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도저히 현실에 있지 않을 것 같은 드라마가 지금 대한민국의 소녀에서 아줌마까지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일본 만화를 리메이크한 KBS2 ‘꽃보다 남자’ 신드롬이 온·오프라인을 강타하면서 ‘월요병’을 잊게 하고 귀가를 재촉하는 드라마가 되고 있다.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서민 집안의 한 소녀가 어머니의 허영심으로 부유층 자제들로 가득한 누구나 한번쯤 꿈꿔봤을 법한 초 상류층 명문고에 입학해 꽃미남 재벌 소년(F4)들과 만나면서 벌이는 좌충우돌 이야기이다. 시청자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재능과 화려함, 그리고 그 안에서 펼쳐지는 ‘꿈만 같은’ 상류사회의 모습은 대개는 평범할 수밖에 없는 일반 청소년들에게 대리만족을 주기에 충분한 스토리이다. 요즘 청소년들 사이에서 이 드라마 내용을 모르면 대화가 통하지 않을 정도란다.
벌써부터 인터넷 쇼핑몰 등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주인공들의 헤어스타일, 의상, 액세서리가 인기 폭발이다. 드라마 속의 해외 촬영지인 남태평양의 뉴칼레도니아는 벌써부터 예약이 넘치고 있다니 경기불황도 ‘꽃보다 남자’는 피해가는 셈이다.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은 재벌 2세에다 골프, 승마, 클레이사격, 스쿼시, 피아노 연주, 댄스, 수영, 테니스 등 무려 9가지의 다양한 재주를 가진 팔방미인 귀공자이다. 하나같이 ‘깎아 놓은 조각상’처럼 인물이 훤칠한 ‘꽃남’ 4인방(F4)의 ‘프레피룩(Preppy Look)’ 스타일과 장발의 웨이브 파마, 여학생들의 화려한 교복도 트랜드에 민감한 여중·고생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다. 바야흐로 외모뿐만 아니라 부와 명예, 권력까지 갖춘 새로운 ‘완벽남’이 탄생했다.
여중·고생들을 비롯한 대한민국 여성들의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청량제 같은 드라마, 극심한 경기불황 속에서도 주인공들의 스타일이 바로 유행이 되어 패션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며 적지 않은 수익을 창출시키는 드라마를 섣불리 탓할 수는 없다. 더구나 여주인공은 밝고 명랑하며 뭐든지 긍정적으로 생각하여 어려운 일을 극복하는 대한민국 서민의 끈기와 오기를 제대로 보여주는 캐릭터이다. 모든 여성들이 ‘월요병’을 잊기에 손색이 없는 드라마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세간의 폭발적인 인기와 긍정적인 효과에도 불구하고 교육적으로 우려되는 악영향이 적지 않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일본 만화 원작대로 리메이크했다지만 우리나라 현실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상황으로써 특히 학교와 교육현장을 심하게 왜곡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입시에 시달리고, 취업, 결혼, 그리고 생계 그 어느 것도 쉽지 않은 요즘이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부자 꽃미남을 만나 명품 사고, 데이트 하고, 사랑싸움 하고....... 고등학생들이 운전을 하거나 클럽에서 놀던 여주인공은 술에 취해 쓰러지고, 호텔방에 드나드는 등 적절하지 못한 장면이 여과 없이 방송됐다. 남녀 학생들이 전용비행기로 남태평양 휴양지 뉴칼레도니아로 날아가 휴가를 즐기는가 하면 학교폭력과 왕따 장면을 극단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배경만 학교이지 수업이나 공부하는 장면은 아예 나오지 않고, 학교다운 장면을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고등학교인데도 구지 대학 가려고 노력하지도 않는다. 돈 많은 부자들은 그들끼리 갈 대학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일종의 현재 대학입시 ‘3불정책’으로 금지되어 있는‘기여 입학’이다. 부자가 우상화된 세상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스트레스를 잊는 방법은 간단히 두 가지다. 현실과 거리가 먼 상황에 몰입해 망각하는 것, 또 하나는 현실과 비슷한 상황에 자신을 대입시키며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오해하지 말자”며 단순한 재미거리로 즐기자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지나치게 시청률이나 인기에만 집착하다 보면 정작 나타날 ‘부작용과 후유증’을 보지 못하는 법이다. 학원영화나 안방드라마가 교육적인 면을 고려해야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