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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중소도시 평준화 도입 공방 치열

"다수 여론대로" … "지역명문고 살려야"


지난 달 말, 노무현 당선자는 '지방분권 및 국가균형발전' 토론회에서 "자녀교육 때문에 고급인력이 다른 지역으로 유출되는 사례가 있다면 지방중소도시에서는 평준화 여부를 자율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하면 좋을 것"이라는 견해를 밝힌 바 있다.

최근 평준화를 도입하려는 일부 지역의 움직임이 구체화되면서 고교평준화는 다시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노 당선자의 발언과 관련, 현실적으로 크게 상황이 달라지지 않으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평준화의 시행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이미 각 시·도교육청에 맡겨져 있기 때문이다.

교육부 지방교육기획과 김태훈 사무관은 "노 당선자의 발언은 '중앙에 의존하지 말고 각 지방에서 안목을 가지고 책임감 있게 정책을 추진하라'는 뜻으로 해석하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해당 지역에 고교평준화를 실시하거나 해제하겠다는 결정은 지역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시·도교육감이 내리도록 돼있다. 다만 고교평준화 지역을 '교육부령'으로 정하고 있기 때문에 시·도교육감이 평준화 결정을 교육부에 건의하고 교육부는 해당 지역의 여건과 상황을 고려해 수용여부를 결정하고, 최종적으로 법령을 개정하게 된다.

평준화를 시행하고 있는 지역은 현재 총 23곳. 이 중 서울과 6개 광역시 등 대도시가 7곳이며 중소도시의 경우, 경기 수원, 안양, 경남 마산, 전북 전주, 충북 청주 등 16개 지역에서 평준화가 실시되고 있다. 학교 수로는 전국 1995개교 가운데 999개교로 50.1%, 학생 수는 120만여명으로 67%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고교평준화는 지난 74년, 과도한 사교육비와 중학생의 입시 스트레스 등을 완화시키기 위해 서울과 부산에서 처음 실시됐다. 평준화 이전까지는 각 학교별로 입학시험을 치렀는데 과외율이 90%가 넘고 인문계고 지원자 중 40%만이 입학할 수 있을 정도로 경쟁이 치열했다.

평준화 논란의 핵심은 교육의 '평등성'과 '수월성'으로 압축할 수 있다. 평준화를 지지하는 이들은 평준화 제도가 사교육비를 감소시키고 학생들의 평등한 학업권을 보장한다고 주장한다. 수월성이나 개별화 교육도 평준화제도를 보완함으로써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김흥주 한국교육개발원 박사는 "평준화 해제나 도입은 지역에 따라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면서 "현 상황에서는 자립형사립고, 특성화고 도입 등을 통해 문제점을 보완하면서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해제를 주장하는 쪽은 평준화가 학부모와 학생들의 학교선택권을 침해할 뿐 아니라 학력의 '하향평준화'를 불러왔다고 주장한다. 작년 1월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선진 일류국가로 도약하기 위해 고교평준화 정책을 폐지하고 사학의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비전
2011 프로젝트' 보고서를 재경부에 제출하기도 했다.

특히 지방중소도시의 경우, 평준화가 시행되면 우수학생이 대도시로 전학하면서 지방 발전이 저해되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 반대론자들의 지적이다.

지난 2001년 OECD가 32개국 만15세 이상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학업성취도 국제비교연구' 결과는 이러한 양측의 상반된 주장을 동시에 뒷받침해준다. 한국 학생들은 읽기 6위, 수학 2위, 과학 1위로 전반적으로 우수한 학업성취도를 보였다. 그러나 국가별 최상위 5% 학생의 점수
비교에서는 읽기 20위, 수학 6위, 과학 5위로 나타났다. 평준화가 교육의 수월성에서는 효과적이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국교육개발원이 같은 해 5월에 발표한 '평준화정책과 지적수월성 교육관계연구' 보고서에서도 이와 유사한 결과가 나타났다. 전국 522개 일반고 학생 10만 2262명이 고1과 고3때 각각 수능 모의고사를 치른 결과, 400점 만점에 평준화고의 평균 점수(267.86점)가 비평준화고의 평균점수(252.51점)보다 15.35점 높았으나 상위권(2.28%) 학생에 대한 점수 비교는 비평준화고(354.63점)가 평준화고(351.85점)보다 2.78점 높았다.

일부에서는 노 당선자의 발언과 관련, 오히려 평준화가 가속화될 것으로 예측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각계에서 실시해온 여론조사 결과, 평준화지지 여론이 전반적으로 폐지론보다 높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전남교육청에서 실시한 여론조사 역시 이 같은 양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평준화 도입을 요구한 목포, 여수, 순천 지역 주민들에 대해 전남도교육청이 여론조사를 벌인 결과, 각각 71.3%, 68.1%, 77.3%로 평준화 천성의견이 높았다. 전남도교육청은 이들 3개 시를 평준화로 전환하겠다고 교육부에 신청해 놓은 상태이며, 법령개정을 거치면 오는 2005학년도 고입부터 평준화 적용이 가능할 전망이다.

이밖에도 현재 경기 광명, 의정부 등에서도 평준화 도입을 위한 시민모임이 결성된 상태며 안산, 구리, 남양주 지역 학부모들도 평준화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경남 김해 지역에서도 최근 연대회의를 결성, 조만간 도교육청에 평준화를 요구할 예정이며 경북 안동에서도 일부 학부모들이 평준화 도입을 촉구하고 있는 상태다.

그러나 반발도 만만치 않다. 순천고, 여수고 동문회 등이 중심이 된 '서남권교육발전협의회'는 지난달 28일 성명서를 내고 "백년대계인 교육정책을 연구기관이 아닌 여론조사기관을 통해 결정하려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전남도교육청의 여론조사결과 무효를 주장하기도 했다. 서남권교육발전협의회는 "평준화를 도입하면 우수학생들이 대도시로 빠져나갈 것"이라며 "지역교육 발전을 위해서는 지역 명문고를 유지시켜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99년 이들 3개 지역에 대한 평준화 민원이 제기되자 전남도교육청은 여론조사를 통해 평준화정책을 결정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당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평준화 지지가 약간 높았고 도교육청은 "2002학년도 전형부터 적극 검토하겠다"고 결론을 유보해 놓은 상태였다. 올해 1월 10일부터 재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3개 지역 모두 찬성여론이 2/3를 넘은 것이다.

전남도교육청 중등교육과 박내섭 장학사는 "정책을 쉽게 결정하거나 바꾸는 것을 막기 위해 과반수가 아닌 '2/3 이상 찬성'으로 정해놓았는데 그래도 평준화를 반대하는 쪽에서는 불만이 있고, 반면 일부에서는 평준화를 조기 시행해야 한다고 요구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그러나 박 장학사는 "평준화를 지지하는 쪽도, 반대하는 쪽도 궁극적 목표는 모두 지역교육발전에 있는 것 아니냐"면서 "교육청도 계속적인 논의를 통해 서로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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