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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사랑은 '야한 생각'이라는 아이

1, 2학년 14명 짓기 시간에 있었던 일입니다. 우리 학교 아이들은 전교생이 4시까지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1, 2학년은 다시 보육프로그램까지 참여합니다. 나는 2학년 담임이라 전교생을 대상으로 두 학년씩 묶어서 짓기 지도에 참여합니다. 학년 수준이 맞지 않지만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학년 발달 수준에 맞추어 지도하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글을 모르는 아이, 떠듬떠듬 읽는 아이, 진도가 빨라서 심심해 하는 아이, 학년 발달 수준이 한참이나 다른 1, 2학년을 함께 앉혀놓고 방과후 짓기 교실을 여는 나는 늘 고민에 빠집니다. 다 함께 즐겁고 유익한 짓기 시간이어야 하니까 말입니다. 이제 겨우 '우리들은 1학년'을 공부하는 1학년 아이들이지만 아직도 책을 읽지 못하는 아이들을 데리고 글 쓰기를 가르치는 것은 우리 반 2학년 아이들을 4시간 공부시키는 것보다 더 힘듭니다.

글쓰기의 기본이 자기 생각 나타내기, 새로운 생각 끌어내기, 더 나아가 아름답고 솔직한 표현 찾아서 글로 표현하는 즐거움을 누리게 해야 함을 생각해야 합니다. 짧은 글 쓰기, 상상되는 낱말 찾기, 끝말 잇기 등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 글쓰기를 좋아하는 아이들, 글쓰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아이들로 키우고 싶은 게 나의 희망사항입니다.

학년 수준을 맞추고 그 속에서도 생산된 글을 읽게 하고 격려하는 일, 새로운 표현 창찬해주기 등, 글쓰기를 처음 대하는 1학년 꼬마들의 호기심을 자극하여 방과후학교 시간이 행복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싫어하지 않게는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간절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1, 2학년 공통 주제를 주고 이야기를 나누며 자기의 생각을 펼쳐 보이는 공부를 시도했습니다. '사랑'이라는 낱말을 주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1분 동안 많이 쓰기를 하며 상상력과 유창성을 함께 길러 보고 싶었습니다. 처음에는 생각나는 게 없다던 아이들이 20초가 지나자 쓰기에 몰입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사랑'이라는 낱말에서 보이지 않는 것은 '하느님'이라며 '하'자를 써놓고 '느'자를 물어보는 아이의 대견함에서부터 다양한 답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가장 순진하고 사랑스러운 1학년 아이들답게 상상 이상으로 좋은 답들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내가 놀란 것은 '야한 생각'이라고 쓴 아이의 학습지였습니다.

그 아이인 '기'자로 끝나는 세 글자 낱말 쓰기에서도 '이무기'를 쓸만큼 우수한 아이였습니다. 이무기의 뜻을 모르는 아이들이 질문을 하자, "이무기는 용이 진화하기 전"이라며 진화라는 용어까지 써 가며 깔끔하게 개념정리까지 하며 설명해 주어서 다시 한 번 놀라게 했던 아이이기도 합니다.

아이가 알고 있는 '야한'의 개념이 어디까지인지 궁금해서 물어보려다가 시간이 다 되어 마무리를 지으면서도 내내 걱정이 되었습니다. 어른인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속도가 붙은, 성교육을 걱정할 정도가 아니었으면 하는 생각이 앞섰습니다. 1학년 아이의 머리 속에 저장된 '사랑이란 야한 생각'이라는 화두는 나를 고민하게 만들면서도 걱정이 되었습니다.

넘치는 성인 영화와 텔레비전 드라마 프로그램, 가수들의 노랫말과 춤 동작 등 언론 매체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는 현실, 성폭력으로부터 아이들을 지켜내야 하는 요즈음 같은 세상에서 1학년 아이의 입에서 나온 '사랑이란 야한 생각'은 어쩌면 우리 교육이 현장을 보여주는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그 아이 머리 속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낱말인 '사랑'이라는 단어를 내가 걱정하는 것처럼 나이에 맞지 않게 생각그물을 짜고 있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아무래도 1학년 담임 선생님께도 말씀드려서 아이들이 유해 프로그램에 접근하지 않도록, 어른들의 프로그램에 접근하지 않도록 말씀을 드려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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