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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은퇴 후 어떤 삶이 기다리고 있을까

이제 머지않아 내가 정년퇴직을 하고 출근을 하지 않으면 저 학교 교무실 널찍한 테이블이 내게 어떤 의미가 있으며 저 지역사회의 꿈과 비전을 간직하고 우뚝 솟아있는 학교건물, 그 교문에 걸려있는 시립합창단의 찾아가는 음악회 플래카드가 나하고 더 이상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내 책상 위에서 나의 업무를 돕던 컴퓨터, 바쁘게 등교하며 꾸벅 고개 숙여 인사하던 아이들이 내게 더 이상 어떤 의미가 있을 것인가. 모든 것은 다 지나간 기억에 불과할 것을.

30여 년 나는 무엇을 위해 열심히 교직에 근무해왔던가. 열심히 근무하며 월급을 받아 의식주를 해결하고 아이들 교육시키고 노후를 대비하여 쉬지 않고 연금을 부어온 것에 만족해야 할까. 그 동안 국가가 부여한 교사라는 타이틀을 몸에 지니고 떳떳한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온 것에 긍지를 가져야 할 것인가. 많은 동료들과 함께 막중한 사명을 수행하며 고해라는 삶의 바다를 항해하여 온 것에 보람을 찾아야 할 것인가.

이 모든 내게 익숙한 것들을 내놓고 나는 이제 아침밥을 먹고 나서도 뚜렷하게 할 일을 모른 채 한참을 소파에 비스듬히 앉아 어떻게 하루를 보내야 할지 곰곰 생각을 가다듬어야 할 것이다. 지나간 30여년 세월이 꿈속의 일만 같고 이제 새삼 오늘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하며 어떻게 하루를 보내야 할지 혼란스러워 할지 모른다.

매일 들녘을 산책하거나 자전거를 타고 오솔길을 지나며 자연의 변화추이를 온몸으로 느끼는 것으로도 생활이 활기찰 수 있을까. 종종 골똘히 지난 시절을 떠올리며 내 생각과 느낌의 일단을 글로 옮겨 놓는 작업만으로도 나의 은퇴 후 생활이 즐거울 수 있을까. 갑자기 줄어든 수입으로 내가 꿈꾸던 해외여행이 흡족하게 실현될 수 있을까.

아직은 모든 것이 미지수다. 막상 닥쳐야 모든 것이 절실해지고 또 적극적으로 그 해결방법도 모색하게 될지 모른다. 그러나 일부 선배들의 말을 듣자면 그 무료함을 해소하기가 실로 난감하다고 하니 정년을 1년 남겨놓고도 벌써부터 걱정이 앞서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 나는 얼마든지 은퇴 후 나의 삶을 아름답고 풍족하게 가꿀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샘솟기도 한다. 오랫동안 써온 나의 글쓰기 작업은 정년이 따로 있을 리 없으니 컴퓨터 앞에 앉기만 하면 아름다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을 것이고, 사시사철 들로 산으로 나서기만 하면 거기 온갖 수목과 화초가 그 아름다운 자태로 나를 맞이해 줄 것이 아니겠는가.

해야 할 일은 또 얼마나 많으랴. 아직 학업을 다 끝내지 않은 막내딸 뒷바라지도 해야 하고 연로하신 집안 어른들 찾아뵙는 일이며 선조들 유택을 돌보는 일이며 친구 지인들의 경조사에 찾아가는 일까지 실로 또 다른 바쁜 일상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동창회를 비롯하여 각종 단체에서 참가하라는 초대장은 수시로 날아들 것이다.



그 동안 직장생활을 하느라고 모든 일에 소홀하기만 했다. 이제야 또 다른 책임과 의무를 충실히 이행할 때가 온 것이다. 한쪽 문이 닫히면 또 다른 문이 열린다는 누군가의 말이 떠오른다. 그 말이 옳다는 것을 나는 수없이 체험해왔다. 분명히 그럴 것이다. 내가 정년퇴직으로 교단을 떠나면 또 다른 삶이, 또 다른 신선한 과제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 과제에도 우선 순위가 있고 중요성의 정도도 다를 것이다. 나는 그것을 잘 헤아려 중요한 과제부터 이행해야 할 막중한 책임이 나를 또 팽팽한 긴장 속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다. 일부 퇴직한 선배들이 직면하는 그 절실한 문제는 바로 의식주 해결의 문제일 수도 있다. 나의 경우 최소한의 의식주 문제는 해결 되었으니 그 문제에 골몰하지 않고 삶의 질에 더 관심을 가질 수도 있지 않은가.

젊은 시절에 나는 의식주 문제, 자녀교육 문제에 지나치게 골몰했다. 내가 궁핍한 시대를 살아왔기 때문이다. 공적인 책임과 의무로부터 다소 자유로워지면 비로소 본격적으로 자기계발에 시간을 할애해야 할 때다. 30여년 몸에 밴 근면과 성실을 바탕으로 은퇴 후의 생활이 보람과 기쁨으로 가득했으면 좋겠다. 읽고 쓰고 체험하며 내 생애의 황금기를 비로소 맞이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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