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가장 좋은 존칭어는 선생님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선생님이라는 명사가 “샘”이라고 불리고 있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지도 않은 석자의 존칭어마저 부르기가 힘든 것인가?
경상도 발음구조로 “스에임” 이라고 부를 때는 애교가 섞인 사투리처럼 들려서 그런대로 알아들을 수 있었지만 “샘”이라고 부르면 약어(略語)의 단계를 넘어서 상대를 낮추어 부르는 느낌마저 든다. 일반적으로 기성세대들에게 샘이라 하면 옹달샘과 바가지나 두레박으로 물을 긷는 샘으로 알아듣는 이도 많이 있을 것이다.
선생님의 석자를 초성, 중성, 종성에서 한 획 씩 따서 만든 글자가 “샘”이라고 하면 어느 정도 과학적으로 결합한 신조어라고 주장할 수 도 있을 것이다. 선생(先生)의 사전적 의미는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 학예가 뛰어난 사람을 높여 이르는 말, 성(姓)이나 직함 따위에 붙여 남을 높여 이르는 말, 어떤 일에 경험이 많거나 잘 아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적고 있다.
그러나 ‘샘’이라는 국어사전에도 없는 말을 쓰고 있으니 신조어일 뿐이다.
교육대학 재학 시절 부속초등학교에 교생실습을 나갔을 때 아이들에게 처음 들었던 “선생님!”이라는 말에 가슴 설레었던 추억이 지금도 커다란 보람으로 남아있다. 40여년을 '선생님' 소리를 들으며 교직의 길을 걸을 수 있었다는 자긍심을 가지고 있다. 고향의 모교로 첫 발령을 받았을 때 선생님! 이라고 부르며 달려와 손을 잡으며 좋아하는 아이들의 밝은 모습이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도 신선한 충격으로 남아 있다. 부모님 연배보다 더 높으신 어르신들까지도 선생님이라고 깍듯이 부르실 때는 몸 둘 바를 몰라 했었다.
학자들 사이에서도 존경하는 은사님에게 박사님, 교수님 보다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한다고 하니 얼마나 아름답고 정이 넘치는 좋은 호칭인가?
이렇게 우리생활에 익숙해져 있는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젊은 세대들은 메신저로 문자를 주고받을 때 샘 또는 쌤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고 공중파 드라마에서도 선생님을 샘으로 사용하고 있으니 이러다가 선생님이라는 존칭은 사라지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신세대 선생님들도 선생님보다는 샘이라는 호칭에 익숙해져 있는 것 같다. 학생들도 선생님보다는 샘이라고 부르기를 좋아하고 있어 약어 은어가 우리말을 어지럽히고 있는 것 같다.
언어란 전달하는 말의 의미, 즉 내포된 뜻이 더 중요한데도 내용보다는 짧고 단순하게 줄여서 사용하는 신조어가 유행처럼 번져나가고 있어 언어의 변질이 우려된다. 기성세대와 신세대간에 언어 소통이 잘 안 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하겠다. 60여 년 동안 남북이 분단되어 달라진 언어 때문에 통일이 되어도 언어통합에 시간이 많이 걸릴 거라는 생각이 든다. 언어를 보면 그 시대의 문화를 알 수 있는 것처럼 시대와 사회현상을 반영하는 것 같다.
농경사회에서는 사용하는 언어는 순박했으며 정이 듬뿍 담겨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초임지에서 중간발령을 받고 학교를 떠나올 때 출발하는 버스를 따라오며 선생님! 하고 손을 흔들며 울먹이던 아이들이 그리워진다. 요즘 선생님이 전근을 가면 이런 아름다운 정을 주는 작별을 볼 수 있을까?
선생님과 제자사이에 존경심과 정이 멀어져가는 것처럼 선생님이란 존칭어도 “샘”이라는 신조어로 변해가는 것을 세월 탓이라고 돌리기에는 너무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