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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14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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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소식

베란다에 피는 봄

아파트에서 산 지 꽤 오래되었다. 처음에는 아파트에 사는 것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제는 편안하다.

사실 아파트에 살면 답답한 구석이 많다. 동네 자체가 정감이 안 간다. 겹겹이 집을 지은 구조가 새장 같다는 말을 많이 한다. 철문을 굳게 닫고 있어 이웃과도 소통하기가 어렵다. 집 안에서 밖을 봐도 답답하다. 밖에는 고층 빌딩보다 높은 아파트가 햇살조차 막고 있다. 아파트 마당에는 자동차가 가득하고, 어릴 때 살던 마을 분위기는 나지 않는다.

그런데 아파트에 살면서 새로운 발견을 했다. 베란다이다. 베란다는 햇살이 하루 종일 노는 곳이다. 저녁 달빛도 오래 머무는 곳이 베란다이다. 베란다는 사유의 뜰이다. 가끔 마음이 헝클어지면서 베란다에서 서성인다. 베란다에서 마음의 물레질을 하고 나면 금세 평온을 찾는다. 베란다는 다용도 공간이다. 잡동사니는 이곳에 다 모아놓는다. 선풍기도 철 지나면 여기서 대기를 한다. 어머니가 보내주신 마늘도 소금도 베란다 그늘진 곳에서 겨울을 난다. 아이들이 가지고 놀던 장난감도 베란다에서 나이를 먹고 있다.

무엇보다도 아파트에 살면서 마당 있는 집을 그리워했는데, 베란다가 그것을 대신했다. 베란다는 아파트에서 유일하게 흙냄새를 맡을 수 있는 곳이다. 작지만 화분이 여러 개 앉아 있다. 화분이 꽃을 피우고 계절을 먼저 알려준다. 올 봄에도 우리 베란다에는 군자란이 봄단장을 제일 먼저 했다.

군자란이 우리 집에 올 때는 나이도 어렸다. 겨울에는 추위도 많이 타는 듯해서 거실에서 재웠다. 낮에 햇살이 많이 모이면 내보내고 밤이면 또 거실에서 함께 잤다.

한때는 병이 들어 매시근하기도 했다. 몸이 소득해지고, 잎도 처음 연푸른색을 잃고 검은 녹색으로 변하기도 했다. 그때 아내가 정성을 다했다. 더우면 부채질을 하고, 목이 마른 것 같으면 자다가도 물을 먹였다.

정성에 보답이라도 하듯 조붓하게 크기 시작했다. 잎도 바루어지고, 영양도 좋아졌다. 그리고 둥그스름한 밑동 뭉치에서 아침저녁으로 새잎이 나왔다. 새잎들은 금술 좋은 부부처럼 얼굴을 마주 보면서 나왔다. 그 모습은 마치 갈등도 고민도 없는 우리 부부 같았다.

군자란이 올 겨울에 제법 몸짓이 커지고 윤기가 반지르르 흘렀다. 그러더니 한 가운데에서 꽤 곧은 꽃대가 우꾼하게 솟아 나왔다. 봄은 아직도 먼 남녘에만 머물고 있었는데, 햇살이 몹시도 되알졌는지,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꽃을 잉태했다.

나는 꽃을 보면 늘 감탄을 하고 탐을 내지만 꽃나무를 가꾸거나 기르는 데는 애당초 생되다. 지금 아파트 베란다에 있는 화분도 모두 아내가 키우는 것이지, 내 손을 탄 것은 하나도 없다. 나란 위인은 직장 생활을 한답시고 그저 눈요기만 누리고 있다.

그런데 근년에 들어서 꽃을 대하는 마음이 더욱 애틋해졌다. 뭐랄까. 꽃도 하나의 생명체라고 인식했다고나할까. 단순한 아름다움의 대상물이 아니라, 같이 사는 가족에게 미래의 삶에 대한 암시를 주는 존재라는 느낌이 온다.

나는 베란다에 군자란을 보고 우리 가족생활에 암시를 받고 싶었다. 꽃이 활짝 피는 것처럼, 우리 가족에게도 아름다운 꽃이 피기를 마음속으로 기도를 했다. 부모님, 아내, 아이들, 그리고 나까지 모두 건강하게 생활하기를 기원했다. 나가서 올해는 경제도 나아져서 사회가 안정되고 어려운 이웃들의 마음에 그늘이 없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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