는 당초 비즈쿨을 후원할 인사 및 독지가로 '비즈쿨 파트너'를 구성할 계획이었지만 현재는 특강만 하는 자원봉사단만 꾸렸을 뿐이다. 수 백 개의 기업과 대학이 수백억원의 비즈쿨 사업 예산을 대부분 책임지는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의 비즈쿨은 고작 10억원의 정부 예산만으로 진행되고 있다.
한국비즈쿨교사협의회 최석용 교감(경기상고)은 "마케팅과 재무관리 등을 교육받아 비즈니스 마인드를 갖춘 학생들을 직원으로 채용한다면 기업으로서도 이득"이라며 "우리 기업들도 비즈쿨 스폰서로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또 비즈쿨 수업교사 모두가 대기업 간부로 채워지는 미국에 비해 자원인사가 턱없이 부족한 점도 비즈쿨 확산을 가로막는 요인이다. 선화여상 윤미경 교사는 "창업계획을 세울 때 아무 경험 없는 교사가 지도조언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학생들은 자신이 관심 갖는 분야의 전문가나 창업자의 생생한 경험과 노하우를 원한다"고 말했다.
'대학 진학'이라는 덫에 걸려 1학년을 위주로 매우 제한된 학생들에게만 비즈쿨이 진행되는 것도 문제다. 지난해 비즈쿨에는 2962명의 학생과 229명의 교사가 참여했는데 전체 참여 학생의 75%가 1학년이고 3학년은 6.4%에 불과했다. 이유는 비즈쿨이 '교과 外' 활동이다보니 특활이나 재량활동 시간에 운영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손선미 사무관은 "비즈쿨이 정규 교과목으로 정착되는 게 가장 시급한 과제"라며 "현재 개발된 교재들을 인정도서로 전환시키는 작업이 진행 중에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중기특위는 오는 8월까지 '비즈쿨 교과서'를 제작해 내년부터 일선학교에 보급, 교과목으로 채택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